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75
6개월.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겐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달리기에 한참 빠져있었던 작년만 해도 내 몸은 무쇠 몸인 줄 알았다. 발목에 살짝 통증을 느낄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큰 부상 없이 3년 넘게 달렸다. 남들이 흔하게 겪는 무릎 통증도 없었다. 첫 2년은 일산호수공원에서만 달렸다. 대회니 다른 코스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다양한 러닝 경험의 재미에 눈을 떴다. 경주 보문호수, 일산의 고양누리 산책로, 여수 오동도 방파제, 일본 삿포로 그리고 대망의 마라톤 대회까지 새로운 곳을 찾아 달리고, 다른 러너들과 경쟁하니, 달리는 경험이 더 즐겁고 재미있었다. 마라톤 대회 10km 완주하고 난 후 감히 하프 마라톤, 풀코스 마라톤에 대한 꿈을 꿨다.
그 희망이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작년 10월 두 번째 10km 대회를 달리고 나서 오른발에 족저근막염이 발병했다. 대회에서 달리고 나서 통증 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다. 재활병원에 가니 족저근막염이 '재발'했다고 진단했다. 원체 족저근막염이 있었으나, 한참 괜찮더니 이번 대회를 달리고 발병했다. 그즈음 체중이 야금야금 늘더니, 그것이 발에 부담을 준 것 같다.
족저근막염은 발바닥 근막에 염증이나 미세 손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으로 자고 일어나서 아침 첫 발 디딜 때 뒤꿈치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게 되며, 장시간 서 있거나 걷고 난 후 통증 악화된다. 보통 발뒤꿈치 안쪽이 가장 아프고, 심하면 발바닥 전체가 당기거나 아프다.(챗GPT)
혹자는 족저근막염이 어떻게 아프냐고 묻는다. 쉽게 설명하면, 일산호수공원에도 발 지압을 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돌들을 깔아놓은 지압길이 있다. 그 길을 오른발 뒤꿈치로만 디디며 걷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그 돌들이 다 뾰족하다는 것이다. 걸을 때마다 뾰족한 부분이 발 뒤꿈치 뼈를 찌르는 것 같은 통증으로 아예 걸을 수가 없었다.
좀 쉬면 통증이 가라앉는다. 문제는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 침대에서 첫 발을 디디면서 또 아프다. 이때 느낌이 참 불쾌하다. 그래도 좀 걸으면 통증이 사라졌다.
재활병원에 가서 충격파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은 제대로 된 휴식이 약이었다. 문제는 내가 달리기를 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쉬는 것이 두려웠다. 하루라도 쉬면 체력과 컨디션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달리기를 이어갔다. 대신 재활병원에서 족저근막염에 좋은 스트레칭 동작을 배워서 매일 아침 스트레칭을 했다. 마시지 볼로 발바닥 족저근막을 따라 문지르거나, 발목 뒤의 아킬레스건을 늘려 발바닥 족저근막을 당기는 압력을 낮추는 발목과 종아리 스트레칭을 꾸준히 했다. 특히 아킬레스건을 늘리는 스트레칭을 할 때면 발 뒤꿈치를 따라 근육을 억지로 당기면서 발 뒤꿈치 뒷부분을 약하게 잡아 뜯는 느낌인데, 이게 많이 아프진 않은데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기분이 나쁘다. 같은 동작을 해도 왼발은 별 느낌이 없는데 오른발 스트레칭을 하면 통증이 있으니 아직 안 나은 거다.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DC 출장 이후 달리기를 줄이다가 쉬었다. 사실 5월 체코 프라하 여행, 6월 인도 델리 출장 때도 달려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달리기는 내 삶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런데 일상에서 지나가다 옆을 지나가는 러너들에 눈이 가고, 달리기에 관한 책에 자꾸 손이 갔다. 달리기를 놓을 수 없었다. 아니 놓기 싫었다. 하지만 몸이 낫는 과정은 매우 더뎠다. 처음 발병했을 때 확 쉬었어야 했다. 평생 운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 휴식의 효과를 몰랐다. 긴 휴식이 아니면 짧은 휴식은 몸이 회복하게 도와 오히려 몸의 상태를 호전시키는데, 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수개월을 쉬면서 마냥 놀 수는 없어 필라테스를 꾸준히 했다. 다행히 모임필라테스의 LS 원장님이 내 발 상태를 고려한 스트레칭과 동작 등 맞춤 수업을 잘 짜줬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발이 낫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게다가 족저근막염은 재발이 잘 되는 병이라고 들었다. 달리기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운동으로 수영, 자전거로 운동을 바꾸는 것을 고민했다. 선뜻 내키지 않았다.
