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는 비슈누 (인도의 고전시대 3 신 중 하나) 신자였던 수르야바르만 2세(1113-1150)가 왕의 사원이자 국가의 수도로 건축했다고 한다.
[그림 1] 우유의 바다 젓기 신화가 앙코르와트 사원 내부에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아래 가운데에 거북이(비슈누의 화신)가 산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12세기 말 경부터 힌두사원에서 불교 사원화되었고 19세기 프랑스 탐험가에 의해 서구 세계에 알려진 후에, 크메르루주의 등극, 전쟁 후 도굴로 인한 피해 때문에 재건 작업을 거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앙코르와트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앙코르와트의 내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유명한 부조 중의 하나가 인도의 유명한 신화인 사무드라만탐(samudra mantham)의 한 장면이다, 번역을 하자면, 바다(Samudra) 젓기(mantham). 영어로는 churning of the ocean 정도가 된다. 신과 악마가 불사의 명약을 얻고자 함께 바다를 휘젓고(churning) 있는 이 신화의 한 장면은 태국의 한 공항에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동남아의 많은 지역에서 고대 왕국 시절 인도의 영향을 받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이 인도의 언어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고대 왕국을 이룩했던 역사를 반영한다고 한다.
(그림 2] 태국의 수바르나부미 국제공항에 있는 사무드라만탐(우유의 바다 젓기)의 장면; 가운데가 비슈누 왼쪽이 아수라 오른쪽이 신들이다
언어학자 제임스 매티소프는“인도 문화권 (Indosphere)”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들 동남아 지역에 남아있는 인도의 문화적 언어적 영향들을 설명하고 있다. [각주 1]
사무드라 만탐(우유의 바다 젓기 신화)과푸른 목을 가진 시바
앞선 에세이에서 역설의 신, 위대한 요기로 등장한 시바의 에피텟 중 하나가 이 신화에서 유래한다 : 푸른 목의 시바(Nila Kantha: blue throated; 푸른 목을 가진). 신들과 악마가, 불사의 명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바다를 휘저을 때, 이 명약보다 먼저 세상을 파괴할 정도의 맹독이 나왔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시바가 이 독을 삼켰고, 이로 인해 푸른 목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이번 에세이에서는 이 신화의 내용을 소개하고, 이 신화에 대한 몇몇 해석들을 살펴보며, 시바와 악마,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짧은 고찰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 신화는 비슈누 푸라나, 바가바타 푸라나, 라마야나, 그리고 마하바라타에 실려있는 매우 유명한 신화로 불사의 명약 아무르타의 기원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바다를 저어 불사의 명약을 얻는다는 모티브는, 인간의 삶과 구원에 대한 메타포로 종종 해석되기도 한다. 여기서 시바는 독을 삼킨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신화의 내러티브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그림 3] 신과 악마들이 우유의 바다를 젓는 장면]
두르바사(Durvasa)라는 한 성미 하는 성자가 있었다. 어떤 천상의 요정이 너무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화환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그 화환을 달라고 청한다. 엄청난 고행과 수련을 마친 위대한 성인 두르바사에게 요정은 기꺼이 그 화환을 바친다. 화환을 받고 기뻐서 춤을 추고 다니는 두르바사. 그러다가 삼계의 신 인드라를 만나, 이 위대한 신을 기쁘게 하고자 그 화환을 인드라에게 선물한다. 오만한 인드라는 이 화환을 본인의 머리에 얹지 않고, 자신이 타고 다니던 코끼리에게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코끼리는 이 화환을 코로 들어 올려 땅에 내동이 친다. 이에 화나간 두르바사는 인드라를 저주한다.
그때부터 삼계는 황폐해져 가기 시작했다. 모든 식물들은 다 시들어져 갔고, 희생제의도 바쳐지지 않았으고, 수행자들은 고행을 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선물하지 않았으며, 법도 지켜지지 않았다. 신들이 약해진 틈을 타 악마들은 힘을 잃은 신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악마들을 이길 수 없었던 신들은 브라흐마에게 가서 도움을 청한다. 브라흐마는 그들과 함께 비슈누에게 가서 사정을 이야기한다. 비슈누는 조언하기를.
