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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16.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 6

노예가 되다


그 뒤로도 몇 번 영철이는 아빠의 비상금을 찾아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아빠가 숨겨둔 돈도 다 떨어져서 더 이상 마약을 살 돈이 없었다. 그들은 돈이 없는데도 계속 약을 달라고 애원하는 영철에게 돈이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갚을 거냐고 물었다. 영철이는 뭐든지 다하겠다며 애원했다. 그들은 영철에게 심부름을 시켰고, 그들이 시킨 심부름을 하나씩 할 때마다 주사를 놓아주었다. 영철은 묵묵히 그들이 시킨 일을 했다. 영철은 그들이 정해준 장소에 가서 어떤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에게 돈을 받아서 전달하는 수거책이 되었다. 중학생이지만 체격이 있는 영철이라 오토바이를 타고 헬멧을 쓰고 있으니 아무도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영철이가 처음으로 심부름으로 돈을 받았던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누가 돈 받아오라고 시켰어요. 000 할아버지 맞으세요? 000에서 뭐 받아오라고 하던데요.
-응. 여기 있어. 우리 딸 잘못되면 절대 안 된대이. 나 죽어도 좋으니 우리 딸만큼은, 불쌍한 내 딸만큼은 죽으면 안 된다. 엄마 1살 때 죽고 나 혼자 애지중지 키운 내 딸. 불쌍해서 우짜꼬. 제발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 전해줘. 나 절대 경찰에 연락 안 할 테니.
-할아버지, 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전 전달만 하는 배달 기사예요.
-그래도 꼭 좀 부탁할게요. 청년 제발 말 좀 잘해줘.
-네. 이거 주면서 할아버님 말씀 꼭 전달할게요.
할아버지는 영철에게 울먹이며 꼭 딸을 살려달라고 전달해 달라며 돈가방을 주었다. 처음에는 심부름을 시킨 이들이 받아야 할 돈을 받는가 보다 생각했다. 또는 조직이 할아버지에게 빌려준 돈이 있어서 이자를 올려 받는 돈인가 보다 생각했다. 할아버지를 만난 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할아버지의 딸을 죽인다고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것이었고, 본인은 그 돈을 받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영철이는 본인이 주사를 안 맞아도 좋으니 불쌍한 할아버지를 더 이상 힘들게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아서 가니 고생했다며 실장이 가방 가득 든 현금에서 몇 장을 꺼내 영철에게 주었다. 30만 원이었다. 그 돈이 중학생인 영철에게 큰돈이긴 하지만 무척 더럽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피해 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마음보다 마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했다. 영철이는 그 뒤로도 딸이 납치되었다고 납치범에게 주는 줄 알고 찾아온 할아버지, 정식 대출이 힘들어 큰돈을 빌려야 하는 소상공업자에게 사기 친 돈을 받아 전달했다. 담보로 돈 얼마를 빌려서라도 입금하면 그들이 원하는 큰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전화를 받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경제적 약자의 돈이 대부분이었다. 영철이는 가난하고 힘든 자들의 피땀 어린 돈을 받아 조직에 전달했다. 갈 데가 없는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땀과 눈물 한 방울까지도 쥐어짜 내는 조직에게 환멸을 느꼈다. 마약에 중독되어 그들의 나쁜 짓을 도와주고 있는 자신이 더 역겨웠다. 보이스 피싱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자기가 주사 한 방을 받기 위해 도왔다니. 구역질이 났다. 결국 영철은 10대에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자 마약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마약은 부르는 게 값이라 조직원들은 100만 원 불렀다가 갑자기 500만 원 부르기도 했다. 영철이의 마약값은 보이스 피싱 범죄에 가담한 수고비를 넘어서서 영철은 조직원들에게 빚까지 지게 되었다. 영철이는 마약에 중독된 자신이 싫었고, 어렵고 힘든 자들을 위해 돕기는커녕 등쳐먹는 자신이 미웠다. 살아가는 자체가 무기력해졌다. 점점 보이스피싱 조직이 영철에게 현금 전달시키는 액수가 커졌고, 횟수가 너무 심해졌다. 피해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표정으로 애절하게 돈가방을 영철에게 전해줄 때면 영철은 가방을 그들에게 다시 던져주며, 모두 거짓이니 당장 도망가라고, 경찰에게 당장 신고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영철은 자신에게 돈을 건네는 사람들에게 제정신이냐고, 이런 데 넘어오는 바보 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며 은행에 다시 뛰어 들어가서 입금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영철은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비겁하게만 느껴졌다. 영철이 만난 상대들은 순진한 사람들인지 보이스피싱이라고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들은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가는 나뭇가지 붙들고 있는 사람의 눈빛을 바라보며 라이터로 나무에 불 붙이는 것 같으리라. 아래로는 수심을 가늠할 수 없는 강물에 세찬 물이 흘러가고, 떨어지면 몸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뾰족한 바위들이 가득 있다. 영철은 자기가 그들이 잡은 나무에 불 붙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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