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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상황은 늘 발생한다.

런린이 다이어리 79

by 견뚜기

'달리면서 내 페이스대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쭈욱 달리는 거야.'


이른 새벽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조여 매면서 세우는 계획이다.


그렇다. 그냥 계획이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계획에서 엇나가는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닥치면 달리는 흐름이 끊기곤 한다. 그러나 이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달리기 초창기에는 달리기를 하다가 한 번이라도 멈추거나 속도를 줄여 걸으면 그날 달리기는 망한 것이라는 강박이 있었다. '쉼 없이' 원하는 양의 운동을 해야 제대로 달린 기분이었다. 중간에 잠시라도 멈추면, '운동 효과가 도루아미타불된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한창 운동 중인 심장에게 잠시라도 쉴 시간을 주는 것이 뭔가 나를 속이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모임(Moim) 필라테스의 LS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뚜기님~ 참아요!" 글을 쓰다 보니 나도 참 근거 없이 희한한 강박이 많은 편이다.


특히 일산호수공원 1바퀴를 도는 시간을 줄이는데 집중하면서 중간에 잠깐이라도 멈추는 것이 더 싫었다. 힘들다고 잠시 걷다가 다시 뛸 때 왠지 멈추기 전 속도로 달리는 추진력을 만드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달리기 체력이 없었을 때는 잠시 멈추면 다시 달리기 싫어졌다. 그래서 힘들다고 멈췄다가 걷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쉼 없이 달리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돌발상황은 늘 발생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달리기를 잠시라도 중단하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가장 흔한 돌발상황은 바로 운동화 끈이 풀리는 것 아닐까?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탁! 탁! 탁! 탁! 발소리에 희한한 소리가 끼어든다. 그리고 발을 내딛을 때 발등에 무언가가 발등을 탁탁 치는 느낌이 든다. 이상하다 해서 발밑을 쳐다보면, 아니나 다를까, 운동화 끈이 풀려 길거리 풍선 인형 팔처럼 팔랑이고 있다.


걸음을 멈춰 서둘러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매고 달리지만, 그런 날은 꼭 문제가 됐던 운동화 끈이 다시 풀리곤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신경 써서 운동화 끈을 꽉 조여매도, 끈이 풀리는 날은 꼭 있다. 그래서 나는 운동화 끊을 매고 나비 모양의 매듭을 신발 안으로 넣는다. 그러면 운동화 끈이 덜 풀린다. 이후 러너스클럽 이대점에서 Heel-Lock 끈묶기를 배웠다. 러닝화를 호카(Hoka) '링컨 4(Lincoln4)'도 힐락 스타일로 끈을 묶는데, 좀처럼 끈이 풀리는 일이 없다.

러닝화 끈을 힐락 스타일로 매면 끈이 잘 풀리지 않아 달리기 좋다.

또는 달리는데 그날따라 다리가 가벼운 날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이 가볍고 힘이 넘친다. 기분상 속도가 잘 나와, 자체 기록을 경신할 것 같은 묘한 흥분감이 든다. 이런 날은 십중팔구는 오버페이스로 페이스 조절에 애를 먹는다. 몸이 가벼우니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달려본다. 하지만 가벼움은 곧 사라지고 다리가 무거워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결국 힘들어서 속도를 늦추면 다행이다. 힘들어서 걷기도 했다.


또는 전일 과음을 하고 달리러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내 입장에서 코로나19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술자리 문화가 아닐까 싶다. 업무상 저녁 술자리가 많은 편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술자리가 정리되는 시간이 빨라졌다. 코로나 이전에는 밤 12시가 기본이었지만, 요즘에는 늦어야 밤 10시~11시다. (그렇다. 나는 술이 약해서 술 마시는 것은 안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일찍 파하는 술자리가 좋다. 그리고 그만큼 술을 마시는 양도 줄기도 했다. 문제는 술을 마셔도 눈이 떠지는 시간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바로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눈이 떠지고, 잠이 안 온다. 결국 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고 호수공원으로 나선다.


