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프로그램의 주 청취자는 10대 청소년들이었는데, 그때 어떤 상황에서 DJ가 그런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말을 했다.
“꿈은 어떤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 그런 걸 꿈꾸는 게 아니라, 어떤 의사,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를 꿈꾸셔야 해요.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선생님? 아니면 지식을 충분히 전달해줄 수 있는 선생님? 힘든 상황을 함께 이겨내고 싶은 선생님? 이런 식인 거죠.”
물론 그 DJ의 말을 여기에 100% 옮긴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를 전달했다는 뜻이다. (아,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원고에 적혀있는 말이 아니다. 대부분 사연을 정해서 DJ에게 주면 사연과 관련된 코멘트는 DJ가 직접 하는 편이다.)
나는 그 이야기가 오래도록 울림이 있었다. 그 당시 20대 미혼이었던 나는 내 친구들에게 이 DJ의 이야기를 많이 전했다. 대부분 일을 하고 있어서 내 친구들은 그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에서 어떤 가치를 찾고 싶은지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요즘 그때 생각을 많이 한다. 엄마라는 자리가 직업은 아니지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친구 같은 엄마, 좋은 가치관을 전해줄 엄마, 용기를 주는 엄마,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엄마...... 나는 과연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 걸까?
지난 10년 여의 시간을 나는 정말 허우적대며 살아왔다. 막내가 학교를 가고 이제야 잠시 숨을 고르게 되었는데, 뒤돌아보니 뭘 하며 그 시간을 보냈나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허송세월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앞으로의 10년이 두려워졌다. 또 이렇게 허우적대며 10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게 안타까웠다.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그 질문은 이런 절실함에서 나왔다.
사실 ‘엄마로 살기’란 참 힘든 일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업무량도 엄청나게 많은 기분이다. 먹고 자는 것도 제대로 못 하면서 그 업무량을 해가는데, 아이가 크면 또 새로운 미션들이 떨어진다. 새 임무에 맞는 정보들을 수집하고 또 엄청난 업무를 헤쳐 나간다. 그러니 부족한 것도 많고 후회되는 일도 많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고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니 엄마로 사는 일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마냥 행복하고 보람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엄마보고서’는 어쩌면 내게 길을 찾아줄 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일들을 적고 내 고민, 내 깨달음을 적다 보면 엄마라는 자리는 어떤 자린지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어떤 엄마로 살고 싶고, 어떤 엄마로 살고 싶지 않은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방향성도 명확해지고, 불안하고 흔들릴 때 잡고 있을 버팀목도 찾게 되겠지.
엄마로서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거나, 드라마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것처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없이 고민하고 적어나갈 것이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