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신이 몇 명, 아니.. 몇 분이나..? 이 질문에 대한 유명한 답중 하나는 "3천3백만"이다. 이에 대한 설명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아마도, 인도의 가장 오래된 문헌인 베다에서 33 종류의 신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33의 시적 확장이라고나 할까... 어차피 시공을 초월하는 무한함과 영원함 그리고 무한한 있음을 이야기하는 인도 철학에서 33이건, 3천3백만이건 어떤 절대적 의미가 있을까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 대목에서 우리가 꼭 알고 넘어가야할 것들은, 이 수많은 신들은 하나의 근원, 하나의 절대자로 수렴한다는 믿음은, 다양한 신들 만큼이나 인도 종교문화의 특징이라는 점이다. 우파니샤드가 말하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하나인 절대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며, 브라흐만이라는 용어는 그 절대 존재를 일컽는 용어들 중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인도철학의 주류로 알려진, 불이론적 베단타 전통의 핵심 메시지는 인간은 본질상 이 브라만과 하나라는 것, 개별성을 극복하고 이 우주적, 초월적 자아와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영혼의 해탈, 구원, 자유라는 것이다. 수많은 신과 이런 절대적 한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는 얼핏 보면 완전 다른 이야기 같다. 실제로, 인도의 많은 영적 스승들 중에서도, 이런 절대적 하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 혹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는 신들은 인정도 불인정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크리슈나무르띠나 간디 같은 사람들이 그런 예이다. 하지만, 이를 연속선상에서 보는 관점들도 많으며, 필자는 이것이 인도 일반의 정서라고 생각한다. 즉, 이 수많은 신들은 결국은 하나로 수렴하며, 혹은 이 절대적 하나(Oneness)로부터 나온 것인데, 이 수많은 신들이 의미하는 것은, 그 절대적 하나의 신적 발현(manifestation)이라는 것. 즉, 절대자의 부분적 발현으로서 그 해당 분야의 힘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며 존재하는 다양한 신들. 우리 인간들 역시 이 절대적 존재의 발현이며, 그래서 범아일여의 사상에서 처럼 우리의 본질인 아트만은 절대 존재 브라흐만과 원래는 하나인 것인데, 문제는 이 개인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카르마의 법칙 혹은 (첫번째 소똥에 대한 에세이에서 이야기 했던) 구나(guna)와 같은 자연의 힘과 그 힘이 설정한 한계에 영혼이 갇혀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일단 우리의 이야기를 신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시키자. 신에 대한 이러한 믿음, 즉 본질적으로 절대적 하나이지만 그 안에 무한한 다양성이 내재해 있으며, 우리가 만나는 이러한 다양한 신들은 신성의 그러한 다양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힘(power)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이나 하듯 인도의 수많은 신들은 각기 독특한 성격과 개성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특히 유명한 신일 수록 수많은 이름들을 갖고 있는데, 이 이름들은 그 신들의 쿨(cool)한 개성이나 이 신들이 한 멋진 일들을 기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다양한 이름들을 영어로 "epithet"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한국말로는 "시호" 혹은 "별칭"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지난번 소똥 관련 에세이에서 잠시 언급한 두르가 여신은, 소개했었던 바로 그 신화와 관련하여 "마히사수르 마르디니 (Mahishasura Mardini)"라는 에피텟(epithet)을 갖고 있다. 직역하자면 "마히사(Mahisa)라는 악마(asura)를 죽인 분"이라는 뜻이다. 두르가라는 이름 자체도 에피텟으로 볼 수 있다. 두르가(Durga)를 직역하면 "지나칠 수 없는" (impossible to pass)이다; 막강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이런 파워풀한 느낌 이외에도 두르가 여신의 에피텟에는 "먹을 것을 공급해 주는 분"이라는 뜻의 안나 푸르나(Annapurna), "순수함과 성스러움의 구현"이라는 의미의 슈디(Shuddhi), "산의 딸"(the daughter of the mountains)이라는 의미의 파르바티(Parvati)... 이런 이름들 중에는 마치 독립적인 여신인 것처럼 섬김을 받는 여신들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여러 이름들과 다양한 이미지들 안에 담긴 그리고 이들을 관통하는 중요한 함의 중 하나가, 여러 가지 힘(power)과 성향(nature)들을 통해 구현되는 보편적 신성이라는 점이다. 여신 전통은 인도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보편적 신성과 그 신성의 다양한 현현이라는 주제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그림 1] 브라흐마, 비슈누, 쉬바가 각각의 배우자 여신인 사라스와띠, 락슈미, 그리고 파르바티와 함께 연꽃 위에 앉아있다 (퍼블릭 도메인, 1770 년도 정도 추정 작품. 인도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오자. 시바(Shiva). 직역을 하자면 "좋은, 상서로운(auspicious), 자애로운, 친절한 (gracious, kind, benevolent, friendly)"이라는 의미다. 인도 고전시대의 트리니티의 남신 버전인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그중의 하나인 시바는 인도에서 여신 다음으로, 그러니까 남신 중에서는 그 섬기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고전시대 3 신(trimurti)으로 알려진 신들에서, 브라흐마는 창조를, 비슈누는 유지, 시바는 파괴를 담당한다. 하지만 시바신에 초점을 두는 전통에서, 시바는 절대적 보편 신성이며, 창조, 유지 파괴.. 이 모든 것이 다 시바의 몫이다.