7월부터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됐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발을 많이 쓰니, 발 상태에 다 예민해졌다. 그래서 쿠션감이 좋은 신발을 신고, 의식해서 발바닥 중간에 무게 중심이 실리도록 미드풋 자세을 연습했다. 사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시간 넘게 서 있으니, 오른발 뒤꿈치가 아파왔다. 뒤꿈치로 한 시간 가까이 내 몸무게를 지탱하면서 지속되는 압력이 통증을 유발한 것이다. 통증의 정도는 10을 최대치로 치면 2~3 정도였다. 그래서 서있으면서 무릎을 살짝 굽혀 무게 중심을 발 앞에 싣는 연습을 했다. 사실 앉아서 갈 수 있도록 집을 나서는 시간, 타는 열차량 등을 찾아 기를 쓰고 앉았다. 그래도 서서 가는 날이면 무게 중심을 발볼로 싣는 연습을 했다.
매일 아침 10분씩 집에서 미드풋으로 걷는 연습을 했다. 신발을 신고하면 발볼로 바닥을 딛는 느낌이 안 왔는데, 맨발로 하니 발볼로 걷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휴식, 스트레칭/마사지, 미드풋 연습 그리고 쿠션이 좋은 신발. '이걸로 회복이 될까?', '다시 달릴 수 있을까?' 이렇게 여름이 지나갔다. 통증은 심하진 않았지만 많이 걷거나 오래 서있으면 오른발 뒤꿈치에 기분 나쁜 통증이 찾아왔다.
'시험 삼아 한 번 달려볼까?', '좀 더 참을까?' 하루에도 생각이 수시로 바뀌었다. 괜히 다시 달렸다가 증상이 다시 심해지면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8월 말에 와이프랑 늦은 여름휴가로 속초로 떠났다. 숙소는 롯데리조트 속초. 외옹치항에 인접함 큰 리조트였다. 숙소 앞에 3km 정도 길이의 외옹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산책로 바닥은 나무 합판으로 연결된 마치 나무로 만든 다리 같았다. 나무 바닥이라 쿠션감이 좋을 것 같았다. 와이프랑 산책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달려 봤다. 와이프가 옆에서 걷는 속도에 맞춰 달린 거라 속도는 느렸다. 의외로 미드풋 자세 느낌이 잘 왔다. 발에 충격도 안 왔다. 여기는 달려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와이프랑 일출을 보고 달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늦잠을 푹 잤다. 못 달렸다. 역시 6개월 휴식으로 인해 마음이 나태해졌다.
속초에 다녀와서 첫 주말. 마침 매일 아침 필라테스 수업도 LS 원장님의 더 늦은 여름휴가로 휴강이었다. 이 날이다 싶었다. 그래서 새벽에 일산호수공원으로 나섰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지난 6개월이 참 길었다. 나으리란 확신이 없어서, 이제 다시 달릴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힘들었다. 게다가 통증은 늘 곁에 있었다. 그런데 결국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달리고 난 후에도 발꿈치에 통증이 없었다. 달릴 때는 모르고 있다가 달리기 마치고 통증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힘든 시기였지만 부상이 나에게 일깨워 준 것이 있다. 몸은 쉬어야 한다. 너무 몰아붙이면 다친다. 하루 이틀 쉰다고 해서 이뤄 놓은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체력을 잃었더라도 다시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고심하게 됐다. 이제는 주 3회~ 주 4회 정도만 달리면서 컨디션 관리를 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참 달리기를 좋아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족저근막염 나으려면요...
"잘 쉬면 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