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둘째 아이 담임 선생님과의 전화상담이 있었다. 학교 상담 주간이었다. 나는 우리 둘째에 대해 걱정이 많은 편이었는데, 우리 둘째는 12월생이라 또래보다 작고 느린데다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빨리 알아채는 성격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아이다. 학교에서 알림장을 쓰지만 집으로 들고 오지 않는다. 내가 “오늘 알림장 썼다면서? 왜 안 가져왔어?” 그러면 “아, 그거 가지고 오는 거였어?” 그런다. 받아쓰기 시험을 봤다기에 노트를 펼쳐봤더니 첫 페이지 쓰고, 중간 페이지 쓰고, 또 몇 페이지 건너 띄어서 썼다. 내가 “왜 노트를 차례대로 안 썼어? 첫 장 쓰면 그다음 장에 써야지.” 했더니 “아 그런 거였어?” 그런다. 이 녀석은 그냥 펼쳐서 나오는 아무 백지에다가 내용을 썼던 것이다. 옆 친구 어떻게 썼나 한 번만 봐도, 아니 솔직히 노트 쓰는 법 정도는 안 가르쳐줘도 다 알지 않나? 아무튼 이 녀석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날 상담도 그런 내용이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아이는 학교에서 단원 평가를 할 때도 부지런히 시험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창밖도 봤다가, 지우개에 낙서도 했다가, 시험지 옆에 그림도 그렸다가 그러면서 문제를 푼다고 했다. 또 한 번 한숨이 나올 차례였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은 좀 달랐다.
“우리 아무개는 우선순위가 남들과 조금 다른 것뿐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이랬다. 어떤 아이는 시간 안에 문제를 푸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떤 아이는 더 많이 맞추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그러나 우리 둘째는 본인의 즐거움에 우선순위를 둔다. 그 순간 눈에 띄는 창밖 풍경, 지우개, 생각나는 어떤 그림 등이 아이에게 우선순위가 되는 것이다. 물론 단원 평가는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내는 것도 중요한 과업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우리 둘째가 다시 집중해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지도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우유갑과 관련된 것이었다. 우유를 다 마시면 씻어서 일정한 장소에 두고 오는데,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우유갑을 씻으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또 노래를 부르며 교실로 돌아왔는데 씻은 우유갑이 그대로 손에 들려있더란다.
“아무개야, 우유갑 정리하고 와야지?” “아!” 아이는 감탄사 한번 내뱉고, 또 노래를 부르며 우유갑을 정리하러 갔다고 한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함께 깔깔 웃었지만 나는 솔직히 걱정이 됐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은 달랐다.
“저는 이때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이라서 그 모습이 참 소중합니다.”
선생님은 정말 우리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계셨다. 엄마인 나는 아이를 고치려고만 했는데, 모든 문제 행동은 가르치고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행동도 그 아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연령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함’으로 봐주고 계셨다.
내가 원어민 회화 수업을 할 때 누군가의 이상한 행동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원어민은 그것을 ‘unique’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말하는 ‘누구 이상해~’에는 이미 평가와 비판이 들어가 있다. ‘내 기준’으로 누군가를 ‘이상하다’고 특징짓는 것이다. 그러나 ‘독특하다’에는 다르다는 뜻이 있다. 그냥 다른 것이지 그 말에는 평가나 비판은 없다.
내가 아이를 보는 시선도 그래야만 한다. 이 아이가 가진 독특한 특징을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한다. 아이의 징징거림도, 아이의 투정도 그 아이가 유독 그런 행동을 보이는 독특한 어느 순간이 있다. 그런 것을 알아내면 그 부정적인 행동도 조금 쉽게 수용이 된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 행동을 수용해주었더니 아이는 놀랍게도 쉽게 진정이 되었고, 대화가 되었고, 다음에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개선도 해주었다. 내가 아이를 다그칠 때도 “하고 있다고!” “난 원래 느리다고!”하면서 반박도 할 줄 알았다. 내 다그침에 주눅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는 자세가 경탄스러웠다.
엄마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수용해준다면 아이는 분명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힘은 경쟁적이고 부침 많은 이 사회에서 앞으로 뚫고 나갈 힘의 원천이 되어준다. 우리 아이가 그 힘을 갖게 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