[그림 2] 2014년 7월. 시바의 달에 시바의 도시인 바라나시로 순례를 온 순례자들의 행렬 (필자의 촬영) 어쨌거나, 일반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도의 대표적인 3 신 중, 다른 두 신들과 비교해 볼 때, 시바의 이미지는 죽음, 파괴, 고행, 요가... 등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어찌 본다면 신이면서도 다소는 인간적인.. 혹은 영웅적인? 느낌, 무엇인가 인간의 고통과 도전, 신의 고매함과 힘을 함께 보여주는 느낌이 시바에게는 있다.
하지만, 쉬바의 경우,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처럼 비극의 파국을 맞이하는 주인공은 아니다. 아래 사진 속의 나타라자 (Nataraja: 춤의 제왕 (시바의 1008개의 에피텟 중 하나))에서도 나타나듯이, 시바에게서 죽음과, 파괴, 고행은 모두 새로운 삶, 재생, 자유와 연결되어 있는, 커다란 하나의 우주적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그림 3] 나타라자 (퍼블릭 도메인; 10세기, 촐라 왕국; 청동상; 인도, 타밀나두; 76.20 x 57.15 x 17.78 cm) '불타오르는 써클은 삼사라(samsara: 윤회)를 상징하는 창조와 파괴의 원이다.' 4개의 팔을 가진 시바는 그 안에서 춤을 추고 있다. 한 손에는 리듬과 시간을 의미하는 북을, 다른 손에는 창조와 파괴의 불을 들고 있으며, 악마를 누르고 있는 그의 발은 그의 신적 파워를 보여준다, '두려워 말라'라는 제스처를 하고 있는 들어 올린 한 손은 자비를 나타내며, 나머지 한 팔은 들어 올린 발을 가리키는데, 이 발은 시바를 섬기는 이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곳이다. 머리로는 갠지스 여신의 물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주고 있다. 시바의 헤어스타일은 고행자의 그것과 같은 뭉쳐진 머리이며, 양쪽 방향으로 날아가 듯 뻗치며, 그의 역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시바의 얼굴 표정은 매우 평화로우며, 그의 팔다리는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Eck, Darsan p. 41 외)
시바, 역설의 신 (God of Paradox)
[그림 4] 시바와 그의 가족 (퍼블릭 도메인, 1810-20, 인도) 창조와 파괴의 신으로 묘사된 나타라자의 이미지처럼 시바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는 소위 '역설의 신 (a god of paradox)'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다른 신들에 비해, 매우 복잡 다단한, 때로는 반대되는 성향들을 함께 지니고 있는 시바. 그에게선, 사랑, 평화, 자비 같은 신에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면모 이외에도 어딘가 정상성을 벗어난(abnormal) 혹은 기이한(idiosyncratic) 이미지가 발견된다. 금욕의 수행자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시바. 이는 인도 종교 문화를 특징짓는 두 가지 상반되는 이상이 시바라는 한 신에서 동시에 보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다르마(dharma) 전통(사회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개인의 의무를 중시한 흐름)과 절대자와의 궁극적 합일 혹은 해탈을 중시한 금욕적 수행의 전통(이 전통에서 사회적 안녕과 번영을 위한 개인의 의무는 부수적인것, 혹은 장애물로 취급되기도 함)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두 전통의 공존, 혹은 조화가 인도 문화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였다고 보아도 과장은 아니다.
[그림 5] 명상하는 시바 (벵갈로, 인도) 금욕과 고행의 수행을 하는 요기이면서, 또한 보는 이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댄서인 시바. 히말라야의 고요 속에서 명상을 하는 그는, 자신의 명상을 방해하는 욕망의 신 까마를 그의 제3의 눈으로 불살라 버리기도 한다. 따르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애로운 신이지만, 또한 공포스러운 면을 갖고 있는 시바. 그는 신중의 신이면서도, 아수라, 고블린 등의 악령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리더이기도 하다. 시바의 다양한 에피텟(epithet)들은 이러한 시바의 복잡한 면모들을 말해 준다.