비슈누가 시킨 대로 신들은 악마들과 협동하여 모든 약초들을 우유의 바다에 넣고 만다라 산을 가져다가 뱀 바수키로 묶어서 우유의 바다를 휘젓기 시작했다. 비슈누 자신은 만다라 산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거북이로 변해 아래서 산을 지지했다.
우유의 바다를 저으면서, 아무르타가 나오기 전에, 보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소(wish-fulfilling cow) 수라비,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천상의 요정들.. 초승달.., 사랑과 아름다움, 부귀의 여신인 락슈미…
우유의 바다를 저으면서 나온 것들 중에는 할라할라(HaalaHaala)라는 세상을 파괴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독도 있었다. 이 독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시바가 그것을 마셔버린다. 그 독을 그의 목에 갖고 있음으로 시바는 푸른 목을 갖게 되었다. (어떤 신화에서는 그의 배우자 파르바티가 독이 시바의 몸으로 들어가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바의 목을 움켜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목에 독이 머물러서 푸른 목을 갖게 되었다는것이다).
[그림 5] 비슈누는 모히니로 변신해 악마들을 속이고 불사의 명약을 신에게 주고 있다.
시바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신과 악마들은 계속하여 바다를 휘젓는다. 이 우유의 바다에서 드디어 아무르타가 나왔고, 이를 먼저 손에 쥔 악마들. 이에 비슈누는 아름다운 여인 모히니의 모습을 하고 악마들을 설득해 본인이 아무르타를 나누어 주겠다고 하면서 신들과 악마들을 양편으로 나누어 앉게 한다. 그러고는 신들에게만 아무르타를 주고, 이에 힘을 얻은 신들이 악마를 물리친다. [각주 2]
첫 번째 휘젓기(the 1st churning): 의식의 바다, 조화와 균형, 우리의 편견
사무드라 만탐 신화에 대한 많은 해석들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아수라들, 그리고 여러 이미지들을 삶에 적용시키며 교훈들을 이야기한다. 그중 필자의 이해에 쉽게 들어오는 심리적 느낌의 해석들 중 몇몇을 잠시 요약해 보겠다:
- 바다는 종종 인간의 내면세계, 의식의 세계로 비유되고, 이 마음과 의식의 바다를 만다라 산과 같은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을 갖고 계속해서 정진, 정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 이러한 과정 중, 이 요동치며 돌아가는 산이 가라앉지 않게 떠받치는 거북이(이 신화에 등장하는 비슈누의 화신)가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안의 신적 존재인 영혼에 두고, 또한 신에게 의지해야 한다.
- 뱀의 왕 바수키는 신과 아수라가 양쪽을 잡고 바다를 휘젓기 위해 잡아당기는 로프로 사용되는데, 이는 불사의 명약을 얻으려는 신과 악마들에서처럼, 우리의 욕망을 상징한다;
- 치명적인 독 할라할라는 우리의 이러한 욕망의 길, 혹은, 불사의 명약과 같은 높은 목표를 향해 갈 때에도 반드시 만나게 될 고통과 내적 시련이다.
- 이런 치명적인 독과 같은 문제들을 만날 때, 우리는 신께 호소해야 한다. 시바는 우리를 위해 독을 마셔준다.
사뜨구루는 이러한 일반적 해석들 위에, 그만의 흥미로운 해석을 더한다. 그는 시바가 마신 독, 할라할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인간 내면 깊숙이 들어가면 거기에 있는 한 가지는 “무한히 확장하는 생명”인데, 이것과 표피적인 수준에서만 조우한다면 우리는 모두가 피할 수밖에 없는 독을 만들어 낼 것이고, 바로 이 독을 시바가 마신 것이다: 이 독의 이름은 ‘편견’이다. 시바가 그 독을 목에서 멈춘 상태로 저장했고, 그래서 언제라도 뱉을 수 있듯이, 우리도 우리의 목에 멈춰있는 독을 뱉어낼 수 있다. 어찌 보면, 모든 영적인 수양의 노정들은 우리 의식을 휘젓는 것(churning)이고, 그리함으로 잠겨있는 모든 편견을 떠오르게 하여, 당신 안에 잠겨있던 편견이라는 독을 뱉어내고 평화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독을 꺼내어 버리는 것이 처음에는 마치 우리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같이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 이 편견이라는 독을 없애야 평화에 이를 수 있다. [각주 3]
우리의 깊은 의식에 자리 잡은 “무한히 확장하는 생명력”과의 표피적인 조우가 만들어 내는 분리 의식과 이로 인한 편견들. 이런 것들의 핵심에 자리한 에고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불사의 명약 아무르타에 이르는 길이 열린다고 사뜨구루는 말하고 있다.
