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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Sep 30. 2022

아이에게도 감정의 쓰레기통이 필요해요

 아이와 글쓰기를 원활하게 하려면 대화가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글쓰기 시간의 70%는 대화에 할애해야 할 만큼 아이와의 대화는 중요합니다. 그 대화를 통해 그날 써야 할 글의 소재, 주제를 찾을 수 있고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대화를 유도해도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기 싫어요.’ 아이가 계속 그런 태도를 보이는 날은 어쩔 수 없습니다. ‘모르겠어요.’로 글을 써야 합니다.

 아이가 글쓰기 싫은 이유야 많겠지요. 그날 학원 수업과 과제가 많아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고, 머리를 많이 쓰며 생각해야 하는 그 작업이 싫을 수도 있고, 죽어라고 연필 잡기가 싫은 날일 수도 있습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글쓰기가 싫다.>

 <이거 하기 싫다. 엄마가 안 시켰으면 좋겠다.>

 <그냥 쉬고 싶다. 내일 하고 싶다.>     

 아마 그날의 글쓰기는 이런 말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써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가 살면서 감정을 그대로, 날것의 상태 그대로를 말하거나 적어보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을까요? 어른이 되면 거의 해볼 수 없는 경험입니다. 아이일 때, 뭔가에 얽혀있지 않고, 순수하고, 솔직해도 문제 되지 않을 그 나이에 그런 글도 적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지만 글로 써볼 수 있게 하는 경험. 아이는 부모 앞에서 그 글을 쓰며 부모가 안전한 상대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되고, 힘들 때 맘껏 기대도 되는 존재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얀 종이 위에서는 많은 것을 허용해 주세요. 아이가 게임 예찬을 해도, 집에서 사주지 않는 핸드폰에 대해 갖고 싶다는 마음을 써봐도, 학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외쳐도, 엄마가 마녀 같다고 흉을 봐도 그래도 괜찮다고 허용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안전한 일탈 아닌가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크게 문제 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은 배설할 수 있습니다. 꽉 막힌 마음을 비워내고 새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이 줄 수 있는 훌륭한 치유 능력입니다.

 예전에 했던 은수(가명)의 글쓰기 수업이 생각납니다. 은수는 화가 많고, 억울한 감정도 많은 3학년 남자아이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몰라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은수에게는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자 친구가 있었나 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은수는 그 여자 친구가 자신을 계속 놀린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아이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 보면 어떨까 말해봤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여자 친구에게 괴로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보면 어떨까 했지만, 그것도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보자고 했더니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멈칫했습니다. 일기 쓰기, 독서록 말고 이런 형태의 글쓰기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미처 해보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은수에게 글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수업의 진도를 나갔습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쓰고 싶어?”

은수는 의외로 ‘친구를 놀리지 말자’라고 말했습니다. 그 형태라면 주장하는 글쓰기가 어울릴 상황이었지요. 저는 그 문장을 그대로 쓰게 하고 은수 인생 최초의 ‘주장하는 글쓰기’를 쓰게 했습니다.

 저는 은수에게 물었습니다. 친구에게 놀림받으면 어떤 마음이냐고. 그러자 은수는 울 것 같고, 화가 나고, 복수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항목 하나하나를 떼어 ‘놀리지 말자’는 주장에 근거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 근거에 맞는 예시를 찾기 위해 다시 질문했습니다.

 “울 것 같을 땐 어떻게 해?”

 “너무 속상해요.”

 사실 이건 같은 말의 반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술을 깨물어요.’ ‘숨이 잘 안 쉬어져요.’ 등의 말을 기대했지만 은수의 표현은 달랐습니다.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그대로 쓰게 했습니다. 그다음 화가 날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은 해본 적 없지만 다른 친구들은 욕을 하거나 때리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하기도 한다’라는 문장으로 그 말을 완성하게 했습니다. 복수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미신 문자를 보내거나 무서운 사진을 보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미신 문자를 보내는 것이 복수가 된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지만, 은수의 의견을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예상 밖의 문장을 하나 더 적더군요. ‘놀림당한 친구는 악몽을 꿀 수도 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실제로 악몽을 꿨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은수에게는 크나큰 스트레스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주장하는 글쓰기는 마지막에 자신의 주장을 한 번 더 써야 한다고 알려줬고 은수는 ‘전국에 있는 친구들’을 들먹이며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날의 은수의 글을 옮겨 적겠습니다.

                                                   제목 : 친구를 놀리지 말자

친구를 놀리지 말자. 우리 반에는 나를 놀리는 친구가 있다. 바로 00이다. 00은 방과 후 수업을 할 때 나를 아주 많이 놀린다. 그래서 너무 심하게 놀려서 울 뻔했다. 이처럼 친구가 속상해한다. 또 친구가 화를 낸다. 예를 들면 친구에게 욕을 퍼붓거나 폭력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복수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미신 문자나 무서운 사진을 보낼 수 있다. 또 놀림당한 친구는 악몽을 꿀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반에 있는 00은 날 놀리지 않으면 좋겠고 전국에 있는 친구들도 친구를 놀리지 말자.


 글을 다 쓴 아이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어디다 말도 못 하고 속앓이 하던 것을 글로 쓰고 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 듯했습니다. 평범한 아이들이었다면 00이를 비난하거나 흉보는 글을 썼을 텐데, 은수는 점잖은 면이 있어서 ‘친구를 놀리지 말자’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글은 쓰는 사람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더군요.

 글쓰기를 할 때 가끔은 아이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주제를 던져주면 좋습니다. ‘엄마를 마음껏 야단칠 수 있다면?’ ‘친구들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리모컨이 있다면?’ ‘오늘 하루 학원을 가지 않는다면 뭘 할까?’처럼 말입니다. 이런 주제를 던져주고 써보라고 하면 아이는 상상만으로도 히죽히죽 웃게 될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숨구멍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그 숨구멍을 글이라는 수단으로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글은 자유롭고 어떤 제약도 없습니다. 흰 종이 위에 마음껏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펼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일탈을 하고, 가끔은 권력에 대들면서 일그러진 욕망과 감정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스트레스 풀 방법이 제한적입니다. 어른처럼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노래방에 갈 수도 없고, 드라마 정주행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비워내고, 새 힘으로 채워나갈 수 있게 글쓰기가 안전한 ‘감정의 쓰레기통’ 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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