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국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마지막날이라고 체험학습 갔는데 그때 아이스크림 만들어봤지. 나만 모르고 반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어. 거기서 아이스크림도 만들고 여러 놀이도 하고 카드도 받고 즐거웠어."
어떤 경위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딸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시간이 멈춘 듯 한동안 망부석이 되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널 위해서 체험학습을 가고, 아이스크림도 만들고 그랬어?"
"응, 그날이 내가 학교 나간 마지막 날이었잖아."
딸아이만을 위해 체험학습을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체험학습에서 딸아이를 위한 재밌는 이벤트가 있었으리라 추측해본다. 써프라이즈 축하같은.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을 떠올려본다. 참 사려 깊고 친절했던 선생님으로만 기억에 남아있었던 분인데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찌르르르 가슴을 관통하는 감동을 전해 주시는 분이었다.
일본행을 결정하고 아이들 학교에도 관련사실을 알리고 면제절차를 밟아야 했다. 다른 일정으로 바빴던 나는 안의한 마음에 조금 천천히 해도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이사 간다고 말을 흘렸나 보다. 선생님이 직접 연락을 주셔서 관련사항을 물어보시고, 면제 절차에 관한 모든 것을 친절히 알려주셨었다. 학적 업무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따로 계실터인데 이 또한 담임 선생님이 직접 연락하셔서 관련 절차를 매끄럽게 처리해 주셨다. 나는 선생님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면제절차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참 세심하신 분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감사함을 느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율이의 마지막 등원날이자 방학식날.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두 손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종이책자가 들려있었다. 자랑하는 아이에게 받아서 찬찬히 읽어보니 세상에 선생님이 직접 만드신 이별책자였다. 책자 한 장 한 장에는 반친구들이 적은 글들이 적혀 있었고, 모두함께 찍은 사진들과 함께 선생님의 애정 가득한 손글씨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선물에 한동안 망부석이 되어 애써 눈물을 삼켰었다. 딸아이 몰래 반친구들과 계획하고 준비했을 정성과 마음이 느껴져 더 뭉클했었다.
그렇게 선생님의 세심하고 다정한 친절은 내 가슴에 묻혀 감동의 씨앗이 되었고, 오늘 딸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다. 나의 가슴속에서.
누군가의 친절은 사람을 물들이고 공기를 물들이고 그렇게 세상을 물들여간다. 그저 제자를 향한 사랑, 걱정, 응원의 마음을 담은 선생님의 친절이었을 뿐이었지만 친절은 그렇게 나를 똑같이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물들여줬다.
아름다운 물들임.
한국으로 돌아가 기회가 되면 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친절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의 친절은 나와 딸아이를 통해 여기저기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아름다운 전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