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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11.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3

아진과 j의 첫 만남


아진이는 중학교 친구인 M과 대학로 2시 연극을 예매해 놓았다. M과 아진이는 다른 대학교이지만 둘의 학교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방값도 아끼고 서로 도움도 줄 겸 1학년 때부터 함께 살았다. M이 오전에 일이 있어서 2시 연극을 보기 전 극장 바로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1시에 만나 간단히 점심 먹기로 약속을 했다. 11월 기말고사 친 후 바로 대구로 내려왔다. 2달 정도 단기 과외를 하고 매일 술 약속에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서울에 올라가서 전공 공부도 시작하고 토익 공부도 해야 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날 대학교 앞 자취방에서 같이 살고 있는 M을 만나 밥도 먹고 연극을 보기로 했다. 내년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기 전 함께 놀며 공부할 의지를 서로 북돋워주기로 했다.
연극은 연인끼리 봐야 더 재미있게 느껴지겠지만, 현재 두 사람은 여자 친구가 없었다. 모태 솔로라 할 수 있는 M과 6개월 전 여자 친구 섬세하지 않다는 한마디만 남기로 이별을 고했기에 현재 솔로인 아진이는 솔로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함께 산 3년 동안 제일 친해진 것은 아진이의 이별 이후였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친해져서 솔로면 어떠냐고 외치며 연극, 영화도 같이 보고, 밥과 술도 함께 먹으러 갔다. 간혹 다른 이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기도 하지만, 뭐 어떤가? 꼭 이성과만 밥 먹고 연극 봐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법으로 제정된 것도 아니니 말이다.

서울역 KTX 기차가 제시간에 왔다. 입석인 사람들이 각 호차 중간 통로에 가득 서 있었다. 1시간 40분을 저렇게 서서 가야 하는 사람들이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아진이는 자리를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기차에 앉아 휴대전화를 펴서 넷플릭스를 검색했다. 별로 볼 게 없었다. 폰을 끄고 잠이라도 자려했으나 아침에 마신 커피 탓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도착하기로 예정되었던 12시 25분, 제 시각에 아진이가 탄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했다. 순조로운 일정이었다. 아진이는 몇 분도 지연되지 않고 제시간에 기차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지금까지 서울역에서 동대구로, 동대구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많은 기차를 탔지만 지연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다. 오늘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는 일들이 척척 잘 진행된다고 생각하던 찰나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긴장했다. 아진이는 어깨에 멘 백팩이 잘 매여있는지 확인했다. 사람 많은 곳에는 항상 소매치기가 있을 수 있다. 이어 휴대전화와 지갑이 잘 있는지도 손으로 더듬어 확인한 후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중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에스컬레이터 줄은 너무 길어 올라가는데 한참이 걸릴 것 같았다. 그나마 계단이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진이는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바로 앞에 어깨가 굽은 긴 파마머리 여자가 작은 백팩을 메고 사선으로 또 다른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그 여자는 단연 눈에 띄었다. 아진이는 계단 두 개를 성큼 올라가고 싶은데, 앞의 어깨 굽은 여자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다. 아진이는 가방을 멘 틈조차도 앞뒤 사람들에 의해 눌러져서 불편해서 앞사람의 속도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쉬며 앞에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여자를 흘깃 바라봤다. 그녀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뭔가 긴장했는지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사선으로 맨 가방을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할 것처럼 오른손으로 가방을 잡고 왼손으로 왼쪽 끈을 꽉 잡고 있었다.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땅만 바라보며 걷고 있는 그녀의 어깨는 심하게 굽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예쁜 파마가 아니라 시골 장터에서 한 듯 촌스러운 파마였고, 20대 같지 않게 염색기가 하나도 없는 검은 머리였다. 아진이는 파마가 참 안 어울리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전체적으로 답답한 스타일이었다. 자세도 꾸부정한 등을 하고 땅만 바라보며 걷는 여자는 입은 옷마저 답답했다. 본인 발목까지 올 듯한 긴 코트를 입었는 데 답답해 보였다. 색깔도 깔끔한 검은색도 아니라 회색, 갈색, 보라색 등이 섞인 우중충한 색의 코트였다. 아진이는 계단을 올라갈 때 앞에 있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부딪칠까 싶어 힘을 잔뜩 줬다. 계단 끝에 올라오니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아진이는 얼른 그녀를 제치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각, 토요일 오후의 지하철역은 어수선했다. 내려가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이 서로 부딪칠 정도였다. 아진이는 대학로로 가는 당고개행 4호선 플랫폼에 서 있었다. 지하철 도착하기까지 1분 남았다.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아진이는 이상한 느낌의 정체가 뭔가 싶어 왼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앞에 있던 답답했던 파마머리의 여자 J가 있었다. 아진과 J는 같은 공간에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녀도 같은 지하철을 탔다. 답답한 느낌이 아진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1초 정도 그녀를 바라본 후 아진이는 휴대전화를 열어 사회, 정치면의 포털사이트를 도착할 때까지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혜화역에 도착했다. 아진이는 지하철에서 내려서 계단으로 올라갔다. 앞에 서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어딘가 친숙했다. 서울역 기차역에서 만났던 바로 그 J였다. 아진이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따라 왜 이 여자가 자꾸 보이는 거야? 답답하다. 답답해'
J는 핸드폰을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호기심이 들어 아진이는 J의 옆으로 걸으며 곁눈질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이 무척 부자연스러웠다.

여전히 J는 눈을 내리깔며 가고 있었는데, 아진이가 슬쩍 곁눈질해도 보일 정도로 쌍꺼풀 선이 눈 크기처럼 크게 그어져 있었다. '성형수술 부작용인가 봐. 쌍꺼풀 선이 저렇게 부자연스럽게 되다니. 그 의사는 왜 저렇게 수술했대? 무면허 의사한테 한 거 아니야? 사람 얼굴 다 망쳐놨네. 게다가 사람 얼굴 같지 않은 외계인 같은 얼굴형인데.'
눈보다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윤곽 수술을 했는 것인지, 역삼각형의 얼굴 형태가 인조인간 같은 느낌을 주었다. 뺨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턱까지 칼로 오려낸 듯 세모 형태였다.
'어떻게 턱을 깎아도 저렇게 깎았을까? 진짜 저 여자분 큰일이네. 얼굴 보기 무섭고 두려울 정도로 이상해. 저 정도면 병원에 소송 걸어도 100% 이기겠어. 에고 나중에 윤곽 수술 할까 했었는데, 저 여자분 보니 안 되겠다. 그냥 이대로 살아야겠다.'
그때 아진과 J의 눈이 마주쳤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둘은 금방 시선을 피했다. 당황한 아진이는 걸음을 빨리 해 그녀 옆을 지나쳐 올라갔다. 친구 M의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다. 아진이는 마침 전화가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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