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76
'달리기는 역시 새벽 달리기지! (엄지 척)'
다시 달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이 글을 쓴 시점은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 초다.) 아침 출근길이면 이제 가을이 왔구나 싶을 정도로 바람이 선선하다. 그런데 조금 지나 점심때가 되면 기온이 30도를 넘나 든다. 정말 종잡을 수 없다. 한 여름의 후덥지근함은 사라졌지만 태양빛은 여전히 뜨겁다.
일요일 오전에 시간이 비어 오전 11시에 일산호수공원으로 달리러 나갔다. 아침부터 날도 흐리고 공기도 시원해서 '달려도 되겠다' 싶었다.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머리도 복잡한데 나가서 달리면 머릿속을 비울 수 이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멈추고 싶다는 '뇌'님의 유혹 없이 완주하기를 바라면서, 아니 완주하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렸다. 사실 달리기 전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쉬지 않고 달리겠다'라고 굳게 마음먹고 출발해도, 무슨 일이 꼭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화장실을 급히 가야 할 상황은 불가피하게 달리기의 흐름을 끊었다. 잠시 쉬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다시 달리면 되는데, 묘하게 '나 스스로에게 졌다'는 패배감과 짜증이 올라와 웬만하면 '멈춤'없이 달리는 것이 매일의 목표다.
첫출발, 느낌은 좋았다. 늘 어두운 새벽 시간에 달리다가 밝은 '태양' 아래 자연의 화려한 색감을 한껏 뽐내는 일산호수공원은 생기가 넘쳤다. 오전이라 러너들,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달리는데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도 역시 '천천히' 달렸다. 스마트와치를 보니 심박수가 154 bpm. 생각보다 심박수가 높았다. '뜨거운 햇살에 평소보다 빠르게 몸이 달궈진 것일까?' 1km 남짓 달렸을 뿐인데 힘들었다. 그래도 '천천히 달리면 되지 않을까?' 그나마 나무 그늘 밑은 달릴만했다. 그늘 가를 빠져나와 햇빛 밑으로 나가니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숨이 턱 막혔다.
태양 아래서 숨 막히는 이 느낌이 낯설지 않았다.
'언제였더라?'
............
'아! 작년 10월 말 안양체육공원에서 열린 사랑밭 기부런 'Bravo Ur Running' 대회!'
10km 대회에 참가했었는데 5km 달리고 배 아파서 걷다 뛰다 했던, 그리고 나에게 족저근막염 재발을 선물했던 그 대회가 딱 그랬다. 뜨거운 태양빛에 체력, 인내심, 정신력이 바짝 말라가는 그 느낌이 이었다. 새록새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힘이 쭉 빠졌다. 순간 새벽의 서늘한 바람이 그리웠다. 결국 2.5km를 달리고 그 후로는 걷다가 달리다가 하면서 한 바퀴를 돌았다. 이런 날은 정말 기분이 찝찝하다. 날씨를 확인했더니 섭씨 29도였다. 새벽에 달렸다면 완주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새벽 기온은 낮보다 10도나 낮았다. 그래서 난 새벽 달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새벽의 고요함이 좋다. 고요함 속에서 달리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탁! 탁! 탁! 탁!' 귓가에 들려오는 내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나의 움직임에 더 집중하게 된다. '발소리가 큰 것 같으면 생각 없이 발을 내딛나? 발 뒤꿈치에 오는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발이 내딛을 때도 동작을 조절하고자 신경 썼다.
새벽이라 인적이 드문 시간임에도 전혀 외롭지 않다. 일산호수공원에는 코스 곳곳에 가로등이 서있다. 아무리 어두워도 일산호수공원에는 어두컴컴한 구간이 거의 없다. 사람은 없지만 가로등불을 따라 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가로등을 지나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 그림자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소한 재미다. 내 그림자가 나와 함께 달리는 것 같아 든든하기만 하다.
그리고 다른 러너들을 하나 둘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남들이 여전히 꿈나라에 있는 시간에 새벽을 함께 여는 러너들이 있어 힘이 된다.
새벽 달리기의 또 다른 매력은 해 뜰 때 일산호수공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참 달리고 있으면 어느 순간 가로등이 툭하고 꺼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왔다. 일산호수공원뿐만 아니라 나도 깨어나는 느낌이다. 그리고 다소 이른 수탉의 울음소리와 밝아오는 햇살에 하루를 여는 것 같아 힘이 솟는다.
그리고 한적함이 새벽 달리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날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에 굳이 일산호수공원에 와서 운동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기에 유유자적 방해받지 않고 달릴 수 있다. 내 마음에 따라 빠르게도, 또는 천천히 달려도 된다. 평소 호수공원에 사람이 많다 싶으면 자전거 도로 갓길로 빠져서 달린다. 나보다 빠른 러너들에게 방해가 안되도록 알아서 구석에서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새벽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눈치 보지 않고 가운데로 달려도 된다. 사실 자전거 도로 갓길이 마모가 되고 움푹 파인 구간이 많아, 달리면서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가능하면 도로 상태가 좋은 중간 부분에서 달리는 것이 좋아한다.
그리고 고요함 속에서도 자연의 소리를 만끽할 수 있다. 낮에는 일산호수공원에 자동차 소리, 사람들 소리가 가득하다. 하지만 새벽에는 사람의 소리보다는 자연의 소리가 호수공원을 가득 매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꽥! 꽥!' 오리소리인지 맹꽁이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되는 울음소리, 겨울에는 '구구~구구~' 구슬픈 부엉이 소리 등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자연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연의 소리는 매번 다르다. 어느 날은 일출시간에 맞춰 '호떡집에 불이 났다' 싶을 정도도 새들이 부산스럽게 우는 날도 있다. 음악을 들을 이유가 없다. 자연의 소리에 귀가 즐겁다.
그리고 새벽에 달리면 왠지 마음이 안정되고 편하다. 달리기에 집중이 더 잘 된다. 그래서 난 새벽 달리기가 좋다.
물론 심야 달리기는 안 해봤다. 막상 해보면 또 다른 매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만물과 함께 깨어나는 새벽 달리기가 좋다.
내가 주로 달리는 시간은 오전 5시~6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