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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18.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  7

아빠의 존재


영철은 갈수록 우울해졌다. 주사를 맞아도 기절한 순간 외에는 사라지지 않는 내면의 고통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영철은 몇 차례 검은 돈을 전달받은 이후 양심에 찔려 조직원에게 돈가방을 던져주며 다시는 안 하겠다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심한 폭력과 협박이었다. 그들은 영철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철이가 마약중독자이자 범죄조직 현금 수거책임을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영철이의 가족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영철은 강제로 주사를 처음 맞은 이후 제 발로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이스피싱 수거책이 된 날부터 영철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후 영철은 구역질 나고 더러워도 그들이 시킨 심부름을 모르는 척했지만 어느 날 폭발했다.
‘이렇게 매일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는 날까지 누군가를 등쳐먹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게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전 도덕 시간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모든 사람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배웠지? 난 지금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어. 도저히 계속 이렇게 살 수 없어. 차라리 저들 손에 죽는 게 나아. 그 편이 부모님께도 덜 미안하고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야.’

영철은 극심한 두통과 우울증으로 힘들어 죽음조차 무섭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날은 마음이 힘들어 그들에게 작정하고 대들었다. 못 하겠다고 고함을 치고 자신을 때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이제부터 자기를 죽여도 되니, 절대 너희들이 시키는 일 안 한다며 고함쳤다. 조직원들은 어이가 없는지 때리지도 않고 영철이를 쳐다만 봤다. 조직이 영철의 말을 무시하고 또 다른 현금 수거를 시켰다. 잔말 말고 시키는 일을 하라고 하는 실장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영철은 칼을 들고 와 복부를 찔렀다. 자신이 그 정도 해야 조직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칼을 들고 있었다. 복부에서 피가 활칵 쏟아졌다. 그 순간 영철이에게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철이가 5살 때, 30대였던 아빠와 집 근처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같이 앉아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아빠가 영철이에게 엄마 말씀을 잘 들어서 선물을 줘야겠다며 편의점에 데리고 와 과자와 포도젤리를 사주었다. 테이블이 두 개 있었는데, 옆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영철이와 아빠는 그 옆에 앉았다. 아빠가 다정하게 젤리와 과자를 뜯어먹으라고 했다. 그때 옆 테이블에 있던 교복 입은 형 6~7명이 시끄럽게 떠들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더니 아빠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하자 아빠가 '그러지 말라'라고 타일렀다. 그들은 아빠에게 미친 거냐고 고함치더니 한 명이 갑자기 앉아있던 아빠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맞으며 뭐 하는 짓이냐고 고함을 치자, 여러 명이 달려들어 아빠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영철이는 너무 무서워 울기만 했다. 아빠는 폭행당하고 뒤로 넘어지면서 뇌출혈을 일으켰다. 영철이는 그 장면이 뚜렷이 기억났다. 아빠가 그들에게 맞으면서도 영철이의 손을 놓지 않았으나 머리를 심하게 맞아 뒤로 넘어지는 순간 아빠의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졌다. 영철이는 그 뒤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이렌이 어지럽게 울렸고, 빨간 차, 흰 차가 가득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만 기억났다. 영철이는 그동안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숨이 막혔다. 그래, 그때 아빠는 뇌출혈로 결국 죽었었다. 영철이는 검은 옷을 입고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엄마와 다른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때 경찰 아저씨가 함께 있던 다른 경찰에게 했던 말도 또렷이 기억났다.
“이 사람 참 안 됐어. 경제적으로 형편이 무척 안 좋아 기본 투잡이나 쓰리잡을 했던 사람이야. 낮에는 반점의 배달원으로 일하다가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나 음식앱의 배달기사로 일했어. 그런데 본인이 어릴 때 착했던 친구들이 나쁜 길로 한 번 빠지니 그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결국 범죄자가 된 것을 보고 청소년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대. 먹고사는 것도 힘든 사람이 비행청소년들을 가정의 품이나 올바른 길로 가도록 돕고, 욱하는 생각에 가출하거나 여러 범죄에 가담하는 것을 막고 싶어서 밤에 동네 자율방범대원을 했어. 돈도 안주는 건데. 대체 잠은 언제 잔 거야? 대리운전 기사 하기 직전시간까지 동네 순찰을 그렇게 열심히 돌더라고. 그 집 가봤어? 단칸반에 부부와 저 아이 같이 살더라. 벽지도 제대로 안되어있고, 방에 곰팡이도 피고 그랬는데, 번 돈으로 가출 청소년들 있는 쉼터와 미혼모센터에 기부도 했어. 아휴. 하늘도 너무하시지. 저런 착한 사람을 그렇게 허무하게 죽게 하다니. 그냥 그날 모른척했으면 멀쩡히 살아있었을 사람이 왜 그렇게 애들일에 진심으로 대했는지. 앞으로 저 부인과 아이 어떻게 살아가나.”
“진짜 허무하게 가셨네. 착한 일 하다 죽었다고 나라에서 상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이러니 남의 일에 진심으로 도와줄 필요 없어. 우리야 경찰이니 어쩔 수 없이 요청하면 출동해서 일을 해결해야 하지만. 저 사람은 왜 저리 남을 도우며 살았을까? 저 가족들만 불쌍하네 그려.”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은 모두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영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혀를 끌끌 차면서 불쌍하다고 바닥을 쳤다. 지금 아빠인 춘재가 친아버지가 아니었음을 영철이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영철이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는데, 그동안 잊고 살았다. 친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아빠의 자상한 미소뿐이었다. 영철이는 마음이 무척 아파왔다. 왜 지금까지 자신이 정의로운 일에 거부감이 들었었는지, 학교에서 학급의 입김 있는 아이나 학교짱 끝에 빌붙어서 나쁜 학생무리에 가담해 살아가고 싶었는지 이해가 갔다. 어린 시절 남을 돕거나 정의로운 일을 하다 결국 죽어버린 아빠에 대한 반감이 영철이의 마음에는 강하게 있었던 것이다. 죽은 아빠처럼 바보로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어린아이가 강하게 했나 보다. 영철이는 자라는 내내 양심을 찌르는 일을 모르는 척하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고, 누군가에게 도와줘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밀어냈었다.

