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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14.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 5

보미, 슈퍼 아줌마 / 영철, 슈퍼집 아들


며칠 뒤 아들 영철이가 집에 돌아왔다. 영철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무척 말라 있었고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영철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보미는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보미는 가출했던 영철이가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몸이 아파 누워만 있는 춘재와 세상 한탄을 하던 보미는 영철이가 돌아오자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절대 영철이의 가족은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우선 춘재가 달라졌다. 180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춘재는 보미와 함께 한 지금까지 연애 2년, 결혼 14년 동안 폭력적인 모습을 1%도 보이지 않았다. 춘재는 원래 말이 별로 없고 조용히 보미를 배려하는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다. 그랬던 그가 폭행 사건 이후 폭력적으로 변했다. 매일 하루에 한두 번씩 욕을 하며 책상이나 벽을 쳤고, 상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내인 보미를 밀치고 때렸다. 보미는 변한 춘재가 너무 두려웠다. 보미는 남편이 폭행 사건으로 뇌가 일시적으로 이상해져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만 참으면 다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보미에게 돌아오는 건 더 심한 남편의 폭력이었다. 그나마 보미가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들인 영철을 때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보미는 남편인 영철에게 매일 맞으면서 왜 갑자기 춘재가 변했을까 생각했다. 춘재는 폭력적으로 변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춘재는 슈퍼와 집만 알던 사람이었는데, 폭력의 피해자가 된 이후 하루에 5시간 이상 매일 어딘가로 나갔다 돌아왔다. 보미는 1년 365일 매일 폭력적인 남편, 매일 이유를 말하지 않고 최소 5시간 이상 말없이 나갔다 오는 남편과 같이 살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들인 영철이가 상처받을까 봐 마음에 걸렸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이곳에서 다 함께 사는 것보다는 이혼하고 영철이와 둘이 따로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이혼을 생각했지만 남들의 시선, 경제적 문제, 당장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다른 문제들이 두려웠다. 보미는 그렇게 몇 년을 참았다. 참고 살면서 보미는 이혼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병원 가거나 약 샀던 기록 등도 차곡차곡 수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철의 엄마인 보미는 춘재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동안 준비했던 자료가 방대하여 춘재와 쉽게 이혼할 수 있었다. 춘재에게 모은 자료를 내밀며 소송까지 갈 것인지 그냥 합의 이혼할 것인지 보미는 조용히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이제 남편인 춘재에 대한 마음은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 이혼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춘재가 말할 줄 알았는데 춘재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이혼 도장을 서류에 찍었다. 보미는 조건을 걸었다. 양육비 등 다른 돈은 필요 없으니 집을 달라는 조건과 아들 영철은 본인이랑 같이 살 것이라는 조건이었다. 춘재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춘재의 반응에 보미는 놀랐다. 보미가 영철이에게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되었고, 영철이는 엄마랑 함께 살자고 말했더니, 예상밖의 일이 생겼다. 영철이가 울면서 애원했다. 자기는 아빠랑 같이 있겠다며 엄마가 이해해 달라고 했다. 보미는 영철이의 반응에 더 놀랐다. 당연히 영철이는 엄마랑 산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빠랑 같이 살 거니 이해하라는 말에 보미는 하늘이 무너졌다. 보미는 이혼의 두려움보다 아들을 잃은 것이 더 힘들었다. 지금이 보미에게 제일 불행한 것 같았다. 보미는 이틀을 꼬박 울고 나니 조금 진정되었다. 보미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생각했다. 춘재는 영철이를 때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때리진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슈퍼마켓 운영에서 다리 불편한 아빠 옆에 아들이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부가 가진 것은 집과 슈퍼마켓이 있었다. 