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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떻게 달릴까?

런린이 다이어리 78

by 견뚜기

달리기 라이프 2회전. 나는 어떻게 달려야 할까?


오른발 족저근막염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달리기 목표는 '조금 더 빠르게'였다. 슬로우 러닝으로 시작해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일산호수공원은 1바퀴에 4.71km. 초창기에 목표가 1바퀴를 30분 내에 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30분, 29분, 그렇게 조금씩 시간을 단축해 27분 초반까지 달렸다. 기록 1분을 단축하기 위해 달리는 내내 페이스를 끌어올려야 했다. 막판에 전력질주한다고 기록이 단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렇게 달리다가 어느 순간 5km에 못 미치는 290m가 마음에 걸렸다. 공원 1바퀴를 무사히 달렸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290미터를 채운 5km를 빠르게 달리기로 목표를 바꿨다. 그렇게 한동안 달리고 나니 거리에 욕심이 생겼다. 5km 벽을 넘고 싶었다. 온 힘을 다해 5km를 달리고 더 달리는 것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버거워서 5km를 넘기기 힘들었다. 그때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슬로우 러닝이었다. 천천히 달리니까 심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날이 난 생 처음으로 10km를 쉬지 않고 달린 날이었다. 그 후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동안 꾸준한 달리기로 체력이 생겼다. 그래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거리를 늘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달리기 체력이 붙고 자신감과 열정이 충만할 무렵 족저근막염이라는 부상이 발발했다. 그렇게 나의 달리기 라이프 1회전이 끝났다. 부상으로 달리기를 한동안 쉬었다가 오른발 상태가 괜찮아지면서 조심스럽게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이제 2회전은 어떤 목표로 달려야 할까? 가장 무서운 것은 부상의 재발 방지다.


족저근막염 발발하고 힘들게 회복했다. 그 중간에 6개월간의 강제 휴식도 있었다. 달리지 못하는 6개월, 달리기에 푹 빠져버린 나한테는 길고 길었다. 달리지 못하니 달리기가 더욱 고팠다. 달리는 순간순간 심장이 요동치며 느꼈던 그 생동감,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에 빠져 달리던 그 느낌,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 숨을 내쉴 때 머리끝까지 밀려오는 그 개운함이 그리웠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다시 달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몸에 오르는 열기와 거칠어지는 호흡이 오히려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일단의 목표는 '천천히 달리자'다. 6개월 쉬면서 몸도 많이 불었다. 그리고 달려보니 달리기 체력도 많이 줄었다. 다시 몸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발 뒤꿈치에 충격이 덜한 미드풋 주법으로 적응 기간도 필요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매일 달리지 않는다. 몸도 쉬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지금도 쉬는 날 달리고 싶은 마음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쉴 때 쉬어야 한다. 다행히 이번 가을비가 자주 왔다. 이번 추석 연휴도 비가 와서 7일 중 3일만 달렸다. 그렇게라도 하루 이틀 쉬면 다리가 가벼웠다. 역시 달리기에 휴식은 필수다.


강렬했던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고 시원한 새벽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다. 새삼 느끼지만 가을은 달리기 참 좋은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에 상쾌함이 배가 된다. 여름에 비해 체력 안배도 수월하다.


이제 일산호수공원 1바퀴를 달리면 38분~39분대다. 확실히 천천히 달리니 기록이 늦어졌다. 그리고 심박수를 150 bpm을 유지하려고 한다. 150 bpm을 유지하면서 달리면 호흡이 한결 편했기 때문이다. 150 bmp이 넘으면 속도를 줄여서 심박수를 조절한다. 대신 1바퀴를 달리고 나서 덜 지친다. 왠지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5km를 채웠다.


달리기 라이프 2회전에는 지속적으로 40분 이상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목표다. 당분간은 조금씩 달리는 시간을 늘릴 계획이다. 오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지구력을 늘려봐야겠다.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며 나를 지나쳐가는 러너들의 뒷모습을 봐도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아니 조바심은 나지만 그 조바심을 달랠 수 있다. 남들이 빨리 달린다고 따라 달리다가는 다시 탈 날 수 있다.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들이 황새라면 지금의 나는 뱁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남들의 성과만 보고 무작정 준비 없이 따라 하다간 문제가 생기고 만다. 그래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나를 단련하는 노력과 기간이 필요하다. 조급할 필요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달리다 보면 어느새 1km, 2km 그리고 일산호수공원 1바퀴에 도달하는 것이 달리기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빠르지 않아도 단지 남들보다 조금 느릴 뿐이다. 꾸준히 달리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인생도 달리기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그리고 내 조바심을 달래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달리기다. 그래서 꾸준히 달리고자 한다.


예전에는 빨리 달리는 것이 멀리 달리는 것, 오래 달리는 것보다 우선했다. 지금은 오래 달리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다. 급하게 달렸다면 지금은 여유롭게 달리는 것이 먼저다. 격렬하게 세게 달렸다면 지금은 사뿐사뿐 몸에 무리 가지 않도록 달리는 것이 제일이다.


왠지 다 내려놓고 오래 달리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부담 없이 느긋하게 달리게 된다. 물론 달리기 초창기였다면 무작정 40분 이상 달린다는 것이 상당히 지루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부상으로 달리기를 한동안 쉬었더니 달릴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그래서 오래 달릴 수 있어 마냥 좋다. 이제는 달리기 자체를 즐긴다.

지난 주말 강동구 명일동에서 길동생태공원 가는 길을 달렸다. 초행길을 즐기며 느긋하게 달렸다.

세상에 '무조건'이라는 법은 없다. 달리기의 목적이 빨리 달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상을 한번 겪으니 달리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즐겁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달리고 싶다. 달리기의 목적이 변했다.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것만 고집하다간 또 부상이 찾아올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맞게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무리하면 탈 나기 십상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 우화가 떠오른다. 달리기 대회와는 달리 우리네 삶에는 끝이 없다. 꾸준히 성실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 뿐이다. 토끼처럼 잽싸게 전력질주로 달려 결승점에 도달한다고 끝이 아니다. 또 새로운 길이 눈 옆에 펼쳐져 있다. 결국 거북이처럼 지루해도 꾸준히 달리는 것이 결국 긴 인생을 완주하는 방법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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