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74
지난 주말 새벽 달리기를 시작하고 평일 달리기로 두 번째 일산호수공원 달리기를 했다.
역시 '뇌'님은 나를 속일지라도 내 몸은 정직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체력이 떨어져 있었다. 천천히 달렸지만 4km가 지나니 어김없이 머릿속에서 '뇌'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 걷지 않을래?"
한없이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다. 어쩜 한 글자 한 글자에 설득력이 있는지, 자칫하면 넘어갈 뻔했다. 그렇다. '뇌'님이 찾아오는 그 타이밍이 내 체력의 최대치였다. 정점을 찍고 체력과 의지가 바닥을 향했다.
달리기를 쉰 지 4~5개월이 지났다. 그전까지만 해도 5km를 30분에 달려도 무리 없는 체력이었다. 오히려 더 달리곤 했다. 하지만 쉬는 동안 확실히 체력이 떨어졌다. 전에는 1km를 6분 10초~30초 페이스로 부담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오늘 재보니 1km를 평균 7분 11초 페이스로 달렸다. 평균 속도 8.3km/h. 아주 빨리 걷는 속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km가 지나니 힘들었다. 지난 주말 때도 4km가 지나면서 다리가 무거워졌다.
겨우 힘을 내서 '뇌'님의 달콤한 유혹을 한 귀로 흘려 들었다. 그래도 1바퀴 완주를 해도 다리가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허벅지가 살짝 무거운 정도? 냉정하게 평가하면 예전에 달리던 페이스였다면 3km 달리고 힘에 부치는 느낌이 왔을 것 같다. 그래서 내 달리기 체력(정신력 +체력) 점수는 60점이다. 쉬는 동안 달리기 체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싶으면서, 반대로 그래도 60%는 잘 유지했구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이렇게 나의 '뇌'님은 나를 또 속였다.
7월에 회사를 옮긴 이후 출근 시간이 한 시간 늦춰졌다. 그렇다고 이전 회사처럼 새벽부터 갈 피트니스도 없었다. 그래서 출근 전에 집에서 스트레칭과 스쿼트 같은 맨몸 운동을 했다. 지난 주말 달리고 난 후 주중에도 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이가 들어 새벽잠이 없어졌으니까, 굳이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지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주중 러닝을 하려고 마음을 먹어서일까?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깼다. 잠시 뒤척이나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다가 집을 나섰다.
아직 조심모드다. 발볼이 바닥에 가장 먼저 닿도록 미드풋으로 달려 발 뒤꿈치에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문뜩 오늘은 일산호수공원을 돌면서 무슨 소리를 듣게 될까 궁금해졌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귓가에 들려온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참 반가웠다. '오늘도 들을 수 있겠지?' 야외 달리기, 특히 일산호수공원 달리기의 좋은 점은 달리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 귀뚜라미 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자연의 소리 그리고 상쾌한 피톤치드향까지.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면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
새벽 5시. 아직도 어두운 밤이었다. 평일 달리기라 날이 개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평일 이른 아침이니 나 혼자 달리겠구나.' 일산호수공원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가로등불들이 빛났다. 그래도 가로등들이 공원을 밝게 밝혀줘 어두운 새벽에도 왠지 안심하고 달릴 수 있었다. 저 멀리 산책하는 사람들 한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주말은 반시계 방향으로 달렸으니, 오늘은 시계 방향으로 달리기로 했다. 공원 입구에 서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달렸다.
발볼부터 바닥에 닿는 미드풋 자세를 느끼며 천천히 달렸다. 천천히 달려 자세를 만들기가 수월했다. 확실히 지난주부터 더위가 한풀 꺾였다. 아침 기온이 18도로 공기가 선선했다. 달리기 딱 좋은 날씨다.
고양꽃 전시장을 지나 호수교 밑으로 내려가자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러너가 눈에 들어왔다 이 새벽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구나. 곧이어 작은 체구의 남성이 가까워졌다. '헉! 머리가 하얀 어르신이었다.' 저 연배에도 잘 뛰시는구나 싶으면서 문뜩 '내 생활 패턴이 어르신과 같은 생활 패턴이구나!' 싶었다.
곧이어 어김없이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굳이 표현하자면 '뚜루르르~ 뚜르르르르~' 오늘따라 유독 우렁차게 우는 것 같았다. 새 소리나 개구리 소리도 들릴법한데 아직 들려오지 않았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달렸다. 이제 막 1km 달린 것 같은데 벌써 심박수가 140 bpm이다. 슬슬 달렸는데 심박수가 빠르게 올라가서 놀라웠다. '지난 주말에도 이 정도 페이스로 심박이 올라갔던가?'
'뚜르르르~ 뚜르르르르~. 꽥! 꽥!' 새로운 울음소리가 나타났다. 개구리일까? 오리일까? 호수공원에서 오리를 본 적이 없으니 개구리 아닐까? 혹은 맹꽁이? 울음소리는 익숙한데 누가 우는 소리인 줄 모르겠다. '대체 넌 누구냐?'
'탁! 탁! 탁! 탁!' 규칙적인 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시 반대편 호수교를 지나 산책로를 향해 달렸다. 달린 시간은 16분 정도. 반대쪽에서 오는 러너들이 조금씩 많아졌다. 확실히 주말보다 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평일이라 나처럼 일찍 달리기를 마치고 바쁜 일상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겠지?' 왠지 안심이 됐다. 나만 유난스러운 게 아니었다. '휴우.'
재미난 점은 남성 러너들은 그래도 노란색, 빨간색 등 화려한 색깔의 상의를 입고 달렸다. 내 러닝복도 새 파란색이었다. 반면 여성 러너들이 검은색 반팔, 반바지에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달리는 것이었다. '아직 날도 어두운데 검은색을 입고 달리면 멀리서 잘 안 보여 괜히 위험하지 않을까?' 이 시간에는 검은색 운동복이 더 위험할 것 같았다. '나도 참 별 걱정을 다한다.'
그나마 천천히 달리는 것이 내심 찔렸는데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다른 러너들도 편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공격적으로 빠르게 달리는 러너는 없었다. 심박수는 153 bpm. 약 2.5km를 달렸다. 심박수가 생각보다 높지만 아직 달릴만했다. 2.9km를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코너를 따라 달리자, 저 멀리서 '꼬끼오!' 우렁찬 닭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오늘도 신나게 우는구나.' 참 한결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러너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평일 새벽에 같이 달리는 러너들이 있어 든든했다. 3.9km 표지판이 가까워지며 조금씩 다리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심박수는 160 bpm이 넘었다. '170 bpm을 넘어갈까?' 양 옆벅지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근육통이었다. 그리고 '뇌'님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무시하고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겼다. 몇 년 동안 달렸던 길인데, 오늘따라 멀게만 느껴졌다. '지쳐서일까? 천천히 달려서일까? 그래도 멈추면 안 된다.'
그렇게 꾹 참고 달려서 출발점에 돌아와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래도 한 바퀴 완주했다. 힘들었지만 개운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