형편이 그리 좋지 않으므로 생활비, 영철이 교육비 등을 춘재가 감당해야 하니 보미는 위자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본인은 남의 집 파출부나 식당이나 다른 가게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슈퍼마켓을 하는 춘재가 본인보다는 영철을 돌보기에 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철이에게 배신감 느꼈던 보미는 영철이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13살 때 집을 나갔다 한 달 만에 돌아온 이후로 영철이는 성격이 많이 변했다.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이었던 영철이는 원래 말이 별로 없었던 아빠 춘재보다 더 말이 없어졌고 무뚝뚝해졌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밝고 엄마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아들이었는데 가출할 즈음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보미는 중학교에 입학한 후 영철이가 적응하기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학교에 관해 물어도 영철이는 모두 괜찮다는 말만 짧게 하고 더 이상 질문을 못 하게 했다. 그랬던 영철이가 갑자기 가출을 했다. 보미는 아들에게 힘든 일이 생겼는데, 엄마인 자신이 몰라줬다고 자책했다. 가출한 지 약 한 달 후에 돌아온 영철은 예전의 영철이가 아니었다. 명랑하고 엄마바라기였던 영철이의 모습은 사라졌다. 돌아온 영철이는 엄마인 보미를 아무 감정 없는 멍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더 이상 묻지도 못하고 속만 태우던 보미는 영철에 대한 걱정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춘재의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매일 일이 벌어졌고, 일이 더 커지거나 길어질까 봐 보미는 집을 뛰쳐나갔다. 잠시 이웃집에 있다가 집에 가보면 춘재는 항상 자고 있었다. 보미가 집에 들어가 춘재가 자는 걸 보고 영철이 방으로 가서 문을 열면 잠을 안 자고 있던 영철이는 엄마를 흘깃 쳐다만 봤다. 그러보는 이불을 얼굴에 덮어썼다. 보미는 영철이를 확인한 후 작은 방에 들어가 잤다.
그러기를 몇 년을 하니 보미는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혼을 요청했고 순순히 이혼은 성립되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변명하지 않고 도장을 찍는 춘재도 놀라웠지만, 자신이 아빠랑 같이 살면 안 되냐고 당당히 말하는 영철이 때문에 가슴이 쓰라렸다.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나중에 본인이 돈을 좀 모은 후 안정적으로 되면 영철이에게 엄마와 같이 살자고 요청할 생각이었다.


<영철, 슈퍼집 아들>
영철은 아빠의 변화가 본인 때문인 것 같았다. 매일매일 양심에 찔리고 마음이 아팠다. 폭력적으로 변한 아빠의 모습도 낯설고 아빠에게 맞서지 않고 무조건 맞기만 하는 엄마의 모습도 낯설다.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고 했다. 아빠가 나랑 같이 지내겠냐고 묻는데 영철이는 알았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너무 미안했지만 같이 살자는 엄마에게 자신은 아빠와 당분간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충격을 받은 엄마를 보기가 힘들었지만 본인 때문에 힘들게 된 아빠를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엄마만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엄마는 본인과 아빠에게 있었던 사실을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엄마를 보는 내내 본인 때문에 가족이 변화되고 해체된 것 같아 마음에 찔렸는데 엄마와 같이 살지 않는다면 죄책감도 덜 느낄 것 같았다. 엄마가 집에 없다면 한결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영철이는 집안에 생긴 모든 변화가 본인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영철이는 매일 분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들이 언제 다시 찾아와 나와 아빠를 괴롭힐지 모르겠다. 끝이 없다는 두려움이 숨조차 멎게 했다.
영철은 본인이 13살에 왜 그랬는지 후회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짱이었던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는 체력이 좋고 힘이 세서 반에서 짱이 되더니 어느 순간 학교짱이 되어 있었다. 반 친구들은 그 아이 눈치를 보고 그 아이의 심부름을 하거나 숙제를 대신해주기도 했다. 분명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선배들도 그 아이를 두려워하고 피했다. 대구의 깡패 두목이 그 아이 뒤에 있어서 이 아이를 건드리면 목숨이 끝장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아이는 선배, 동기, 초등학생 후배들에게 물건, 돈을 빼앗았다. 영철이도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영철이는 어느 순간 그 아이의 밥이 되어 있었다. 영철이는 매일 그 아이의 심부름으로 뭔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집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려고 노력했으나 학교에 가면 매일 맞거나 심부름하는 삶을 살았다. 그 아이가 시킨 일을 하기 위해 엄마에게는 학교 마치고 학원 학원이나 스터디카페에 가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다 그 아이뿐만 아니라 동네 깡패들의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심부름으로 가방을 전달하던 중 동네깡패 중 한 명이 영철이를 보고 다가왔다.
