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한지 100일, 엄마로 살게 된 그녀의 일기 에세이

by 노콩

나경씨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내가 나경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임신 8개월이었는데 영어학원을 나오고 있었고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다), 수영을 배우고 있었고, 여성가족부와 관련된 어떤 일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수시로 미팅을 갔다), 텃밭도 새로 분양받아 가꾸고 있었다. (수시로 상추며, 오이며, 호박을 한 아름씩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어찌나 야무진지 컷 비용이 1만 원인 곳을 찾아다니며 머리를 잘랐다.


그런 나경씨가 출산을 했다. 병원, 조리원, 그리고 집에서 몸조리와 육아를 하느라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고, 아이가 백일을 넘긴 시점에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내가 글쓰기 코칭을 한다고 했더니, 자신의 심리 상태를 글로 남기고 싶다며 의뢰를 해왔다.


아이를 낳아 갓 엄마가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자는 거, 먹는 거,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도 달라진다. 모든 것이 ‘내 위주’가 아니라 ‘아기 위주’다. 아기의 수유시간, 수면시간, 배변시간을 고려해 나의 식사와 수면, 배변이 결정된다. 심리적인 것도 그렇다. ‘엄마’는 되었는데 내가 제대로 된 엄마인 것 같지가 않다. 옆집 엄마는 벌써 아기한테 책을 읽어준다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남들은 나에게 고귀한 출산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정작 이 일의 가치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출산과 함께 모든 게 달라졌는데, 왜 남편의 삶은 그대로 유지되는 거지?


육체적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는 나경씨는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며 이야기를 꺼냈고, 나 역시 눈물을 닦아내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나경씨는 이 혼란을 정리하고 싶어했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니까 이 들쑥날쑥한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글감은 ‘엄마와 아이의 일체성(?)’이었다. 엄마와 아이는 분명 다른 인격체인데 이상하게 아이가 나고, 내가 아이인 순간이 있더라는 거다. 예를 들어보라고 했더니 이런 얘기를 꺼냈다.


“저는 누군가 저를 칭찬하면 ‘아니에요~’ 하면서 부정하는 습관이 있어요. 좋은 건 아니지만 그게 겸손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내 아이를 칭찬하면 제가 똑같이 ‘아니에요~’하면서 대답을 해요. 우리 애가 말을 알아듣는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자기를 칭찬했는데 제가 옆에서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실 그냥 ‘감사합니다’하면 되는데, 왜 저는 제가 칭찬받은 것처럼 ‘아니에요~’ 이럴까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누군가 우리 아이를 훈육하거나 주의를 주면, 마치 내가 그 말을 듣는 것 같이 기분이 안 좋았다. 그래서 더 강하게 아이를 나무라거나, 아이가 잘못한 상황이 아닌데도 아이를 혼냈다. 말하자면 ‘내가 기분이 나빠서 아이를 더 잡는’ 상황을 연출했던 것이다.


어떤 엄마가 놀이터에 나간 아이를 집에서 CCTV 모니터로 보다가 아이가 다른 친구한테 괴롭힘당하는 모습에 얼굴이 벌게지고 내가 그 상황에 있는 것처럼 열이 나서 쫓아갔더라는 말을 했던 기억도 났다. 모든 엄마들이 아니 부모들이 자식을 두고 겪는 심리적인 상황일 것이다. 나는 좋은 소재라 생각해서 그 이야기를 적어보자고 했다.


그러나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얘기라 이걸 적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제시한 것은 그 경험을 했던, 바로 그 에피소드를 적으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칭찬받을 때 내가 했던 행동, 그 느낌. 그것을 그대로 적어보라고 했다. 나경씨는 곧 펜을 들었다.



그러니까 나경씨는 누군가 아이 옷을 물려준다기에 받으러 갔던 상황에서 이 에피소드를 겪은 거였다. 이웃 엄마가 아이(따봉이)가 의젓하고 잘생겼다고 했을 때 “아니에요~ 아이는 집에서 울보고, 코도 낮아요~”하면서 대답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경씨는 무색함을 느꼈다고 했다. 임신 때부터 ‘너와 나는 타인이야~’라고 생각해왔고 대하기로 다짐했는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당황했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면 서로 상처받을 일도 많겠구나 깨달았다는 말도 적었다. 그리고 나경씨는 그 원인을 궁금해하면서 이야기를 끝냈다. ‘이건 엄마와 자식이기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극심한 애정 때문인 것일까?’


결국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겪었고, 깨달았다. 심지어 나경씨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도 하고 있다. 코칭 당시에는 보지 못했는데, 지금 적으면서 보니 이미 나경씨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해놓았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진 부분만 지워나간다면 완벽해질 것 같다. 의문형으로 이야기를 끝마쳐도 된다. 우리가 신이 아닌데 모든 해답과 원인을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경씨는 글이 가져오는 힐링의 힘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이 복잡할 때 글을 적으면 진짜 편안해진다. 나에게 심리적 파동을 가져온 그 일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랬는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생각하다 보면 가끔 해법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경씨가 엄마로 살아가며 겪게 될 수많은 어려움에 이 ‘글’들이 위로와 힘을 보태준다면 좋겠다. 나경씨! 우리 힘내봐요~!




<에피소드로 글 시작하기>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때 저는 ‘에피소드’를 씁니다. ‘겪은 일’을 쓰는 것은 ‘생각’을 적는 것보다는 수월합니다. 또 독자 입장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생각을 갖게 될 때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반드시 있더라고요. 과거의 경험이어도 좋습니다. 에피소드를 활용하면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지고 재밌어질 거예요.

큰 머리핀이 인상적인 나경씨의 뒷모습^^ 귀여워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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