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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Sep 30. 2022

어른과 아이의 글쓰기는 뭐가 달라야 할까요?

 저는 아이들이 입학하기 전 지방의 한 혁신도시에서 살았습니다. 혁신도시의 특성상 지방으로 이주해온 공기업이나 공무원의 가족들이 많았고, 아이들은 대부분 중등 이하로 어렸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학원이 새로 생겼다 싶으면 논술 학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마침 TV에서는 문해력을 강조하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글자는 읽을 수 있으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TV 속 학생들의 모습에 많은 학부모들이 충격을 받았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아이도 그럴까 봐 겁이 났어요. 그래서 서점을 찾아 관련 책을 살펴보았는데 정말 많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교육은 부모의 불안감을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요. 독해력과 어휘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문제집들이 있었고, 글쓰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제 눈에는 그 비법과 문제집이 아이에게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 비법은 정말 비법이었고, 문제집의 구성은 탄탄했습니다. 하지만 그 비법과 구성은 아이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어른이라면 달랐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그 많은 영양분을 퍼다 준다고 다 받아먹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고민했습니다. 글쓰기에서 아이와 어른은 무엇이 가장 다를까. 단순한 기술의 문제였다면 아이도 숙련만 하면 어른을 따라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글쓰기와 어른의 글쓰기는 분명 다릅니다. 왜 그럴까. 저는 그 답을 ‘사고력’에서 찾고 싶었습니다. 생각하는 힘. 어른과 아이의 생각하는 힘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상황을 보다 종합적으로 해석하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까지 고려해 생각하는 통찰력은 아이가 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뇌’를 주제로 한 책 코너로 향했습니다. 어설픈 지식이지만 인간의 논리와 창의력을 담당하는 것은 전두엽이라는데, 그 전두엽의 발달과 글쓰기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 의과대학 소아청소년 정신과 김붕년 교수님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교수님은 전두엽 발달 시기에 대해 두 시기를 꼽으셨습니다. 바로 7세 전후와 12~13세였습니다.     


 “전전두엽은 7세를 전후로 급성장하고 12~13세를 전후로 대대적인 신경망의 가지치기를 통해 아주 효율적인 구조와 기능으로 변화한다. 아이들의 주의집중력이 급성장하는 시기도 바로 7~8세와 12~13세의 두 시기 동안이다.”(< 아이의 뇌 > 김붕년 지음. 국민출판)     


 대뇌피질에서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두엽은 뇌의 앞부분에 위치하지만 그중에서도 더 앞쪽 즉 이마에 가까운 곳을 ‘전전두엽’ 또는 ‘이마엽’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만 크게 발달되어있으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행동의 근간을 이루는 곳이라고 합니다. 종합적 사고의 결과물인 글쓰기에도 이 영역의 역할은 중요해 보입니다. 교수님에 따르면 이 전전두엽이 몸집을 크게 키우는 시기가 7~8세, 그리고 신경망의 가지치기로 효율성을 높이는 시기가 12~13세 즉 초등 고학년 시기가 됩니다. 그러니 아이의 글쓰기가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려면 적어도 초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의 글쓰기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요? 저는 12~13세에 이루어진다는 ‘신경망의 가지치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가지치기를 한다는 것은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없애거나 줄이고, 필요하다 판단되면 고속도로를 뚫어 효율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즉 음악적 경험이 부족하고 흥미와 재능도 없다면, 전전두엽은 음악과 관련된 신경망의 비율을 줄이고, 운동적 경험과 재능이 뛰어나다면 그와 관련된 신경망을 발달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글쓰기를 위해 초등 시기에 할 일은 가치관의 정립입니다. 책과 교육, 양육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아이는 본인만의 논리와 가치를 세웁니다. 그 논리와 가치를 바탕으로 책을 분석해 독후감을 쓰고, 논술이나 설명문을 쓰고, 직장을 다니면서 보고서를 쓰게 됩니다. 그 가치관이 반사회적이지 않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며 어른의 일일 것입니다.

 아이의 글쓰기가 어른과 달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가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해보고 본인만의 논리와 주장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 그러려면 글쓰기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어야 합니다. 어른의 글쓰기는 수동적으로 배우는 형태여도 되지만, 아이의 글쓰기는 본인이 주도해야 합니다. 본인이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합니다. 그것이 글쓰기 비법을 아는 것보다, 독후감과 과학 보고서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어른은 아이에게 ‘허용’이라는 것을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그건 하지 마라 등 미리 잣대를 들이밀지 마세요. 글쓰기는 생각보다 안전합니다. 마음껏 해보라고 했을 때 안전에 위협을 받는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아요. 그저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적어보는 것뿐입니다. 학원에 가기 싫다고 적었을 뿐, 실제 학원을 안 간 건 아니잖아요. 엄마나 아빠가 싫다고 적을 수도 있죠. 사람이 항상 좋을 수 있나요. 욕은 어떨까요? 이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입으로 내뱉는 것보다는 글로 적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들었고 아는 단어인데, 거기다 지금 감정이 딱 그 말을 내뱉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는 입으로 내뱉는 것보다 차라리 일기장에 적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면 어떻게 될까요? 다음은 제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적은 일기입니다.


난 오늘 수영 경주 생각을 했다. 돌고래와 수영 경주를 한다. 돌고래 뒤에 상어가 돌고래만 쫓아가서 돌고래는 뱃속에 돌고래가 빙빙 돌고 상어는 날 안 쫓아오고 나는 도착했다. 그러고 돌고래를 구출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시겠죠? 어른의 시각으로 보면 참 엉성하고 부족한 것 투성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기가 참 좋습니다.

 먼저, 단순히 상상했던 어떤 장면을 일기의 소재로 쓴 것이 놀랍습니다. 글의 서두에 나와 있듯이 제 아들은 돌고래랑 수영 경주하는 것을 상상하다가 그냥 일기로 쓴 겁니다. 일기는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쓴다는 보통의 생각을 따르지 않은 점이 좋았습니다. ‘참 재밌었다’, ‘또 하고 싶다’ 등의 억지 감상을 넣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듭니다.

 두 번째,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쓴 문장들이 좋습니다. 읽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하지만, 본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문장들이지요.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쓰고자 하는 글을 쓰면 아이는 신이 납니다. 그러면 더 이상 글쓰기 시간이 괴롭지 않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은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고 숙제도 매번 쌓여있습니다. 해야 할 것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하고 싶은 것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시간이 있을 때 뭘 배우고 싶니? 뭘 하고 싶니?라고 물어도 아이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그런 아이들에게 숨구멍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은 대로 써보는 것입니다. 아이만이 바라볼 수 있고, 아이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문장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저는 아이들과 수업할 때 그런 문장들을 만나면, 반짝이는 사금을 본 것처럼 반갑고 귀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게 허용해주세요. 지금은 그 어떤 비법과 글의 형식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허용해주고 마음 가는 대로 써보라고 하는 것. 대신 양을 자꾸 늘려 길게 써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충분한 글쓰기 지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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