착한 행동은 바보나 하는 어린 석은 거라고, 도와준다고 도움받은 이가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되뇌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보이스피싱 돈을 전달해 준 사람들의 눈빛은 영철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영철이는 양심은 가슴에 있다고 생각했다. 영철이는 뾰족한 긴 바늘이 자신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영철이는 계속 강하게 드는 양심의 가책을 잊기 위해 마약에 더 의존했다. 그들이 한번 놓아준 마약 때문에 중독이 된 영철이는 마약 때문에 자신이 타인의 피 같은 돈을 뺐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혐오스러웠다. 영철이는 자꾸 드는 죄책감의 원인을 이제야 알았다. 죽은 아빠의 피가 자신에게도 흐르고 있었음을.

영철이가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자, 조직원 중 한 명이 어떤 방에 영철이를 집어넣고 문을 잠갔다. 다른 조직원 한 명은  소독약, 붕대 등을 들고 그 방에 들어가서 치료했다. 영철은 누군가가 붕대 감는 것을 본 것 같은데, 그 뒤로 쓰러져 2일을 잠만 잤다.
영철은 꿈에서 부모님을 보았다. 말은 별로 없지만 순박하게 살아가는 새아빠인 춘재, 보통 엄마들처럼 아들을 위하고 남편을 위하는 평범한 엄마를 보며 본인이 평범한 아들이 되지 못하고 이상한 세상에 그들을 끌어들여 미안했다. 갑자기 영철이는 춘재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새아빠인 춘재는 자신과 엄마를 진심으로 대했다. 영철이는 지금까지 친아빠가 아니라는 생각을 못했을 정도로 무뚝뚝하지만 영철이를 많이 아껴줬었다. 이제 영철은 평범하게 춘재 아빠와 엄마와 살고 싶어졌다. 하지만 영철이는 산다는 게 본인에게 제일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노는 애, 강한 아이가 부러웠고 자신도 남들이 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지금에서야 영철은 깨닫는다. 평범함이야말로 엄청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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