-이 새끼 우리에게 충성을 다하는데, 상 하나 줄까? 우리 아끼던 거 있지? 00아 그거 들고 와.
영철은 빨리 이들에게서 벗어나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인데 반항할 수는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누가 주사기를 갖고 와서 영철에게 놓아준 것까지 기억났지만 그 이후 영철은 기절했다. 주사로 어떤 액체가 들어오는 데 온몸이 부어오르고 칼에 찔리는 듯 아팠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헉헉거렸다. 고통을 느끼는데, 머릿속에 어떤 영상이 흘러갔다. 자살하고 맞고 차 등에 치이는 듯한 느낌이 나서 여철이는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본 깡패조직원들이 낄낄거렸다.
-이야 이거 성능 좋네. 재밌네. 재밌어. 완전 코미딘데?
-이 새끼 어떡할까?
-그냥 창고에 집어넣어. 헤롱거리는 꼴 보기 싫어.

몇 명이 달려들어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영철이는 어떤 곳에 집어던졌다. 불도 켜지지 않은 그곳에서 영철이는 온몸을 뒤틀었다. 뇌가 찢기는 것 같았다.
-술집 가서 술 한잔 때릴까?
-좋지. 가자.
영철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기분은 좋아져서 이상했다. 구름을 날고 있는 느낌이 들더니 기절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영철이는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떠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다. 영철은 본인이 아까 어떤 주사를 맞은 건 기억나는데, 이 창고로 들어온 기억은 없다. 그는 본인이 쓰러져있었던 바닥 주변을 살폈다. 오래된 책상과 의자가 쌓여있는 바닥에 본인의 휴대전화가 있다. 주워서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2시이다.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을 가도 12시면 돌아가곤 했었던 영철은 걱정할 엄마가 생각나 급하게 집에 갔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영철은 거실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안도감이 들었다. 영철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엄마 너무 걱정했잖아.
-오랜만에 공부하니까 공부가 너무 재밌어. 엄마, 나 공부 계속해야 할까 봐. 나 공부에 재능 있나?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래도 기초부터 단단히 하다 보면 잘될 거야. 열심히 해봐. 분명 성적 오르겠지. 우리 아들 파이팅!
-당연하지, 엄마 아들 몰라? 한다면 하는 거?
평소 살뜰하게 엄마에게 말하는 편이 아닌 영철이가 그렇게 말을 해서 보미는 속으로 놀랐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철이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깡패조직원인 그들이 영철에게 주사를 놓은 그날부터 영철은 약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영철이를 완전 낭떠러지로 밀었다. 한 번 접한 마약은 중단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간 날 집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놓아줬던 주사가 생각났다. 소름 끼치는 나쁜 생각과 숨 막힘이 주사 한번 맞으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때 그 주사를 맞고 고통으로 비명이 나오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쾌감이 느껴지고 안정감이 느껴졌었다. 그 쾌감이 자꾸 생각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사생각으로 식은땀이 났고, 몸이 떨려왔다. 주사 맞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던 영철은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찾아갔다. 뭐든 시켜주면 자신이 할 테니 지난번 선물이라며 놓아주었던 주사 좀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의 '그럼 그렇지'라는 눈빛, 밥이 한 명 들어왔다는 쾌감의 눈빛, 짓궂음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이 무섭고 싫었다. 하지만, 주사를 맞고 싶었다. 영철은 온몸이 떨리고 아파서 시름시름 앓았다. 주사를 맞지 않으면 고통이 더 심해져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영철은 제발 주사 좀 놓아달라고 그들에게 애원했다. 그중 제일 얍삽하게 생긴 아이가 웃으며 주사 한 방당 20만 원이라며 돈 주면 바로 놓아준다고 했다. 돈이 없다고 하니 그들은 돈을 어떻게든 구해오라고 했다. 영철은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다. 훔친 것은 아빠의 비상금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책상 안이나 집 안에 있는 높은 장 같은 곳에 돈을 넣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모르는 돈이었다. 기억을 되살려 영철은 아빠의 비상금을 뒤졌다. 역시 영철이 예상한 몇 군데에 비상금이 있었다. 그 돈을 들고 조직원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주사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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