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smilewriter Mar 07. 2024

누군가의 부고장

아라


<<아라의 10대>>
아라는 고등학생 시절 전혜린이라는 작가에게 심취했다. 독일에 유학을 갔던 작가 때문에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환상을 갖기도 했다. 아라는 전혜린 작가의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라는 글을 좌우명처럼 수시로 꺼낸다. 가끔 그 글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 전혜린의 글을 아라만의 방식으로 바꾸어 삶의 목적으로 설정했다.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 크게 휴회하는 일 없이 매 순간 순간을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자.’라고.
아라는 고등학생 때부터 ‘격정’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10대 후반이라는 나이는 다른 나이 대에 비해 감성이 폭발하는 시기이다. 아라는 수업을 듣고 있으면서도 문득 드는 강렬한 그리움에 그 주체를 찾기 위해 무진장 애썼다. 막연한 그리움의 감정에 가슴이 터질 듯했지만, 순한 성격이었던 아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단지 감정을 시집이나 수필집의 여백에 글로 끄적였다. 산다는 것이 설레는 것으로 생각하며 기쁨, 즐거움, 슬픔, 고통의 감정, 주체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을 온 몸으로 치열하게 받아들였다. 그 시절의 강렬한 열정을 아라는 책에 모두 쏟아부었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주인공과 책의 배경, 작가와 사랑에 빠졌다.
아라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목차로 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주제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 아라는 잘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순간을 좋아한다. 하늘, 바다, 나무와 꽃 같은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는 것,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책과 영화, 예술 관람 등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해한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 자체의 신비로움, 매일, 매 순간을 열정적이고 정열적으로 지내야겠다고 다짐하며 본인의 마음이 무엇을 진정 원하고 어디로 향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30대 어느 날 회사에서 단체로 연수를 갔다. 마음 챙김이라는 연수였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앞으로 더 잘 본인의 마음을 챙기게 돕는 연수라고 했다. 별로 와닿지는 않으나 포항에서 1박 2일 동안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며 회사 일을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아라는 만족했다. 연수 중에 웰다잉(존엄사) 교육을 하는 강사가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바로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치열하게 살아가며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가 갑자기 죽음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때는 준비하지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의 의사가 상관없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 기회를 가져봅시다.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잘 살아 봅시다. 지금 여러분들은 본인의 부고장을 만들어 볼 겁니다. 내용은 자유롭게 작성해주세요. 그리고 누구에게 그 부고장을 줄 것인지도 생각해 볼게요.”
언젠가는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라는 아주 가끔 살아있는 마지막 날을 상상해 보곤 한다. 나의 마지막 날을 함께 하는 이는 누구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그들 또한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생각해 본다. 아라는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직장 메신저로 가끔 보이던 부고장을 보며 나이는 몇 살인지 직장동료와의 관계, 죽음의 원인 등에 대해 생각했다. 가끔 부고장의 주인공을 안다거나 죽음의 이유를 아는 동료가 말하는 것을 멍하니 듣기도 한다. ‘운동하다가 죽었다네. 명확하게 말하지 않지만, 자살이라는 소문이 있어. 우울증으로 죽었다 하던데, 너무 열심히 살더니 퇴직하자마자 암 발견되고 6개월도 안 되어 죽었다 하네.’등 대체로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듣는다. 어디서 알게 된 사이고 그분의 평소 성격 등 한 사람의 삶이 몇 문장의 말로 묘사된다. 아는 이는 아니지만 들리는 말에 귀를 기울여 잠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들으며 본인도 허망한 죽음이나 병으로 인해 아파서 죽는 것이 싫다고 생각한다. 예전 중환자실에 있는 지인을 면회하러 갔을 때 일이다. 코와 입에 호흡기 장치를 하고 의식이 없는 한 사람을 보고, 저 모습으로 1개월이나 몇 년을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의식이 있다고 해도 그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나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가장 듣고 싶은지가 말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나의 장례식을 열기로 했다. 친한 사람, 지인에게 부고장을 돌리고 그들과 장례 파티에 초대했다.
< 안녕하세요?
000입니다. 부고장에 제 이름이 적혀서 놀라셨죠?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전 평소 실제 제가 죽고 난 이후 하는 장례식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슬퍼하며 저를 기억해 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나 그 날이 슬픔의 날이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전 제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한, 전 죽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죽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를 말합니다. 전 여러분들이 저를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서 저의 생전장례식을 열었습니다.
제게 소중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부의금, 음식과 같은 것들은 필요 없습니다. 단 하나 부탁을 드릴게요. 제 장례식 때 제게 하고 싶은 말, 저와 공유했던 경험, 저에 관한 생각이나 느낌, 함께 한 추억담 등을 제 생전 장례식에서 읽어주세요. 편지로 적어주셔도 좋고 영상으로 틀어주셔도 좋습니다. 얘가 왜 이러나, 무슨 일이냐 묻고 싶기도 할 겁니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문구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지요? 어린 시절 읽었던 책과 작가의 영향으로 오늘 하루를, 지금, 이 순간을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진정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의미 있게,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며 지냈나를 반성했습니다.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하며 살기로 마음먹고 노력했습니다. 투덜거리고 불평만 하고 살기에는 내 삶이 너무 아깝고 소중합니다. 제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질병, 치매, 사고 등 두려워하는 것은 무수히 많지만 제일 무서워하는 일은 바로 생의 마지막 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게 더 집중하고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 걸’이라며 후회하는 것입니다. 너무 짧은 인생입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이 세상에서 눈 감는 마지막까지 나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뭔가를 후회하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열심히 나 자신과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살아가야겠다고요. 살아있는 동안 결심했던 마음이 흐트러지는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해이해진 마음을 잡아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장례식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 후회하며 죽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저의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지인들과 함께 이별식을 하는 생전 장례식을 하는 이가 있다는 글을 보고 나는 어떤 장례식이나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러 엮인 관계 때문에 의례적으로 참석하거나 부의금을 내는 장례식이 아니라 나를 진정 아끼던 이들이 함께 모여 나를 추억하고 함께 그리워할 수 있는 장례식을 하고 싶습니다. 나를 아끼는 이들이 모여 나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함께 한 추억 속 장면이나 나에 대한 얘기를 서로 나누고, 나를 그리워하는 장례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노래도 틀어주고 좋아하던 글을 낭독도 하며 나에 대해 더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들과 함께 한 경험을 나눈 후 나를 사랑하는 이들 또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멋진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습니다. 남겨진 사진 한 장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나를 가끔 그리워하고 추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아주 가끔 나를 떠올리는 그 순간, 나는 죽은 존재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고 싶다는 열망이 느껴진다면 제 초대에 응해주세요. 사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화장터에서 육체가 가루가 되는 순간을 함께 기다려주세요. 제가 뿌려달라고 한 장소에 저와 함께 가서 저의 평안을 진심으로 빌어주세요. 그리고 저를 그리워 해주세요.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죽음을 항상 기억하며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 특히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떠올리며 아름다운 향기를 주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은은한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서 문득 생각나고 그립다는 말을 듣고 싶네요. 뜨겁게 삶을 사랑하고 뜨겁게 살아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며 나를 그리워 해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저의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