(역자주: 시바는 1008개의 에피텟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림 6] 시바 벽화 • 시바 (Shiva) (상서로운)
• 루드라 (Rudra: "울부짖는 자")
• 마하데바 (Mahadeva: 위대한 신)
• 샹카라 (Shankar: 평화를 주는 자)
• 바이라바 (Bhairava: 두려운)
• 마하칼라 (Mahakala: 위대한 시간)
• 비슈바나타 (Vishvanatha: 우주의 주(Lord))
• 나타라자 (Nataraja: 춤의 제왕)
• 마하요기 (Mahayogi: 위대한 요기)
• 파수파티 (Pasupati: 동물들의 혹은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의 주(the Lord))
• 아르다나리쉬바르 (Ardhanarishvar: 반은 여성의 모습을 한 주)
그의 패션 스타일도, 예의 바른, 정상적인 혹은 교양인의 모습보다는, 야인, 아웃사이더의 모습니다. 고행자의 헤어스타일인 길고 타래 지어진 떡진 머리, 그 위에 얹혀있는 초승달 장식, 몸에는 호랑이의 가죽을 두르고, 재로 덮인 희뿌연 피부, 목을 칭칭 감고 있는 뱀, 삼지창을 든 손...
시바의 이런 복잡 다단한 면모들이 신화들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을까? 다음의 신화들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은 시바와 그의 부인 사띠 여신에 대한 유명한 신화이다. 여기서 시바는 장인의 희생제의를 완전히 파괴한다.
신화 1: 시바와 사띠
성대한 희생 제의에 참석한 많은 신들, 현자들.. 그 자리에 신들에게 조차 신적인 존재인 시바가 그의 배우자 사띠와 참석했다. 이 성스러운 커플이 다른 게스트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을 무렵, 시바의 장인이자 사띠의 부친인 다크샤가 도착한다. 그는 명예로운 자이지만, 다소 오만하고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은 갖지 못했다. 브라흐마와 눈도장을 찍고서 자리를 잡은 다크샤, 그에게 많은 현자들이 찬양과 경의를 표했다. 시바는 본인의 자리에서 다른 게스트들과의 즐거운 만남에 열중하고 있었고, 다크샤에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시바를 보고 브라흐마의 아들인 다크샤는 분개한다. 거만하고 지식이 깊지 않은 다크샤는 회중들 앞에서 시바를 모욕하기 시작한다.
"모든 신들과 아수라(Asura: 악마)들, 사제들과 현자들도 나에게 경배하는데, 이 신사분.. 항상 고블린(goblin: 마귀)들과 고스트(ghost: 유령)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 신사분이 어쩌다 사악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화장터를 들락거리는 이 수치심을 모르는 자가 지금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는 예절과 종교적 수행을 포기했구나... 혼령들과 고스트들에게 둘러 싸여 우쭐해져서 그는 모든 좋은 관습들을 오염시키고 있다.. 나를 그를 저주한다. 화장터에서 지내는, 고귀한 출생도 아닌, 이 사람은 내가 희생제의에서 쫓아낼 것이다... " 이에 논쟁이 시작되고.. 자신을 위해 다크샤를 비난하는 자를 달래며, 시바는, 바로 자신이 희생제의 이며 자신은 모욕당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감정과 분노에서부터 자유로와지라고 말한다.
시간은 흐르고 다크샤가 주재하는 희생제의가 열리는 날. 여전히 시바를 희생제의에 어울리지 않는 비천한 존재로 여기는 다크샤는 시바와 그의 부인인 자신의 맏딸 사띠를 초청하지 않는다. 이를 알게 된 사띠, 시바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고, 시바는 부드럽게,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해준다: 다크샤는 자신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으며, 초대받지 않고 누군가의 집에 가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괴로움일 것이라고. 시바의 설명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띠는 그래도 왜들 그러는지 알아봐야겠다며 가기를 고집한다. 이에 시바는 사랑하는 부인의 청을 들어주고,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스러운 무리들을 대동하고 아버지의 제의에 가도록 해 준다. 다크샤의 희생제의에 도착한 사띠. 하지만, 거기서, 시바의 절대적 신성과, 우주의 어머니인 사띠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 다크샤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자신과 시바에 대한 모욕하는 것을 듣게 되는 사띠. 그녀는 크게 분노하여,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마지막 훈계를 전달하며, 스스로를 요가의 힘으로 불살라 버리고,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소식을 들은 시바는 크게 분노하고, 그의 머리채를 한 움큼 뽑아내어 그가 머물고 있는 산의 정상을 내려친다. 