이제, 앞선 에세이에서 이야기했던 시바와 악인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어가 보자. 이 사무드라 만탐 신화에서 다소 기이한 점은 신들이 아무르타를 얻기 위해 아수라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비슈누도 이 불사의 명약을 얻기 위해 아수라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막상 그 힘든 노동의 끝에 아무르타가 나왔을 때, 비슈누는 아수라들을 속이고, 신들에게만 아무르타를 허락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왜 시바가 독을 마셨을까?
두 번째휘젓기(the 2nd churning): 시바와관세음보살(아발로키테쉬바라)
라마야나에 실린 신화에서는 시바가 마신 독에 대한 살짝 다른 버전이 더 풍부한 디테일과 함께 나온다. 여기서 독은 로프로 사용된 바수키의 입에서 나온 것이고, 이 독을 없애 달라고, 비슈누까지 시바에게 가서 부탁한다.
천 개의 머리를 가진 뱀 바수키가 우유의 바다를 휘젓기 위한 로프로 사용되었다. 1000년 지난 후, 바수키의 송곳니가 만다라 산의 절벽들에 박힐 때, 그 독이 흘러나오고, 그것이 만다라 산의 바위들에 녹아 흐르면서, 치명적인 독의 화염인 할라할라(haalahala)가 되었다.
[그림 6] 할라할라를 마시는 시바
이 할라할라에 의해 우주가 불에 타고 신과 인간들이 역시 위기에 처하자, 신들은 신중의 신 시바에게 가서 구원을 요청한다. 비슈누가 말한다
“신들이 우유의 바다를 휘저을 때… 나온 이 독은 신중의 최고의 신인 당신의 것입니다. 최고이신 당신이기에. 이 머나먼 곳에 거하시는 당신은, 이 독을 최고의 희생 제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겁에 질린 신들을 지켜보고, 비슈누의 말을 경청하고서는, 치명적인 독 할라할라를 삼키는 시바. 마치 그것이 불사의 명약이라도 되는 듯이. 그리고 하라(Hara: 파괴하는 자, 제거하는 자) 시바는 그의 처소로 떠난다.“
[각주 4]
마하바라타 버전의 이야기에서는 바다를 휘젓기 위한 막대기로 사용된 만다라 산과 그 산을 감는 로프로 사용된 뱀의 왕 바수키의 고통이 좀 더 적나라하다.
