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appysmilewriter
Oct 13.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 4
학생과 학생 아닌 것의 차이
춘재와 영철은 오늘도 슈퍼마켓에 나와 물건을 팔았다. 남들이 볼 땐 서로 말이 없는 부자지만 항상 함께 다녔다. 영철은 원래 00 학교 3학년 재학 중인 학생이지만, 슈퍼마켓을 찾는 사람들은 영철이가 학생인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손님들이 슈퍼에 오면 항상 영철이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영철이는 무단 지각, 무단 조퇴, 무단결석을 습관적으로 했다. 소위 말하는 매년 신경 쓰고 주의해야 할 인물이었다. 영철이의 담임 선생님은 무단이 잦은 영철이를 처음 두 달간은 윽박질러도 보고 벌점도 주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집에 전화해 봐도 아버지라는 사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 몰라라 했다. 예전에도 자주 그런 일이 생겼다. 1학년 초 영철이는 자기에게만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것 같은 00과목 선생님이 기분 나빠 처음으로 무단조퇴를 했다. 막상 학교를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처음 며칠간은 피시방에 가서 게임만 10시간 했다.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밤에 집에 가면서 아빠와 엄마가 지금쯤 난리가 나 들어가자마자 등짝 몇 대 맞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집에 가니 두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분명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을 텐데 학교를 무단으로 뛰쳐나간 아이의 부모치고는 반응이 이상했다. 영철이는 그다음 날도 학교가 가기 싫었다. 가지 않았다. 엄마가 아침에 두 번 정도 깨우면서 학교 가라고 소리 질렀으나, 영철이가 안 간다고 하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영철이는 친구도 없다. 중학교 시절부터 반 친구들은 영철이를 투명 인간 대하듯 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봐주는 친구 한 명도 없었다. 소위 말하는 노는 친구도, 모범적인 친구나 평범한 친구들 모두 영철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냥 같은 반이라는 공간에 있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기술실, 미술실, 강당, 음악실 등으로 이동했다. 엎드려 자거나, 움직이거나 다른 뭔가를 해도 영철이는 항상 존재감이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영철이가 자리에 없어도 선생님들이나 반 친구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간혹 학급 단위의 간식 등을 받을 때 못 받은 친구를 파악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00과목 선생님이 자는 영철이를 자꾸 깨웠다. 말을 걸고 계속 뭔가를 하게 했다.
영철이는 귀찮고 신경질이 나서 무단으로 뛰쳐나왔지만 갈 데가 없었다. 집과 슈퍼마켓 외에는 갈 데가 없었다. 아무 말 없이 가게에 가서 아빠 옆에 서있었다. 묵묵히 계산을 도왔다. 아들이 학교를 갔을 시간인데 안 가고 슈퍼마켓에 있다는 것을 춘재는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춘재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하루 종일 저 두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계산대에 같은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만 찍을 확률이 대부분이었다. 손님이 와야 자세가 바뀌었다. 춘재가 외출하거나 배달하러 갈 때도 동선은 달라졌다.
둘 다 친절한 성격은 아니라 손님들은 표정이 굳은 두 사람이 익숙했다. 두 사람이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학교를 무단으로 빠지게 되니 담임 선생님은 영철이에게 하루에 2, 3번 정도 전화를 했다. 영철이는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영철이와 연락이 안 되면 영철이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인 보미는 항상 선생님께 죄송하다며 내일은 영철이는 꼭 보내겠다고 말했지만 다음 날도 영철이는 학교를 가지 않았다. 나중 담임 선생님이 학교는 어떻게든 오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기가 힘들면 1시간이라도 와서 출석은 찍자고 했다. 영철이는 매일 전화 오는 선생님과 매일 영철이를 붙잡고 울고 불며 학교 가기를 애원하는 엄마 때문에 학교에 갔다. 그들을 걱정했다기보다는 본인에게 뭐라고 설득하는 것이 귀찮아서 갔다. 점심 먹고 난 후 늦은 시간에 학교에 갔다 선생님 얼굴만 보고 금방 나왔다. 2학기가 되자 그동안 60일 정도 무단결석했다고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지금 영철이 아직 안 왔는데 학교올 수 있나요?
-네, 애가 학교를 안 가서 죄송합니다.
-영철이 이제 3학년 마지막 학기입니다. 몇십 일 지나면 유급되는 규정이 있어요. 만약 영철이가 몇십 일 결석하게 되면 내년에 다시 3학년
생활을 해야 해요. 영철이가 유급되면 후배들과 학교에 다시 잘 다닐 수도 있겠지만, 유급되고 나면 현실적으로 학교에 돌아와 적응하는 케이스가 무척 드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영철이가 2년 반을 다녔잖아요. 이제 1학기만 잘 지내면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동안 다닌 게 너무 아깝습니다.