그 머리채의 반으로부터 각각 무시무시한 신 비라바드라(Virabhadra: 시바의 무서운 버전의 신; Vira는 영웅, bhadra는 친구 혹은 축복이라는 뜻이다)와 공포의 마하칼리(Mahakali: 위대한 칼리)가 태어난다. 비라바드라는 시바의 군대인 가나(Gana: 잡다한 무리들이 섞인 시바의 수행원들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추하고 작달막한 기형적인 도깨비 같은 존재들; 매우 순종적이고 열정적으로 시바를 따르는 자들이다; 단어 자체는 무리(group), 군대(troops) 등의 뜻을 갖고 있다)를 이끌고, 시바의 축복과 - 다크샤와 그곳의 모든 무리들을 불살라 버리라는 - 그의 명을 받고, 다크샤의 희생제의가 열리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마하칼리와 다른 영웅들, 마귀(goblin)들도 이 원정에 동참한다. 다크샤의 희생제의에 참석하고 있던 수많은 신들과 시바의 군대 가나, 군대장 비라바드라, 공포의 마하칼리, 아홉 두르가와 그녀를 따르는 마녀들, 고블린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다크샤의 희생제의에 참석한 신들과 시바의 군대 가나와의 전쟁! (역자주: 악마적인 모습을 한 시바의 군대가 다크샤의 제의에 참가한 자들(그중엔 많은 신들도 포함되어 있다)을 무찌르는 다소는 아이러니한 상황. 물론 시바 쪽에도 신들도 있다. 무시무시한 비주얼과 힘을 가진 비라바드라와 마하칼리 같은) 양쪽 모두 강력한 전사들이었으므로 싸움은 맹렬하게 전개된다. 데바(Deva: 신) 쪽에는 번개의 신 인드라, 만유의 주인 비슈누, 죽음의 신 야마... 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시바의 군대를 향해 용감하게 맞서 싸운다. 하지만 결국 다크샤를 포함하여 거의 모두 죽임을 당하던지 혹은 간신히 도망친다. (역자주: 아마도 이 전쟁의 하이라이트는 비슈누와 비라바드라의 전투일 것이다) 시바를 저주한 다크샤, 제의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힌 이 브라흐만 사제의 반복적인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희생제의에 참석한 비슈누. 그런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비슈누는 "나는 나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복종할 의무가 있다"며 기꺼이 비라바드라를 응수해 전투를 치른다. 용감히 싸우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는 비슈누.. 그런 와중에, 그와 브라흐마 그리고 다른 신들에게 깨달음이 온다: 시바의 위대한 가나 군대는 이길 수 없는 대상임을, 그리고 이 모든 파괴는 사띠의 시련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임을. 이에 그들은 각각 본인이 속한 세상으로 도망가고, 남아있는 자들과 다크샤, 그리고 그의 희생제의는 모두 비라바드라와 그가 이끄는 가나에 의해 파괴된다. 임무를 바친 시바의 군대 가나와 이를 이끈 비라바드라는 축복 속에서 시바가 있는 히말라야로 돌아온다.
패배하고 망가진 신들과 현자들, 그리고 브라흐마와 비슈누는 후에 시바를 찾아와 경배를 올리며 용서를 구하고 시바의 군대에 의해 죽고 파괴된 신들과, 다크샤 그리고 희생제의를 구해 줄 것을 호소한다. 이에 시바는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고 파괴되었던 것들을 회복시킨다.
위의 신화에서 다크샤는 종교의식에 사로잡힌 브라만 사제로 나온다. 사회적 관습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사위가 신중의 신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희생 제의를 완성하는 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 근본적 ‘지식’이 결여된 그는, 자신의 딸이지만, 시바의 배우자이자 우주의 어머니인 사띠의 신성도 알지 못하고, 그런 그녀와 시바를 모욕한다. 본인에 대한 직접적 모욕에는 초연했던 시바. 하지만 사띠의 죽음에 분노하여, 그는, 무시무시한 비라바드라와 공포의 여신 칼리를 자신의 몸으로부터 탄생시키고, 그들을 자신에게 충직한 야수 수행원인 가나(Gana)들과 함께 다크샤와 그 하객들을 멸하기 위해 파견한다. 많은 신들은 다크샤의 희생 제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이 무시무시한 시바의 군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결국에 시바는 이 모든 파괴된 것들을 회복시키지만, 이 이야기에서, 시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든 이야기들은 신과 사제들의 희생제의라는 대표적인 관습적 종교 행위의 중요성, 부모와 자식 간의 위계, 혹은 신과 악마를 나누는 선악의 이분법과 같은 전통적이고 사회통념적인 익숙하고 편안한 구도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절대자 시바에 대한 지식의 결여와 사제로서의 권위 의식과 사회 통념으로 무장한 그의 분노는 그 자신의 파멸로 귀결된다. 야인의 모습을 한 시바의 본질을, 자신의 딸의 신성을 모르고 저주를 퍼부었기 때문에…
다음의 신화에서 시바는 남녀의 이분법적 구도의 기원으로 등장한다. 반은 여성의 모습을 한 주(the Lord))라는 뜻으로, 남녀의 몸을 한 몸에 지닌 시바, 아르다나리쉬바라 (Ardhanarishvara).