휘젓는 마찰로 인해 만다라 산은, 그 안에 있는 수목들과 짐승들이 바닷속으로 떨어지고, 여기저기 불이 붙어 화염에 싸이는 재앙을 감내한다. 바수키는 신과 아수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바람에 고통의 검은 화염을 뿜어 댄다. [각주 5]
[그림 7] 아발로키테쉬바라. 인도, 9세기경
라마야나에 나온 시바에 대한 묘사는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중생의 “음성을 관하고” 해탈시켜 준다는 관세음보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비슷해 보인다. 실제로 관세음보살의 산스크릿어인 아발로키테쉬바라(Avalokiteśvara: avalokita ‘세상을 굽어보다’ + isvara ‘신’=세상을 굽어보는 주)는 인도 전통에서 시바와 동일시된다고 한다. [각주 6] 관세음보살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때로는 남자로 때로는 여자로, 성격 역시 자비로우면서도 무서운 면이 공존하고, 세상을 향한 강한 연민과 사랑 등, 이러한 모습들은, 앞선 에세이에서 살펴본 것처럼, 강렬한 연민으로 선-악과 모든 이분법의 구분을 초월하여 모든 피조물을 신성으로 이끌어 내고자 하는 역설의 신, 위대한 요기, 시바의 모습과 통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각주 7]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우유의 바다에 만다라 산을 휘젓는 막대기로, 위대한 뱀 바수키, 그 욕망의 뱀으로 그 산을 감아 던져 넣는다. 신과 악마는 함께 의지(will)를 다해 우유의 바다를 휘젓는다, 영적인 존재의 바다, 상상과 열망의 바다, 인간에게 있어서 몸과 생명이라는 최소한의 존재,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
수백 년.. 수백만 년이 흘러도 불사의 묘약은 나오지 않았다.. 우유의 바다는 소용돌이치고, 후려침을 당하고,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그르릉 거리고, 바수키는 고통으로 기절하기 시작하고, 그의 수많은 머리들은 고통으로 ‘스스스’.. 소리를 내며 파도 위로 떨구어졌으며... 그의 축 늘어진 갈라진 혀들로부터 독이 흘러나와 바다의 고통과 뒤섞이면서 모든 것을 불사르는 화염이 됐다… 이것처럼 끔찍한 독은 없었다.. 이 독은 그 긴 세월의 공포와 수많은 시대들의 고뇌, 모든 삶의 고통, 눈물, 잔인함, 절망과 분노, 광기, 불신의 어두움, 미혹하는 회색 빛 고통, 인간 안에 있는 모든 악마적인 잔인한 야수성, 그의 탐욕과 전재적 포악함, 동료들의 고난에 대해 느끼는 악마적 기쁨… 이 독에 견딜 수 있는 피조물은 없다. 세상은 그 열기에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때 신들은 샹카라(Shankara: 시바의 에피텟 중 하나, “상서로운”이라는 의미)에게로 달려간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산에 거하는, 강철의 침묵과 산과 같은 비인간적인 고독에 거하는 시바에게로. 그 말고 누가 이 독의 화염을 맞설 수 있겠는가? 재(ashes)를 입고 있는, 욕망도 슬픔도 모르는 이 위대한 고행의 영혼. 그에게는 공포가 공포스럽지 않으며, 어떠한 비통함도 괴롭지 않다: 그는 슬픔과 광기와 절망을 끌어 안기에.
슈리오로빈도의이서사시적인코멘트에서,인간의식의진화라는 주제가 신화의내용에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여기서신과아수라의우유의바다젓기는인간의식이‘생존’ 그이상의것들을향해, 그길에불사의명약이있음을믿으며, 열망하며나아가는과정이고, 할라할라(Haalhala), 이무시무시한독은이과정속에서생겨나우리를삼키는화염이다. 이화염은바수키, 바다를휘젓기위해반드시필요한도구인로프로기능하는, 욕망의뱀으로부터나온다. 아무르타(불사의명약)라는공동의목표를얻기위해신과악마는그들의의지를이욕망의로프에실어만달라산을돌리게 되고,그렇게존재의바다를휘젓는다.이모든것들이만들어내는무시무시한마찰을가장아래서떠받치고있는거북이는바로만유의주(the Lord)인비슈누.
인간의욕망이라는것은, 비록독을만들어낼지언정, 이는생존이상의단계로인류가, 혹은인간개인이나아가기위한원동력이라고 슈리오로빈도는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거대한 목표는어느한쪽의힘만으로는불가능하기때문에 이러한우리안의, 혹은우리밖의신과악마는협력해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슈리오로빈도의요가철학에의하면, 인간존재의중심과그본질은순수의식, 영혼이지만, 개체로서의인간은자연으로부터시작하는, 몸과정신, 그리고자연적존재로자리잡은영혼의진화의과정을밟는다. 그래서, 자연에서, 타이탄이신들보다먼저온다고 한다;왜냐하면, 자연적존재로서의진화는인간안의욕망의작용없이불가능하고, 타이탄들은이기적욕망의화신들이기때문에. 하지만, 이욕망은정화의과정을거쳐, 그정점에서스스로를초월하여, 혹은그중간에라도, 그의식의주도권을내안의영혼에게넘겨줘야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이것이요가가필요한이유이기도하다.
