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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17. 2024

겁 많은 경찰 2

무서운 방관자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된 나는 여전히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초등학생 때 A로 인해 나라는 존재는 학교에서 '정의의 사도' 또는 '남 일에 참견하고 나대는 아이'로 규정되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떤 상황을 목격했다.
당시 하교 후 걸어서 집에 가면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렇다고 버스 타기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타는 버스는 전 코스의 여고, 남고, 남중 학생들을 태우고 우리 학교 앞 정류장을 지나쳤다. 간혹 문이 열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열린 문에 가방이 낀 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 속에 기사님이 한 명 정도라도 더 밀어붙여 타라고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더 이상 단 한 명도 못 탈 정도로 숨 막히는 상태로 겨우 버스 문이 열리곤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이 중 그 누구도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간혹 아주머니는 온 힘을 다해 버스 안에 매달려있는 사람들을 밀어붙여 버스 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3월 2주 정도 버스 안 답답하고 땀나는 상황을 목격하고 겪었던 나와 친구는 40분이라는 시간을 걸어 집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8차로 건너편 보도 블록 위에 한 사람이 주먹질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허공에다 하는 것은 아니었고 앞의 물체를 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3시가 좀 넘은 밝은 오후, 보도블록에서 사람을 때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아저씨가 뭐 하는 걸까, 도로에 샌드백을 놓고 권투연습을 하나란 실없는 생각을 주고받으며 친구와 걸어갔다. 어느 정도 형체가 보일 때쯤 친구가 놀라 내 팔을 잡았다. 멈춰서 건너편 쪽을 바라봤다. 아까 그 아저씨가 때리고 있던 정체가 보였다. 뻣뻣하게 굳은 듯 서있는 아주머니였다. 아저씨는 사물처럼 굳어있는 아주머니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었다. 친구는 놀라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친구에게 같이 가서 돕자라고 말했는데, 친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서운 상황에 친구의 몸이 마비가 된 듯했다. 나는 맞고 있는 아줌마가 금방 뒤로 넘어갈 듯이 위험하게 보여 8차로를 무단 횡단해 뛰어갔다. 달리면서 아줌마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아저씨를 잡아끌어당길지 중간에 내 몸을 끼워 넣어 아줌마를 보호할지 고민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중 아줌마가 뒤로 넘어져 쓰러졌다. 아줌마의 입 주변에는 하얀 거품이 일어났다. 사람의 입에서 흰 거품이 저렇게 크고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는 쓰러진 아줌마를 더 때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뛰었다. 예상은 어긋났다. 쓰러져 입에서 거품까지 나는 아주머니 배 위에 아저씨가 걸터앉았다. 살아있는지, 숨을 쉬는지 살펴보리란 기대도 잠시 후 사라졌다. 아저씨는 아줌마 위에 걸터앉은 채 아주머니의 배부분을 주먹 쥐고 세차게 몇 대 더 때렸다. 악마였다.