[그림 7] 아르다나리쉬바라 신화 2: 남녀를 한 몸에 지닌 시바
브라흐마에 의해 창조된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를 할 수 없었고, 이에 브라흐마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녀 커플로부터 창조하라." 하지만 여성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브라흐마는 이런 창조를 할 수가 없었다. 시바의 도움 없이 이런 창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브라흐마는, 사랑과 마음을 모아, 샥티(sakti: 힘, 파워, 혹은 힘, 파워를 나타내는 여신)와 결합한 시바에 대해 명상하며 위대한 고행을 수행한다. 브라흐마의 이러한 수행에 마음이 흡족해진 시바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반은 여자 반은 남자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류의 조상이자, 나의 축복받은 아들이여. 너의 마음의 소원을 내가 알고 있고, 너는 고행 수련은 나를 기쁘게 하였으니,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이렇게 말하고는 시바는 자신의 몸에서 샥티를 분리했다. 브라흐마는 샥티에게 여성을 창조할 수 있는 그녀의 힘을 자신에게도 달라고 소원을 빌었고, 시바 역시 브라흐마의 편에서 샥티에게 그에게 그 힘을 줄 것을 요청했다. 샥티는 그녀의 비할 데 없는 힘을 브라흐마에게 주고서 시바의 몸으로 다시 들어갔고 시바는 사라졌다...
아르다나리쉬바르(Ardhanarishvar: 반은 여성의 모습을 한 주(Lord))로서의 시바는, 혹은 그의 반쪽인 삭티는 인간이 번성해 나가는 중요한 방법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남녀의 이분법과 이를 통한 번영. 시바-삭티 커플은, 인도 상키야 철학의 순수의식(Purusha)과 자연(Prakriti), 즉, 이 둘의 상호 작용으로 만이 가능한 창조라는 상키야 철학의 이분법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또한 이 신화에서 샥티는 시바로부터 나오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이는 이 신화가 실려있는 시바 뿌라나의 주제처럼, 시바로 상징되는 절대자의 궁극적 통일성(Unity), 불이론적 이상(non-dualism)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궁극적 절대자의 통일성은 이분법에 의해 훼손되지 않으며, 이분법은 이 통일성(unity)과 하나 됨(Oneness)이 신적 유희(lila: play) 속에서 다양성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고 운용하는 신의 힘, 마법인 마야(Maya), 그리고 이를 통한 신의 유희. 시바와 삭티는 창조를 위한 원리를 제공하는 이분법이지만, 시바로 대표되는 그 궁극적 통일성은 파괴되지 않는다.
어떤 해석을 우리가 선택하건, 시바 자신은 이러한 해석이 사회 안에 자리 잡은 방식, 제도화된 결혼이나 절대자에 대한 고상한 이미지와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신의 유희, 마야의 작용에 의한 결과물로도 볼 수 있는, 인간의 제도와 사회 규율들. 시바 역시 그런 결과물의 틀 속에서 살아가고 – 시바 자신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 인간들을 계도하고, 축복하고 벌을 주기도 하지만, 그의 남다른 신성 때문일까, 이런 세속적인 틀 속에서, 그의 존재는 종종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불협화음은 모종의 신성한 울림이기도 하다. 다음에 살펴볼 이야기에서의 나라다(Narada)의 연주처럼.
신화적 전승에 의하면, 사띠는 가장 먼저 언급되었던 신화에서처럼 생을 마감한 후, 히말라야의 딸 파르바티(Parvati)로 다시 태어난다. 파르바티는 시바를 남편으로 얻기 위해 극한의 고행을 하고 마침내 시바의 마음을 얻는다.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식 장면은 시바 전통에서 매우 유명한 이미지이다. 신화 속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그림 8]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식 신화 3: 나라다의 류트
시바와 파르바티의 성대한 결혼식이 브라만 사제의 사회로 치러진다. 이제 결혼식의 매우 중대한 순간이다. 파르바티의 아버지 히마밧이 시바에게 그의 족보를 읊어 달라고 청한다. 이에 시바는 얼굴을 돌린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라다. 본질에 대한 지식이 있고, 시바를 그 마음에 섬기고 있는 현자인 그는 나서서 이야기한다.
“당신은 완전히 미혹되었군요. 내적 비전이 결여된 당신은 시바에 대한 지식이 전무합니다. 그는 형태를 초월한 브라만(Brahman: 우주적 초월적 본질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그에게는 고트라(Gotra: 혈통, 족보), 가족, 혹은 이름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몸과 이름들을 취해 현현합니다... 세상은 그의 신성한 유희 안에서, 그의 마법에 의해 움직이는 것들과 움직이지 않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슈누도 브라흐마도 시바의 링감(Lingam: 시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의 끝을 찾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시바의 의지를 실행해 옮기는 현자 나라다는 계속해서 말한다.