이러한에고적 욕망와영혼의협업이 아수라와 신의 협업인 것인가? 그의 아수라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신과 아수라는 같은 존재와 같은 본질에서 태어났다. 다만 그 공통 기원의 양 극단에 각각 거하고 있다: 신들은 빛, 무한함, 만족, 유희에서부터 내려왔고, 아수라는 희미한 부정형의 어두움, 분노에서부터 분투로 올라왔다. 신들의 행동은 우주적 보편성으로부터 오고 그것을 향하며, 빛과, 희락, 사랑과 행복한 다스림.. 이런 신들은 항상 자신들의 우주적 보편성과 신성함을 의식에 갖고 있다… 타이탄들은 다르다. 이들은 보이는 것에 대한 욕망과 주도권에 눈이 먼다. 그들의 왕국은 무언가를 자신의 발아래 놓는 것이고, 이 발아래의 것들을 약화시키고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 이런 것이 이들의 영광이자 지배이다. 이들은 분리 의식의 아들이자, 거대한 에고의 화신이다. 타인의 한계를 통해서 본인의 무한함을 느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한 자아, 그 본원적 무한함을 알지 못하지 때문에.
다시신화로돌아오자. 이강력한타이탄들과신들의협업으로마침내아무르타가우유의바다에서떠오른다. 하지만비슈누는악마들을속여, 이를신들에게만준다. 그노역의최종열매가주어지지않은악마들.. 하지만이들은더힘이세고더투쟁하며더분투했을것이다… 이는 아무리 봐도 불공평한처사이다. 슈리오로빈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지막휘젓기(the last churning): 푸른목의(Nilakantha) 시바, 선과악에대한고찰
우유의바다는슈리오로빈도에 의하면, 단순한생존이상의가치들, 아름다움, 이상, 파워를향해나아가려는 신과 에고의 화신 아수라가 부딪히는 우리의 의식의바다이다. 우유의바다를처음휘저을때나오는그독은우리의편견이며, 이것은목에만갖고있다가결국에는뱉어내야한다고,사뜨구루는말한다; 삼키면온몸으로독이퍼지기 때문에.
이를, 소위말하는‘인생의쓴맛’을내면화하지말라는것으로이해한다면너무주관적이해일까… 세상의바다, 내의식의바다를휘저을때필연적으로맛보게될독과같은“쓴맛”은삼키지않고, 딱나의목까지만.그리고우리는의식의바다를휘젓는인간의성스런요가를계속하는것. 이휘젓는과정에서우리의욕망은또다시독소를뿜어내겠지만… 다행히우리에겐 그 독을 마셔주는 신성한 요기이자 역설의 신인 시바가 있다...
슈리 오로빈도와 사뜨구루의 표현들을 빌어 이 에세이의 마무리를 지어보고자 한다.
인간에게 요가를 가르치고, 생명과 창조에 대한 사랑과지식으로무시무시한독할라할라를기꺼이마셔버리는푸른목의시바. 그는눈 덮인히말라야에서우유의바다로내려와독을마시는 "절대자의신성한요가"를보여준다. "강철의침묵, 산과같은비인간적고독"에거하는 "강렬한인간이자첫 번째요기인시바." 그런시바에게 "악마들은사랑스럽다"; "그들은절대자분노에맞서고그짐을진다." 그들은또한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서 "엄청난노역을감당한다." 그러나그들에겐 "시바의사랑과지식이없다." "에고의어두움과그욕망에서정화하지않는한," "비슈누의상-불사의명약-"은악마들에게가지않는다."
[각주]
1. Matisoff, James A. “On Megalocomparison.” Language 66, no. 1 (1990): 106–20. https://doi.org/10.2307/415281.
2. 위 신화는 비슈누 푸라나에 기초해서, 많이 이야기되는 부분들을 다른 푸라나 자료들에서부터 첨가하여, 대중적 버전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이 신화의 줄거리이다.
[그림 2] [attribution] Shashishekhar,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그림 3] 퍼블릭 도메인; [attribution] By Unknown artist - http://s240.photobucket.com/albums/ff296/om25499/Raja%20Ravi%20Varma/?action=view&current=SagarManthan.jpg,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8637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