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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09.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2

어둠 속 소리


주인 아가씨의 부탁을 받고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대구에 내려왔다. 아가씨는 서울에서 자기 부탁 들어준다고 고생했다며 며칠 휴가를 주었다. 친구도 만나고 밀린 집안일도 하며 지냈다. 쉬다가 오랜만에 출근했다. 아라는 오늘이 유독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퇴근하기 위해 일하던 집문을 여는 순간 무거움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후련함을 느끼며 나오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니고 부슬부슬 약한 비가 물줄기를 뿌리며 내리고 있었다. 아라는 평소 가방 안에 우산을 들고 다녔다. 아라는 우산을 꺼내 펼친 후 평소 준비를 철저하게 잘해온 자신을 스스로 칭찬했다. 우산을 들고 주차장에 가서 시동을 켰다. 이제야 휴대전화를 꺼내 근무한 동안 본인에게 연락이 온 것 있는지 살펴봤다. 오래간만에 일하러 갔는데 할 일이 너무 많아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었다. 부재중 전화가 10통 와있었다. 누가 전화했는지 확인했다. 네 시부터 그날 오페라 같이 보기로 경이에게 연락이 왔었다. ’아, 맞다.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어쩌지?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할까 고민하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역시 그 친구로부터 많은 카톡이 와있었다.
'아라야, 전화가 안 되네. 아주 바쁜가 봐. 큰일 났어. 오늘 회사 일이 늦게 마쳐 오페라 시간까지 못 가. 일찍 퇴근하려고 집중해 자료 만들어 보고했는데, 팀장이 다시 작성하래. 내일 아침 8시에 부사장님에게 보고해야 하니까 오늘 완성한 후 퇴근하라 하네. 아라야 진짜 미안해'
'아라야, 오페라 마치고 나서 공연장 바로 근처 레스토랑에 와. 예약해 놓을게. 공연장에서 운전해 3분 거리니, 식당에서 바로 보자. 맛있는 거 사줄게. 아라야 너무 미안해'
아라는 짜증이 나서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핸드폰 거치대에 두고 시동을 걸었다. 화는 나지만 회사 일 때문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참기로 했다.
거치대에서 핸드폰을 꺼내 답변을 보냈다.
'알았어. 화나지만 이번만 특별히 참을게. 어쩔 수 없지.'
'아라야. 사랑해. 진짜 고마워. 너 혼자 공연을 보게 해서 미안해.'
공연을 혼자 보러 간 적이 거의 없었던 아라는 경이가 못 와서 혼자 보게 된 것도 싫지만 예약해 둔 표 한 장을 그냥 버려야 한다는 그 생각에 돈이 아까웠다. 돈이 아깝지 않게 두 사람의 집중력을 모아 공연을 관람하기로 결심했다. 리골레토 역을 한 남자배우의 중저음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오페라를 보고 나오니 아까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그곳에서 혼자 있다는 사실이 외로웠다. 특히 비 오는 밤에 걸어간다는 것이 쓸쓸했다. 공연장 문을 나서 우산을 폈다.
'주차장이 왜 이렇게 먼 거야? 아까보다 정말 춥네. 대체 기온이 몇 도이지? 겨울은 겨울이구나.'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아라가 걸어가고 있는 길 맞은편에 위아래 검은색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지나간다. 우산 너머 슬쩍 그 남자를 봤다. 그 순간 아라는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왜일까?

그 남자는 검은색 패딩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우산을 눌러써서 얼굴형체는 볼 수 없었다. 인상적인 건 크고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밤인데 마스크가 하얀색보다는 형광 흰색인 듯 과한 색깔이었다. 요즘은 코로나나 전염병이 많이 사그라들고 마스크 쓴 이를 거의 보지 못하는데, 감기 같은 병에 걸렸거나 질병에 걸리고 싶지 않은 건강 염려증 환자인가 보다고 추측했다. 아라는 그 남자 옆을 지나가는 순간 싸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매서운 눈으로 아라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분명 나를 노려봤어. 그럴 리가. 대체 왜? 그 사람이 미친 사람도 아니고, 내게 원한 있는 사람도 아닐 텐데. 내가 예민한 걸 거야.'
'아 나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사람인가 봐. 그냥 행인일 뿐인데. '
공연장에서 주차장 가는 길에 있는 보도블록으로 평평한 바위가 깔려 있었다. 예전 그곳을 걸어갈 때는 바위 위에 신발이 부딪치는 소리가 참 경쾌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이상하게 소리가 묵직했다. 무거운 소리, 좀 전에 봤던 소름 끼치는 남자의 표정을 마음에서 얼른 지우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둠 속에서 아라의 걷는 소리만이 둔중하게 울렸다. 아라는 몇 걸음 걷다 무서운 느낌이 들어 긴장했다. 분명 아라 혼자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아라와 동시에 같은 보폭으로 아라 근처에서 걷고 있었다. 두려움을 느낀 아라는 살짝 속도를 늦추었다. 같은 보폭으로 걷고 있던 누군가도 아라에 발맞춰 똑같이 속도를 늦췄다. 한 사람인 듯 두 사람이 걷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공기에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이 세상에서 아라의 걷는 소리와 아라를 따라가며 어두운 밤길을 걷는 이의 걷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모두 사라진 듯 보였다.
아라는 따라오는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서 밝혀내고 싶지만, 뒤돌아볼 수가 없었다. 돌아보는 순간 블랙홀에 빠져 시간이 완전히 멈춰버릴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추고 아라의 몸은 유화 물감이 흩뿌려진 것처럼 늘어진 상태로 멈춰버려 영원히 적막 속에서 일정 속도로 걷는 소리만 들으며 살 것 같았다. 아라는 우산 든 오른손에 꽉 힘을 주고 왼손으로는 재킷을 꽉 잡았다. 빠른 속도로 걸었다. 그때였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아라는 기절했다. 쾅 거리는 소리가 저 세상 음처럼 들리더니 갑자기 암흑 속에 적막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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