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시도가 어렵다.

by 노콩

우리 엄마가 원룸을 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과거 우리 아버지께서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심야 보일러를 놓으셨는데, 그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불편했다. 엄마는 원룸 각자의 방에 보일러를 설치하고 싶어하셨는데 그와 관련해 알아봐야할 일이 많았다. 업체 선정부터 비용 마련까지 이런저런 고민을 내게 털어놓으셨는데 나는 (무심히도?) 이런 대답을 주로 했던 것 같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봐.”

“한전에 전기료 관련해서 물어봐 봐.”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자신 없게

“그래야지.”

하셨는데 나는 그 모습조차 답답하다 생각했다. 뻔히 하실 수 있는 일을 내게 전화해서 하소연하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그러셨다.


“그게...... 난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어. 업체가 와서 보일러 파이프가 어떻고 저렇고 얘기할 때, 한전에서 전기 볼트가 어떻게 되고 키로와트가 어떻고 할 때, 난 잘 못 알아 듣겠어.”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았다. 엄마가 뭘 어려워하셨는지. 사실 엄마는 다 처음 해보는 일이셨다. 보일러를 놓는 과정도, 전기와 관련된 전문용어를 듣는 일도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셨다. 첫 시도. 나에게도 어려웠던 일이 아닌가?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이 떠 올랐다. 감히. 그렇다. 나에게 브런치는 그런 느낌이었다. 감히 내가 어떻게 저기에 글을 쓸 수 있을까? 엄두가 안 나서 계정만 만들고 남의 글만 읽었다. 그마저도 잊고 지내고 그렇게 흘려보낸 1년여의 시간. 뭔가 자괴감이 들었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머뭇거리는 내가 답답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냥 썼고 그냥 해봤다. (그때는 내 글을 알아보는 게 싫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어제 처음으로 글 하나가 조회수 1만을 기록했다. 내 시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어리둥절하고 정말 기뻤다. 아니 감사했다. 글을 읽어주고, 라이킷을 눌러주는 그 손가락들이 모두 감사했다. 하지만 이런 해피엔딩은 손에 꼽히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무수한 시도는 종이처럼 구겨져 던져지고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내 주변에는 수많은 경단녀들이 있다. 과거 잘 나가던 그녀들은 (선생님, 은행원, 작가, 심지어 성악가도 있다.) 아이들이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자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적극적으로 찾는 이도 있고, 가끔 뭐가 없을까 기웃거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들 두려워한다. 뭔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에. 물론 젊은 시절에도, 더 어린 시절에도 뭔가를 시도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된 후로 더 움츠러드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잃을 게 많아서 일 것이다.

엄마가 되었다는 것은 대부분 나이가 중년으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은행에서 저렴하게 해주는 청년 대출 대상자가 더 이상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뭔가 시작한다는 것은 그 시간만큼 우리 아이가 방치(?) 되거나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집안이 그만큼 정돈되지 않고 더러워질 거라는 뜻이다. 지금도 버거운데 또 다른 스트레스를 끌어안게 될 거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엉덩이 붙이고 비빌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안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평생 내 이름을 잊어버리고 ‘누구 엄마’로 불리는 거 불편하지만, 큰일 나는 거 아니니까. 누굴 만나 얘기할 기회도 적고, 얘기해도 속마음 터놓지 못하고 그저 애들 교육 얘기 남편 흉보기로 겉도는 대화만 하게 되지만, 그래도 죽고 사는 문제 아니니까. 가끔 무기력하고 내 삶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또 뜨니까. 그렇게 그냥 눌러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기에 엉덩이를 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윤여정 영화배우가 나영석 피디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 피디는 크게 실패해 봐야 해. 그래야 새로운 세계가 열릴 거야.”


잃을까 두려웠던 것을 결국 잃게 되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 우리에게 정말 새로운 세계가 열릴까? 예전에 대기업을 나와 프리랜서로 강연을 다니던 라디오 출연자가 있었다. 그 사람이 그러더라. 두 손을 다 놓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땅에 발이 닿았다고. 손을 놓아보니 별로 높지 않은 나무에 매달려 아등바등하고 있었던 게 보이더라고.


정말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으면 별로 높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될까?

‘시도한다’라는 것, 엄마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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