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대화거리가 부족하면 잔소리 할 수 있다.

by 노콩

방학이라 아이들과 함께 지낼 시간이 많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대화이다. 그런데 나는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나? 아이가 나에게 엉겨붙는 시간이 많아지니 솔직히 귀찮았다. 아이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내가 하는 말은 이것이다.

“너 숙제 다 했어?”

이 말은 곧 ‘너에게 할 일이 있으니, 제발 나에게서 떨어져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아~이~으~윽~’하는 짜증이 튀어나온다. 아뿔싸. 그래 솔직히 나는 아이 숙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해야 될 과제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엄마 좀 내버려 둬’라는 말을 그렇게 달리 표현했을 뿐이었다.


밥을 먹을 때 너무 조용해서 뭔가 대화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대화를 시도하는데 나의 첫 마디는 이것이다.

“학교에서 뭐 배웠어??”

그럼 아이는 세상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학교에서 뭐 배웠는지 어떻게 알아?” 우리 둘째는 대놓고 이렇게 황당한 말도 했다. “당연히 배운 게 기억나야지. 학생이 학교에 배우러 가는 거 아니야?” 나의 이야기는 또 이렇게 흘러간다. ‘아, 이게 아닌데. 나는 얘기를 하고 싶어 꺼낸 말이었는데, 왜 자꾸 잔소리가 되지?’


nag.png 출처 : 픽사베이


어릴 때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기억이 났다. 엄마는 쉴 새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늘어놓으셨다. 숙제를 해라, 양치를 해라, 가방을 싸라, 학교에 가라, 옷을 갈아입어라. 좀 더 커서는 집안일도 시키셨다. 설거지를 해라, 청소기리를 돌려라, 네 방은 네가 치워라. 나도 그럴 때 지금의 아이들처럼 하기 싫어 몸을 배배 꼬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우리 엄마의 대화법이었을까? 내가 거실에 있거나 식탁에 앉아있을 때 뭔가 말을 걸고 싶은데 그게 저런 식으로 튀어나왔던 걸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내 대화법에 고민이 생겼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곧잘 대화를 하는 편이다. 보통 그럴 땐 날씨 얘기를 하거나 흥미로웠던 기사 얘기로 말문을 튼다. 그런데 남도 아닌 아이랑 날씨나 기사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맞지 않았다. 그럼 나는 아이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러다 영어학원을 갔는데, (아, 아이의 영어학원이 아닌 나의 영어학원이다. 나는 요즘 영어 배우는 게 재밌다. 학생 때는 그렇게 싫던 것이 요즘은 재밌다. 그래서 원어민 수업도 듣고 있다.) 원어민 선생님의 대화법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원어민 선생님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물론 세세한 대화가 어려우니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알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매주 본다. 자주 본다. 날씨 얘기로 말문을 트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원어민 선생님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히스토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예를 들면 내 옆 사람에게는 ‘그때 소파 바꾸려고 하던 건 어떻게 됐냐? 바꿨냐, 안 바꿨냐.’ 내게는 ‘아이들과 함께 하던 yes 데이는 어떻게 됐냐?’ (난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yes 데이를 한다) 또 내 옆 옆 사람에게는 '요즘도 남편이 테니스 동아리를 열심히 나가고 있냐?' 라고 묻는 식이다. 그 사람한테 물어볼 거리를 하나 정해놓고 이야기가 뜨거나, 첫인사를 나눌 때 자주 사용하는 듯했다.


나는 그 방법을 우리 아이에게 적용해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최근 이슈나 관심사를 생각해봤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단연 게임과 유튜브다. 다행히 나는 아이가 잘 보는 유튜브 채널을 알고 있다. 그 유튜브가 최근 올린 콘텐츠는 뭔지, 요즘 재밌게 보는 내용은 뭔지, 이 정도면 말꼬가 트이지 않을까? 그리고 게임은...... 솔직히 너무 내 관심 밖이라 좀 어렵긴 하다. 아이가 무슨 캐릭터는 필살기가 어떻고, 뭘 어떻게 하면 되고, 하면서 설명할 때가 있는데 캐릭터 이름도 기억하기 어렵고, 그 기술 쓰는 방법은 전~혀 관심 밖이다. 그래도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위해 기억해둬야겠지?


처음엔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나는 잔소리하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아이는 신나서 이야기를 쏟아놓을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나는 관심 없는 그 이야기에 얼마나 즐겁게 반응해줄까? 그 대화가 더 깊어지고 풍성해질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시도도 해보려고 한다. ‘내 관심사.’ 내가 좋아하거나 내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 그런 이야기를 꺼내 보면 어떨까? 내 경우는 글쓰기가 될 테고, 가끔은 인생철학 같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살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소소한 이야기들 말이다. 어쩌면 아이도 나처럼 기계적으로 ‘어 그렇구나’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더 시간이 지나면 엄마랑 얘기하고 싶을 때 엄마 관심사로 물꼬를 트는 날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대화가 한 겹씩 쌓이다 보면 전혀 의외의 공통 주제를 찾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아무튼 잔소리하는 엄마는 이야깃거리가 부족한 엄마일 수 있다. 대화의 방식이 잘못되어 그럴 수 있다. 그 방식이 몸에 굳어 자꾸 아이의 부족한 면만 찾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잔소리만 하는 엄마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아들과 생각을 교류하는 엄마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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