그런 날은 대부분 전일 술을 조금 마셔서 몸은 정상인 것 같다. (심하게 과음한 날은 나갈 엄두를 못 낸다.) 하지만 문제는 머리다. 확실히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아니면 잠을 푹 못 자서 그런지, 심리적인 체력이 바닥이다. 그래서 해장 운동을 하겠다고 야심 차게 뛰기 시작하고 10분도 안 돼서 뛰기 싫은 마음이 강해져서 걷게 된다. 예전에야 매일 달려야 한다는 강박이 커서 술 마신 다음날도 억지로 달렸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요즘은 술 마신 다음 날은 그냥 달리기를 쉰다.


몸 컨디션이 안될 것 같은 날은 인터벌로 전환을 한다. 조금 걷다가 전력을 달리고, 조금 걷다가 전력으로 달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어느새 땀에 흠뻑 젖고 몸과 머리가 가벼워진다.


다른 상황은 복근이 아파 온다. 흔히 갑자기 달리면 배가 아파오는 현상이다. 작년 10월 참가했던 10km 대회에서도 5km를 달리고 배가 아파서 결국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대회를 망친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배가 아파오면 일단 걸었다. 배가 괜찮아지면 다시 뛰었다. 그러다가 걷기 싫어서 미련 맞게 꾹 참고 그대로 달리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다가 속도를 줄여서 달리니 통증이 사라졌다. 그러면 다시 속도를 올렸다. 요즘은 천천히 달려서 배가 아플 일이 없다.


가장 난감한 상황은 화장실이 급해질 때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달리기 전에 볼일을 보는 편이다. 그래서 맘 편하게 달리는데, 간혹 전날 과식을 한 날은 달리면서 장 활동이 더 활성화돼서 그런지 배에서 신호가 오는 날이 있다. 초반에는 가급적 참고 달려봤다. 하지만 계속 온 신경이 배에 쏠려서 달리기에 집중하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머릿속에선 달리기가 아닌, 잘 참을 수 있을까? 화장실은 얼마나 남았지? 괜찮을까? 배가 더 아파오는 거 같은데?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식은땀인지, 운동 땀인지 모르는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주르르 흐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산호수공원에는 공중 화장실이 많다. 일산호수공원을 둘러싸고 8~9개의 화장실이 있다. 게다가 화장실마다 이름도 다 다르다. 그리고 화장실이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다. 그래서 달리다가 사인이 오면 스마트워치를 일시정지시키고 바로 화장실로 직행한다. 화장실이 없다고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어디를 달리든 화장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급한 순간은 한 순간에 찾아온다.

이제 새로운 코스를 달릴 때, 화장실 체크는 필수다. 다행히 우리나라 공원 등의 화장실이 청소와 관리가 잘 되어있다. 그래서 급할 때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생각나는 또 다른 돌발 상황은 달리는데 인근 경치가 이쁠 때다. 예를 들면 4월 벚꽃 시즌에 아무도 없는 새벽에 벚꽃이 만개한 길을 달린다던지, 한 겨울 얼어붙은 호수에 밤새 눈이 와서 호수 표면에 하얗게 눈이 쌓인 경치를 보면 사진을 찍고 싶다. 그러면 한참 고민을 한다. 멈춰서 사진을 찍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목표한 대로 달리고 나중에 다시 와서 찍을 것인지? 이런 경우 보통은 지쳐서 그냥 집에 간다.


초반에는 일단 계속 달렸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냥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다시 달린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나에게는 하나의 훈장이다. 남들이 보기 힘든 경치를 보고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에 으쓱한 마음이 든다.


호수공원을 완주하는 속도에 집착할 때는 돌발 상황이 닥쳐도 가급적 참으며 달렸다. 하지만 기록보다는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기게 되면서,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잠시 멈춰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달린다. 그리고 멈췄다가 다시 달리면, 속도를 서서히 높여가니 다시 달리기가 한결 편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미련 맞게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달리기를 온전히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잠시 멈춰 일을 해결하고 다시 달리면 될 일이다. 이제 나에겐 달리는 것 자체가 즐거우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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