-네, 그렇지요. 하지만 영철이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애가 말을 영 안 듣네요. 자기만의 세상 속에 빠져 사는 것인지, 대체 영철이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졸업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는데, 늦게라도 학교 오면 결석은 아니니 유급당하지 않게 부모님이 도와주세요. 학교 한 시간이라도 가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독감, 코로나19 검사를 하면 출석 인정 결석이 됩니다. 혹 영철이에게 열이나 기침 등 여러 감기 증세가 있으면 병원 가서 검사를 하게 하세요. 진료 확인서나 진단서 등 검사했다는 확인 서류를 사진 찍어 제게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전송해 주심 그날은 출석 인정이 됩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영철이에게 이렇게 관심을 주시고 애써주셔서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어머니, 꼭 영철이 졸업식에 오셔야지요. 영철이 반드시 졸업할 겁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졸업은 꼭 시킬게요.
선생님과 1시간 넘는 통화를 하고 영철이를 졸업시키려는 선생님의 진심에 감동한 보미는 어떤 경우라도 영철이를 졸업은 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엄마와 담임 선생님이 통화하는 것을 춘재와 영철이는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담임 선생님이 아침마다 영철이의 집이나 슈퍼마켓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 받으면 담임 선생님은 슈퍼마켓에 들러 영철이를 꼭 등교시켜야 한다고 당부하고 출근했다. 선생님이 전화를 많이 하고 관심을 가지니 귀찮아진 영철이는 억지로 학교에 가서 출석 체크라도 하고 돌아왔다.
춘재와 영철에게는 보미에게 말하지 못하는 둘만의 비밀이 있었다. 춘재의 다리는 항상 쑤시고 아팠다. 이날 따라 유독 춘재의 다리가 욱신거렸다. 슈퍼마켓에 앉아 있거나 서있을 때는 모르지만 배달하기 위해 온 춘재를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는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왼쪽 허벅지 부분이 손상이 많이 가서 이제는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진통제를 매일 먹다시피 했다. 춘재가 평생 왼발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영철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 해에 춘재는 깡패들에게 집단으로 맞았다. 그날 10시간 정도를 맞은 춘재는 만신창이가 된 채 기절했다. 춘재는 이 날 죽도록 맞았는데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목숨은 붙어있었으니. 춘재의 부인인 보미는 남편이 병원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숨을 안 쉬어지고 걸을 수가 없었다. 당시 중1이던 영철이가 가출해서 생사를 모르는 상태였는데, 남편마저 병원 응급실에 심각한 상태로 있으니 보미는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보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날 보미는 슈퍼에 놀러 온 이웃집 언니가 응급실에 태워줬다. 보미는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병실에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을 처참했다. 남편이 왜 저런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 그날 보미는 이웃집 언니의 부축을 받아 집에 겨우 왔다. 춘재가 있는 병원으로 경찰이 와서 이것저것 조사했지만 춘재는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인상착의도 기억을 못 하겠다는 말만 계속했다. 처음 본 사람들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때렸다고만 하니 경찰은 CCTV나 목격자를 찾았다. 목격자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CCTV나 근처 블랙박스 차를 찾았으나 찾기 힘들었다. 겨우 찾아도 기계는 이상하게 고장 난 상태여서 영상을 볼 수 없었다. 경찰은 폭행의 가해자를 찾을 단서를 찾지 못했다. 발자국, 담배꽁초, 폭행 도구 등도 가해자가 다 치웠는지 발견되지 않았다. 살인 등과 같은 강력범죄가 많이 생기는데, 증거도 나오지 않는 폭행 사건에 경찰들의 관심이 사라졌다. 춘재사건은 이렇게 묻혔다.
보미는 남편의 몸이 좀 좋아졌을 때 남편에게 물었다.
-진짜 폭행한 당사자나 폭력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거예요?
-응. 길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여러 명의 남자가 달려들더라. 나를 창고 같은 곳에 끌고 가 돈도 뺏고 죽도록 때리더라. 실컷 때렸는지 나를 버리고 갔어. 내가 돈 많게 생겼나 봐. 흐흐
-진짜야? 나한테 말 안 한 거 없어?
-응. 진짜야. 내가 알면 말하지 말 안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나 지금 연락 안 되는 영철이 생각만으로도 죽을 것같이 힘들었어. 자기마저 이러면 나 어떻게 살아? 너무 힘들어. 흑흑
보미가 우는 모습을 보고 춘재는 한숨을 쉬었다. 한참을 울던 보미는 그들이 남편을 죽이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냐며 남편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보미는 남편의 다리를 평생 절뚝거리게 만들어 놓은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아들도 가출해서 행방을 알 수 없는데, 어떤 미친 사람들이 남편을 저렇게 때렸는지 자신의 인생이 왜 이런지 한탄했다. 남편이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보미는 자기 인생이 기구해서 꺼이꺼이 울었다. 영철이가 가출해서 매일 찾으러 돌아다니면서도 울지 않았던 보미였는데, 남편마저 저렇게 되니 인생이 왜 이렇게 자기에게, 우리 가족들에게 가혹한 것인지 원통하고 원망스럽다. 보미는 소리 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