“파르바티의 아버지, 위대한 산이시여, 제가 이제 말하는 것을 듣고 당신의 딸을 시바에게 주십시오. 성스러운 소리만이 그의 고트라(Gotra: 혈통, 족보) 임을 아십시오. 시바는 나다(Nada: 시바와 하나라는 신비한 소리: 시바의 신비한 기원을 상징한다)와 하나입니다.”
시바에게 그 마음이 감동이 된 나라다는 류트(lute)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나라다의 류트 연주를 듣고 회중의 마음은 – 비슈누를 비롯한 다른 신들, 그리고 시바의 장인까지 – 시바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명예로운 가문 간의 결혼이라는 문맥 속에서 시바는 신성한 아웃사이더로 비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아웃사이더의 면모는 전혀 신성하게 여겨지지 않는 존재들과의 유대 속에서도 나타난다: 유령(ghost)들, 마귀(goblin)들, 악마(asura)들과 시바의 관계는 다른 신들에 비해 다소 각별하다. 앞선 신화에서 등장하는 다크샤의 제의에 참석한 신들과 맹렬한 전투를 벌이는 강한 시바의 군대인 가나, 그들을 돕는 마녀들, 마귀들. 제식주의에 사로잡힌 사제 다크샤는, 시바를 화장터에서 유령들에게 둘러싸여 우쭐하는 자로 묘사하며 비난한다. 다크샤가 시바를 비꼬면서 말한 이 내용들은 실제로 잘 알려진 시바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다음의 신화는 시바를 다소 코믹하게 묘사했지만, 시바와 악마와의 이야기를 다룬 매우 유명한 신화이다.
이 신화를 이해하기 위한 약간의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인도 신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양상 중 하나는, 신에게 정성을 들이며 고행이나 수련을 하는 자는 누구 건, 설사 아수라(악마)라 하더라도 신은 그 소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은 자신을 섬기는 자에게 매인다는 것은 인도의 박티(Bhakti (각주 1)) 전통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믿음이다. 바스마수라(Bhasmasura)라는 악마가 이러한 점을 이용해 시바에게 곤욕을 치르게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바스마(bhasma)는 먼지, 재 (ash)라는 뜻이다. 재(ash)는 시바 전통에서 중요한 상징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불이 남기는 고난을 상징하는 재; 모든 것은 결국은 재로 돌아간다는 면에서 모든 보이는 것의 본질을 의미하는 재; 성스러운 의식에서 사용된 불에 의해 남겨진, 정화의 힘을 가진 성스러운 재 (the sacred ash) (사람들은 종종 이 재를 신의 가호의 의미로 이마에 찍고 다닌다). 이 악마가 왜 먼지악마라는 이름을 가졌는지는.. 이 악마가 시바의 몸에서 나온 먼지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다. 혹은 이 악마가 빌은 소원이 먼지와 관련이 있어 그런 것일까?
[그림 9] 인도 화가 라자 라비 바르마(Raja Ravi Varma 1848–1906)의 작품 (퍼블릭 도메인) 신화 4: 시바와 비스마수라
바스마수라(Bhasmasura)는 매우 오만한 악마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되기 위해, 시바만을 생각하며 고행 수행을 하며 수년을 보낸다. 그의 정성에 시바가 감복하여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에게 나타나자, 바스마수라는 본인이 누군가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 누구든 간에 타버려 재가 되도록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시바는 이 소원을 들어주고, 이 무시무시한 파워를 얻는 바스마수라는.. 눈을 들어 시바를 바라보고는.. 시바에게 이 힘을 시험해 보고자 한다. 위험을 감지한 시바는 도망치고, 바스마수라는 그를 쫒는다. 시바는 비슈누에게 도움을 청하고, 시바를 도우러 나서는 비슈누. 그는 아름다운 모히니로 변신해 악마 앞에 나타나 황홀한 춤을 준다. 아름다운 여인의 환상적인 춤과 그 리듬에 취한 아수라는 모히니의 춤을 따라 추게 되고, 그녀가 손을 머리 위에 올리는 순간, 본인도 그 동작을 따라 하다가, 재로 변해 사라진다. 시바를 위기에서 구한 비슈누는 시바에게 조언한다: “앞으로 소원을 들어줄 때는 조심하시게”
시바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중 대표적 신화 몇 개를 살펴보았다. 고행자, 위대한 요기, 파르바티와 사띠의 남편, 신들의 신이자, 마귀, 유령, 악마, 가나들과 야수들의 주(the Lord), 금욕 수행자이자, 아름다운 댄서, 신성한 아웃사이더. 남자와 여자의 몸을 함께 가진 주. 악마의 소원을 들어주고 낭패를 당할 뻔한 시바.. 이제, 이 복잡 다단한 역설의 신(a God of Paradox) 시바를 하나의 에피텟으로 다시 조망해 보자: 위대한 요기(Great Yogi).
