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방문한 여수에서 오동도 방파제 길을 달리고 있다. 오동도 방파제길 초입구를 들어서고 있다.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위키 백과에 따르면 '아브라카다브라'는 마술사과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주문으로 우리말로는 '수리수리 마수리'와 같은 말이다. 이 말의 뜻은 '내가 말한 대로 될 지어다'다.
달리기를 시작한 초기에 달리는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서 내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마법의 주문을 고민한 적이 있다. 멈추거나 걷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주문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달리면서 '난 할 수 있다', '더 달릴 수 있어!', '좀 만 더 참아봐' 등 나를 격려하는 문구를 속으로 외쳤다. 그래도 힘든 것은 힘든 것이었다.
당시 줄리어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정복 전쟁 과정을 기록한 '갈리아 전기'를 읽었다. 이 책의 특이점은 카이사르가 본인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으로 전쟁 과정을 기록했다. 즉, 화자가 '나'가 아닌 '카이사르'였다. 이로써 역사적 사실을 좀 더 객관성이 있게 묘사했다는 평가다. 이에 착안해서 달리기에 적용해 보기도 했다. '견뚜기야! 넌 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방법도 큰 재미를 못 봤지만, 달리기에 대한 의지를 유지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을 찾아 끊임없이 고민했다.
정작 달리기의 괴로움과 지루함을 견딜 수 있었던 마법의 주문은 따로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초반에는 목표를 정해놓고 달렸다. 예를 들면, '눈앞에 보이는 저 앞 코너까지만 달리자'로 시작해, '1km만 달리자', '2km까지 달리자', '3km까지 달려보자'며 조금씩 거리를 늘려, 결국 '일산호수공원 1바퀴만 달리자'라고 목표에 따라 외는 주문을 조금씩 바꿨다. 이런 주문은 달리기 초기에 달리기의 지루함과 힘듦을 극복하기에 좋다. 당장의 목표가 눈앞에 있으니, 조금만 참으면 달성할 수 있으니 쉬고 싶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 '한 바퀴!'라는 주문을 외우며 일산호수공원 1바퀴를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단 그 목표한 거리를 달리고 나면 급격하게 심리적으로 의욕이 떨어졌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5km의 벽을 넘는 것이었다. 일산호수공원은 한 바퀴에 4.71km다. 한 바퀴에 300m만 더 달리면 5km다. 그런데 5km 달리기를 목표로 삼으니, 5km를 넘겨서 달리기가 어려웠다. 5km를 다 달리면 온몸에 긴장이 풀린 듯이 기운이 쪽 빠져나가서 더 달리기 어려웠다.
다행히 5km 벽을 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새로운 주문을 찾았다.
'아직 내 몸에는 남아도는 지방 에너지가 많다.', '그리고 내 몸은 아직 달릴 수 있다.'
2022년 3월, 일산의 모임필라테스 LS 원장님의 권유로 엉겁결에 박용우 박사의 '스위치온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LS 원장님이 다이어트를 원하는 지인들을 모아 박용우 박사의 '스위치온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따라 다 같이 다이어트를 실시했다.
인체의 에너지 원은 크게 탄수화물 섭취로 들어오는 포도당과 잉여 에너지로 지방에 쌓여있는 지방 에너지 두 가지가 있다. 포도당이 단기에 바로 쓸 수 있는 에너지라면, 지방 에너지는 오랜 시간 활동했을 때 쓰는 에너지다. 인류가 기근으로부터 자유로와 진 것은 인류의 역사의 가장 최근인 100년도 채 안된다. 그 정도로 기근은 인류와 함께 했다. 그렇기에 섭취한 에너지 외에도 지방에 에너지를 저장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은 진화했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되면서 인류는 기근을 정복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다. 우리의 몸은 포도당 에너지를 쓰고, 이어서 지방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데, 그 타이밍에 '당이 떨어졌다' 혹은 '허기진다'는 구실로 과자나 과일 등 에너지를 새롭게 섭취한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생활하면서 활동량은 크게 줄었다. 결국 지방 에너지는 쌓여가지만, 쓰지를 못해 비만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 에너지를 쓰는 우리의 몸의 기능이 멈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탄수화물 섭취를 줄여, 지방 에너지를 쓰는 기능을 '스위치 온'한다 해서 스위치온 다이어트다.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하며 하나 느낀 것이 있다.
한 끼 안 먹었다고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내 몸에는 사용하지 않은 지방 에너지가 충분히 쌓여있다. 아침에 공복으로 달리기를 해도, 아직 사용할 에너지가 많다고 믿는다. 이것이 5km의 벽을 넘게 해 준 마법의 주문이다.
내 몸에 소비할 에너지가 많으니 힘들다 또는 힘이 없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너지 원이 넘친다 생각하니 더 기운이 났다.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하면서 간헐적 단식으로 24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달려보기도 했다. 살짝 힘이 부치는 느낌이었지만 달릴만했다. 대체 얼마나 에너지는 많이 쌓아두었으면, 빈속에 달려도 아무렇지도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체내에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풍부하게(?)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
특히 달리다가 체력적으로 지쳤을 때마다 "좋았어! 지방이 쭉쭉 타고 있어!"라고 생각하면, 없던 힘이 솟았다.
지난 8월 방문한 여수에서 오동도 방파제 길을 달리고 있다. 오동도 방파제의 끝인 백색 등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또 다른 마법의 주문은 '내 몸은 아직 달릴 수 있어'라는 것이다. 달리다 보면 내 몸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다리가 움직일 때, 다리의 근육의 상태에 대해 아직 힘은 있는지, 아니면 힘이 없는지, 근육에 경직되어 가는지, 근육에 통증이 있는지 등을 스스로 느껴본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내 다리는 아직 더 달릴 수 있다.
단순히 말로 외는 것이 아닌 내 몸 상태를 스스로 판단해서 나를 격려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달리다가 지칠 때 '내 다리는 아직 달릴 힘이 있어!'라는 주문을 외운다. 그러면 오히려 다리에 더 힘이 난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마법의 주문을 또 하나 찾았다. 어느 정도 달리기가 몸에 익은 후, 가장 큰 벽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었다. 어렵게 5km의 벽을 넘었지만, 그 이상의 거리를 달리면서 새로운 주문이 필요했다.
올해 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달려보지 않았던 거리나 시간을 더 달리는 것을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고 표현했다. 이 구절을 읽고 무릎을 탁 치고 싶을 정도였다.
기존에 내가 달리던 거리를 넘어서는 것이 거대한 벽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를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고 생각하면, 보다 즐겁고 들뜬 마음으로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달려보지 않았던 10km를 넘어 달리면, 어떤 느낌, 어떤 기분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나의 몸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새삼 호기심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라톤 풀코스를 달릴 수 있지 않을까? 풀코스 마라톤이 어떤 느낌, 기분일지 궁금해지며, 달리기에 대한 의욕이 불끈 솟는다.
문뜩,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주인공 버즈 라이트 이어의 대사가 떠오른다.
"To Infinity, and Beyond!(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지난 8월 방문한 여수에서 오동도 방파제 길을 달리고 있다. 눈앞에 자산 위에 여수해상케이블카 자산 정류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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