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일수록 감사일기를 쓰라고 한다면, 그 말이 먹힐까? 사실 지치고 힘들 때 긍정적인 면을 보라고 누군가가 조언을 한다면, 욕 한 바가지가 목구멍을 치받아 올릴 것이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릴 하느냐! 네가 겪어 봤느냐!” 그 말을 내뱉으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내가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상상하니, 그런 모습의 내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왜 그렇게 힘들고 억울했을까? 힘들 때의 내 모습을 상상했을 때 내게 생기는 감정은 ‘지쳤다’, ‘억울하다’이다. 모르겠다. 왜 그런지는.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 때 감사일기를 쓰라고 감히 적어보는 것은 그것의 강점을 알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변화를 준 일기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감사일기 또 하나는 영어 일기이다. (영어 일기는 추후 다시 써 보겠다.) 감사일기는 말 그대로 감사한 점을 적는 것인데 그것을 적다보면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1년 전 나의 감사일기
첫째, 학습된 감사(?)를 깨닫게 된다.
감사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앞서 언급한 적이 있는 ‘새봄 샘’ 덕분이다. 새봄 샘의 영어프로그램 중에 하루 세 가지 감사일기 적기가 있는데 처음엔 남편, 아이들, 부모님 등등 내가 생각하는 고마운 사람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다정한 남편이 있어 감사하다, 귀여운 아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부모님이 계셔서 감사하다 등등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뭐랄까, 진정으로 내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감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일반적으로 말하는 감사에 대해 적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이런 것은 감사한 일이어야 한다는 학습된(?) 느낌으로 적는 감사였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진정으로 느끼는 감사를 찾기 시작했다.
둘째, 소소한 게 감사해진다.
그래서 제일 많이 언급했던 것이 날씨였던 것 같다. 해가 나면 해가 나서 감사한 점이 있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감사한 점이 있었다. 나무가 예쁘면 예뻐서 감사했고, 바람이 살랑이면 기분이 좋아져서 감사했다. 가족들의 작은 행동도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줬을 때 감사했고,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다가 정해진 시간에 끄고 나왔을 때 감사했다. 아무튼 하루 3개의 감사 거리를 찾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감사한 순간을 찾게 되었다. 그랬더니 소소하지만 작은 기쁨들이 눈에 보였다. 크진 않지만 소소하게 내 삶에 녹아있는 긍정성들. 그런 게 보이니 사는 게 나쁘지 않았다. 일부로 감사 거리를 찾아내니 조금은 변화가 있었다.
셋째, 감사거리를 '만들게' 되고, 감사를 보는 눈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마저도 소재가 떨어지면 감사 거리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 순간에 큰 변화를 맛보았다. 바로 같은 상황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나는 예전에 둘째 육아와 관련해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상담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이에 대해 못마땅한 점을 해시태그처럼 붙여놓고 그 일이 생기면, ‘아휴 또 저러네. 쟤는 왜 저러지?’ 라고 반복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에 대한 이미지를 나는 부정적으로 굳혀가고 있었다. 그런데 상담이 끝나도 그 꼬리표와 해시태그는 떼어내지 못했다. 진정으로 우러나오지 않는데 아이를 긍정적으로 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감사일기 쓰고 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출처:픽사베이
내 기준과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 이 아이는 내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옳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구나.”, “아, 이 아이는 사람은 누구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이가 긍정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둘째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뭔가 나와 자꾸 부딪치는데,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 (끊어내도 될 사람에게 그런 에너지를 쏟지는 마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중요하다.) 가족이든, 직장 동료이든, 이웃 주민이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방법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외의 장점을 찾아내게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이 과정들을 거쳐 우리 둘째는 ‘참 속이 깊은 아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의외로 많은 부분에 대해 속 깊은 생각을 하는 아이였다. 엄마에 대한 것도, 자연에 대한 것도. 그래서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제 힘들 때일수록 감사일기를 쓰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을까? 상황은 바뀔 수 없지만, 마음은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힘든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잘 견뎌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자.
감사 일기는 사실 참 유치해요.
뭔가 감사하다고 적는 게 왜 그렇게 낯간지러울까요. 뭔가 동심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고, 순수해야만 할 것 같고, 어른인 내가 하기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평소 말 할 때도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했던가요? 우리가 감사를 유창하게 멋들어지게 말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요? (어디 시상식에라도 참여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그러다보니 글로도 멋지게 나와지지가 않아요. 그냥 감사 일기는 유치한 모습을 띌 수 밖에 없다 인정하자고요. 그래도 장점이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