시바, 위대한 요기 (the Great Yogi)
[그림 10] 이샤 요가 센터(타밀나두)에 세워진 시바(아디요기) 동상. 높이가 112피트에 달한다고 한다 사뜨구루는 시바를 “가장 강렬한 인간 (the most intense human being)” “첫 번째 요기 (Adi Yogi)”라고 말한다 [각주 2]. 전통적으로, 인도에서 요가는 인간의 의식이 이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일종의 실천적 방법론이자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지식(jnana)과 신에 대한 사랑(bhakti), 그리고 행동(karma) 이 3가지 종류의 요가가 바가바드 기타의 메시지를 통해 이야기되어 왔다. 혹은, 몸의 수련에서부터, 호흡법, 마음과 정신, 감정과 지성의 높은 단계까지 정교하게 정화시키고 발달시켜 집중과 명상의 길을 통해 자유와 해방에 이르는 요가수트라의 방법 등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들이다. 이는 분명 인간을 위한 방법일 것 같은데… 시바는 요가를 한다. 그는 요기(yogi: 요가 수행자)다.
시바의 역설: 인간의 요가 vs. 신의 요가
먼저, 인간의 요가. 사뜨 구루의 표현을 빌자면, “가장 강렬한 인간” “인간에게 요가를 가르친 첫 번째 요기”인 시바; 그에 따르면, 요기 전통에서 시바는 신이라기보다는.. “강렬하게” 인간이면서 “첫 번째” 요기이며, 그런 시바는 인간들에게 요가를 가르쳤다고 한다.
요가는 방법, 길(path)이고, 요가 수행자들은 이 길(path)을 밟아 나가며 자유에 이르고자 한다. 이 과정 중 우리는 그 길을 다 가기 전에라도, 얼핏 그 자유의 ‘경지’를 ‘느낄’ 수도 혹은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나라다의 류트 소리가 홀연히 청중에게 깨달음을 준 것처럼.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은 절대자의 마야(maya)로서의 세상, 즉 본질이 아니며, 환상적인 면모로 인간을 유혹하고 고통받게하는 이 세상 안에서 고통받고, 기뻐하고, 흥분하고, 지쳐가며, 가끔 씩 초월의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간다. 시바의 이야기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교훈을 주기보다는, 기이함과 역설들로 장식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두 가지 – 마야와 자유 - 를 다 포함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함이 아닐까. 이분법의 두 축 중 어느 하나를 배제하지 않고서 자유로 가는 길을 모색하고자 함이 아닐까.. 깔끔하게 정리된 자유, 빛과 아름다움, 신들과 어여쁜 요정들이 노래하는 천상의 이미지보다는, 우리가 보기에 추악한 것들도 포함되어 가는 길, 인간됨의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 강렬한 인간됨이 자유의 길과 합쳐질 수 있는 길을, 강렬한 인간이자 요기인 시바는 꿈꾸는 것이 아닐까.. 인간과 자유 두 가지를 다 포기할 수 없었던 시바가, 인간들에게 요가를 가르치는 방법이 바로 이 기이한 역설이 아니었을까…
두 번째, 신의 요가. 인간적이기"만" 한 시바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시바는 절대자다. 자기 안에서 창조의 두 원리-시바와 삭티, 혹은 푸루샤와 프라크르띠-가 이미 하나로 이미 존재하는. 선과 악의 이분적 논리에 구애받지 않는, 신중의 신이면서도 아수라와 마귀들의 섬김도 받는 존재이다. 바가바드기타에 의하면, 절대자는 그의 요가(Divine Yoga)에 의해 스스로를 세상으로 발현한다. 이 내용에 대한 슈리 오로빈도는 다음과 같이 코멘트한다.