아줌마를 무조건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저씨와 아줌마 사이에 끼어들어 아줌마를 감싸안아야겠다는 결심으로 뛰어드는 데 갑자기 아저씨가 일어났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줌마를 도우려는 나를 위협하거나 때리려나 보다 생각했다. 아저씨는 일어나서 쓰러진 아줌마 얼굴에 침을 뱉었다. 너무 놀라 경직되어 있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옆에 있던 나란 존재는 아저씨에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아저씨가 떠나자 정신 차리게 된 나는 급하게 아줌마를 흔들어 깨우고 숨 쉬는지 등 살펴봤다. 게거품은 물었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내게 모녀 사이로 보이는 어른 두 사람이 보였다. 큰 소리로 “제발 도와주세요. 아줌마가 죽어가요.”라고 여러 번 외쳤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위험해 처해있는 아줌마를 도우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더러운 뭔가를 보듯 바라보며 아주머니 주변을 피해 지나쳤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도와줘야 할 대상,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는데, 그냥 지나가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이상 생각하며 지체할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뛰어다녔다. 근처에 작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공장이 있었다.
“도와주세요. 아저씨, 도와주세요. 제발요”라고 외쳤다.
사장인 듯한 사람이 나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저쪽에 아줌마가 어떤 아저씨에게 맞아서 기절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아줌마 죽을 것 같아요.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아줌마 흰 거품도 나오고 진짜 돌아가실 것 같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신고 좀 해주세요. 119나 병원에 전화 좀 해주세요”
아저씨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아저씨는 내게 물었다.
“둘이 무슨 사이 같아? 부부 같더나? 모르는 사람 같았어? 어디 어디 때렸어? 몇 대 때렸어?” 등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질문을 해댔다.
"아저씨, 전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아주머니 너무 많이 맞아서 기절하셨어요. 아줌마 많이 위험해요. 죽을 수도 있단 말이에요. 제발 신고를 빨리 해주세요."
내가 여러 번 전화 한 통만 해달라고 소리쳤는데, 아저씨는 아줌마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디 때렸어? 배? 머리? 가슴? 어디를 때리던데?"
"여기저기 다 때렸어요. 시간이 없어요. 신고 좀 해주세요."
"배는 몇 대 때리던데? 머리는?"
몇 차례 시도하다 이 사람은 도와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답도 하지 않고 공장을 나와서 뛰었다. 뛰면서 때리는 아저씨, 맞는 아줌마, 남의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고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도울 생각이 없어 보이는 공장 사장, 도움을 요청했는데 지나친 모녀란 존재들로 인해 정신이 혼란했다.
슈퍼마켓을 찾아 전화 한 통화 부탁해야겠다 생각했다. 도와달라고 외쳐도 잘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전을 근처 슈퍼 주인에게 드리고 전화 한 통만 하게 부탁한 후, 경찰이나 병원에 전화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니는데 그날따라 슈퍼마켓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도로로 나왔다. 친구와 같이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친구는 그때까지 놀라서 계속 아줌마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서 도로를 다시 가로질러 가던 도중 천천히 지나가던 봉고차가 보였다. 얼른 뛰어 들어가 두 팔을 벌려 차를 세웠다. 봉고차 운전사는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제발 도와달라고, 아줌마 진짜 돌아가실 것 같다고 했다.
"근처 파출소나 병원까지 아줌마를 데려가면 안 되나요?"라고 외쳤다.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그냥 떠났다.
“학생, 도와주고 싶지만 미안해. 지금 납품 시간이 다되어서 못 도와주겠어. 정말 미안해.”
허탈하고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내가 기운 빠져선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슈퍼마켓도 보이지 않고 친구는 여전히 마비상태인 듯 있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주택에 초인종을 눌러 전화나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뛰면서 이성의 힘을 갖고 왔다. 아까 만났던 어른들처럼 도움요청을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층 이상의 주택을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 거짓말인 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창문 밖으로 쓰러져있는 아줌마를 직접 보라고 외칠 생각이었다. 직접 창문으로 보고 119에 신고만 해달라고 인터폰으로 외칠 생각이었다. 2층 이상 주택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클렉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납품시간 때문에 못 도와준다던 봉고차 기사였다.
"학생 같이 가자. 내가 아줌마 데리고 병원 데리고 갈게."
"진짜요?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
그때까지 뻣뻣하게 서서 놀라 아무것도 못하던 친구를 흔들어 깨웠다. 아저씨가 아줌마를 업고 봉고차에 태우는 것을 같이 도왔다. 그때 처음 알았다. 쓰러져있는 사람은 아무리 가냘픈 사람이라도 업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을. 우리 두 사람이 도와 겨우 아저씨 등에 아줌마를 업히게 한 후 봉고차에 태웠다.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신고자 정보에 우리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왔다.
봉고차 아저씨는 내게 말했다.
"사실 아까 그냥 지나가려 했어. 그런데 지나갔다가는 학생의 표정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았어. 학생의 표정이 안 돕고 그냥 갈 수 없어서 돌아왔어."
부모님께는 걱정할까 봐 내가 겪은 상황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다만 내 전화 오면 잘 받아달라고만 부탁했다. 며칠 동안 혹시 아주머니가 돌아가시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전화를 기다렸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 때문이었을까? 봉고차 아저씨에게는 전화가 갔을까?

그날은 만난 어른들로 인해 세상이 두렵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두려운 존재, 두려운 상황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때 사건 이후로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남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특히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상황을 보거나 겪고도 못 본 척 지나가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예전 중1 때 어떤 일을 겪은 후 사람들의 무관심이 무섭고 잔인하단 생각 들었다. 당시 지나가던 어른들, 근처 가게 주인에게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는데 어른들은 아주머니가 쓰러져있는 곳을 흘깃 바라만 볼 뿐 도움요청을 무시했다. 아주머니가 기절해 쓰러져 입주위에 거품 물고 있었고 흰자위밖에 안 보이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데도 어른들은 그냥 지나갔다.
아주머니를 보고 지나치던 많은 어른들이 잊히지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절대 잊을 수 없었고 세상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안 돕는 사회, 방관하는 사회가 슬펐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 선한 영향력,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존재이고 싶었다. 어떤 일을 해야 그런 영향력을 작게나마 미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수많은 직업이 있겠지만 내게 떠오르는 직업은 경찰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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