“절대자는 그의 신성한 요가(divine Yoga)를 통해 자신 안에서 세상을 구현한다.. : 그 다양한 존재 들는 그 안에서 하나이며 그는 그들의.. 다양한 면모들 안에서 하나이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절대자를 발견하도록 깨어나는 것이 바로 인간 차원의 신성한 요가(divine Yoga)이다.” (p. 311, Essays on th Gita)
신의 요가는 자신으로부터 세상을 구현해 내는 것이고.. 그리고, 신 안에서 세상은 하나이며, 그것에 눈을 뜨는 것이 인간의 요가라고 슈리 오로빈도는 말하고 있다. 신의 요가는 신과 인간 사이에 무지라는 베일을 걸쳐 놓고, 마야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의 요가는 이 신이 만든 마야를 뚫고 지나가 이 무지의 베일을 걷어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과하게 단순화시켜 본다면, 신이 인간이 되는 것이 신의 요가라면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의 요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두 가지 방향성 – 신의 하강과 인간의 상승 –으로서의 요가는, 시바라는 캐릭터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그의 강렬한 인간성은 분열된 인간의 상태를 함께 끌고 나가고자, 이분법으로 나누어진 것들이 함께 상승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요가의 길을 간다. 이 모두를 이해하고 초월하는 절대자 시바는 이 구분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창조하고, 파괴하고, 다시 창조한다. 그리고, 이분법을 초월하는 혹은 이 둘을 모두 창조한 그 원초의, 절대자의 빛을, 무지의 베일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내 비친다. 이런 시바를 우리가 무지라는 베일을 통해 바라볼 때, 역설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필자의 다소 미숙한 번역을 통해 다음에 소개할 슈리 오로빈도의 시는 시적 언어로 시바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감히 한마디 설명을 보태자면, 이 시에서 슈리 오로빈도는, 순수의식인 영혼과 자연의 이중주를 시바와 샥티, 혹은 하나인 샥티와 시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샥티가 춤을 춘다. 아니면... 샥티가 빙글빙글 돌며 추는 춤은 시바의 성스러운 춤이 어떤 것일까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제, 필자의 코멘트들은 뒤로 하고, 시를 감상해 보자.
시바
영원, 그 백색의 정상에서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무한함,
그 단 하나의 영혼이
평온의 화염에 둘러싸여
벌거벗은 엑스타시,
그 신비로운 고독을 지킨다.
그러나, 무한히 넘쳐나는 존재의 기쁨에 닿아
그는 끝이 없는 심연을 가로질러 바라본다
깨어나지 않은 의식의 침묵들 한가운데서 사색하며
웅장하고 강력한 어머니 자연의 원시적 지복을.
절반의 의식만이 깨인 채로 그녀는
그의 눈길을 향해 상승한다.
그때, 그녀의 심장은 뛰고,
그 심박의 의지에 의해
그녀는 빙글빙글 움직인다.
리드미컬한 세상은 그 열정-춤을 보여준다.
생명이 그녀에게서 나오고 정신이 태어난다;
그녀는 얼굴을 든다,
그녀 자신인 그에게
그 영혼이 그 영혼의 포옹으로 도약할 때까지.
슈리 오로빈도 (Collective Poems에서)
Shiva
On the white summit of eternity
A single Soul of bare infinities,
Guarded he keeps by a fire-screen of peace
His mystic loneliness of nude ecstasy.
But, touched by an immense delight to be,
He looks across unending depths and sees
Musing amid the inconscient silences
The Mighty Mother’s dumb felicity.
Half now awake she rises to his glance;
Then, moved to circling by her heart-beats’ will,
The rhythmic worlds describe that passion-dance.
Life springs in her and Mind is born; her face
She lifts to Him who is Herself, until
The Spirit leaps into the Spirit’s embrace.
Sri Aurobindo (in Collective Poems)
[각주]
1. 박티(bhakti): 인격신에 대한 헌신과 사랑에 초점을 둔 전통으로, 비인격적 초월성과의 합일을 지향하며 명상, 지식 등의 방법으로 해탈에 이르는 철학적 방법과 함께 인도 종교 문화의 양대 축을 이루는 전통이다. 종종 신애 사상으로 번역된다. 이 두 전통은 대조적으로 비교되기도 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신행이나 다양한 전통들의 실제 모습에서, 이 둘은 대부분 함께 발견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즉, 어떤 부분의 비중이 더 큰지, 더 우선시 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성격의 조합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다.
2. 사뜨구루 (Sadhguru): 현재 인도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가장 인기 있는 구루 중 한 명. 그가 설립한 이샤 파운데이션 (Isha foundation)에서, 그는 요가를 통해 인간 의식의 성장과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다루고자 많은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그림 출처]
[그림 6] 시바 벽화 (Attribution: Antoine Taveneaux, derived by User:Dharmadhyaksha,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deed.en>; via Wikimedia Commons)
[그림 8]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식 (Attribution: రహ్మానుద్దీన్,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참고 서적]
Eck, Diana L. Darśan : Seeing the Divine Image in India 3rd ed.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Flood, Gavin D. An Introduction to Hinduism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Jagannātha Śāstri, Jayanti. Śivapurāṇamu., 1950.
Sri Aurobindo, Collective Poems, Sri Aurobindo Ashram Trust, 2009.
Sri Aurobindo, Essays on the Gita, Sri Aurobindo Ashram,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