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징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더웠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새벽 공기는 선선해서 달릴만했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새벽부터 푹푹 쪄, 집 밖을 나서자마자 달리기에 대한 의욕이 뚝 떨어졌다.
날이 덥다 보니 평소 달리던 거리의 2/3만 달려도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며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심지어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머리띠를 했음에도 얼굴에 땀범벅이다. 화장실에 들러 수돗물로 세수를 하고 땀을 닦아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날이 더운 것을 감안해 속도도 9km/h~10km/h 정도로 편하게 달렸다. 그랬는데도 지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걷자는 목소리가 아우성친다. 천천히 달려 근육이 피로감을 느끼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몸이 무겁다. 마치 물먹은 솜마냥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결국 3km~4km 달리고 나면 기진맥진해서 걷곤 했다. 불과 한 달 전인 6월만 해도 부담 없이 달리던 거리조차 다 달리기 버거워졌다.
더위 때문인 줄 알면서도, 체력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괜히 불안했다. 그런데 나는 힘들게 달리는데, 다른 러너들을 보면 힘차게 잘만 달린다. '저들이 더위에 강한 것일까? 아니면 내 정신력이나 체력이 약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는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았다.
연초에 세운 주 1회 10km 이상 달린다는 계획은 7월 들어 중단했다. 6월까지는 달리기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충만했다. 그랬는데 더위와 함께 의욕과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당황스러웠다. 달리기에 대한 의욕과 애정이 더위와는 반대로 차갑게 식었나 싶었다.
올여름은 말 그대로 컨디션 난조였다. 우선, 이래저래 다리에 무리가 많이 왔다. 6월에 갑자기 거리를 늘리면서 왼쪽 발목 접히는 구간에 통증이 생겨, 달리는 강도와 빈도를 크게 줄였다. 그리고 발바닥 족저근막염이 심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 첫발을 디딜 때 발바닥이 마치 촘촘한 지압판을 밟듯이 아팠다. 그래도 좀 걷다 보면 통증이 사라졌지만, 아침에 또는 자다 깨서 내딛는 그 첫걸음의 통증이 영 불편했다. 처음엔 오른발이었지만, 최근에는 왼발도 그렇다. 원인은 불 보듯 뻔했다. 무리한(?) 달리기.
그래서 발이 쉬는 날을 늘리기로 했다. 평일에 화수목을 달렸지만, 걷는 날 비중을 하루 더 늘려 월수금을 걸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다가 아예 추석 전주에는 아예 '휴식' 주간으로 삼고, 꾹 참고 일주일 내내 매일 30분씩 걸었다. 추석 때는 궂은 날씨로 반 강제적으로 달리기를 2일 쉬었다. 확실히 쉬니 발 상태가 괜찮아졌다. 역시 아플 땐 휴식이 약이다. 다만, 어느새 마음이 저강도 운동에 익숙해져 버렸다.
달리기를 쉬면 '그동안 쌓은 체력이 떨어질까 봐', '어렵게 만들어놓은 근육에 힘이 빠질까 봐', '기껏 힘들게 뺀 체중이 다시 늘까 봐' 걱정이 돼,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다. 그리고 다시 달리고 싶어 조급해졌다. 그래서 나에게 휴식 주간은 최대 5일이 한계인 것 같다. 4일이 지나면 다시 몸이 근질근질하다. 몸과 마음이 다시 달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괜히 다리 상태도 괜찮게 느껴져,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여름 내내 날은 무덥고 몸이 불편하니 달리고자 하는 의욕이 하향곡선을 그렸다. 게다가 내가 기본으로 정해놓은 5km 조차 제대로 완주를 못하니 스스로 그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떻게든 운동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꾸역꾸역 달리고 걸었다.
두 번째, 운동강도를 낮춰서일까? 아니면 몸이 현재 운동량에 적응돼서 일까? 올해 들어 기껏 어렵게 뺐던 체중이 다시 야금야금 늘어났다. 어느새 내가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75kg을 훌쩍 넘어 80kg을 아슬아슬하게 넘었다.
체중이 늘어서, 같은 거리를 달려도 더 힘들어졌다. 나를 괴롭히는 족저근막염의 원인도 늘어나는 체중도 한몫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체중이 늘어나면 그만큼 발에 충격도 강해지니까. 그러면 다시 체중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식단이 답이다. 다이어트로 원하는 체중까지 빼고 나서 예전 식습관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내 나이가 이미 신진대사가 느려지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운동량으로 버텨왔지만, 몸이 운동량에 적응해 버린 지금은 운동량을 더 늘리거나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 원복 되었던 식습관을 다시 스위치온 다이어트 모드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달리기에 대한 의욕을 유지했던 두 축인 건강과 체중이 불안정해지니, 달리기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다. 여름 내내 전보다 못한 체력, 거리, 속도에 스스로 실망했고, 그럴수록 달리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하다고 운동을 쉬기는 싫었다. 이미 달리기를 통해 운동의 효과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다른 운동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도 했다. 발에 무리가 없는 수영이나 자전거를 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추석 기간에 자전거를 빌려 여자 친구와 일산호수공원을 돌았다. 문뜩, 달리기에서 자전거로 바꿔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놓기가 싫었다. 발이 지면에 닿는 느낌, 지면을 힘차게 박차는 느낌, 심장이 생동감 있게 뛰는 기분, 그리고 자전거와는 달리 어느 길이든 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내가 자전거를 제대로 타보지 않아서 모를 수 있지만, 달리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달리기에 애착이 많이 쌓였다.
다행히 추석이 지나 주말에 비가 오고 나서 아침 기온이 갑자기 쌀쌀해졌다. 아침 기온이 16도까지 떨어졌다. 문밖을 나서니 시원한 것이 아니라 살짝 추웠다. 그런데 더 달리기 편해졌다.
호수공원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새파랗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호수공원 곳곳에 가을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다소 늦춰진 일출 시간,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 울긋 불긋해지는 나뭇잎들, 자전거 도로 옆 한편에 가득 핀 코스모스, 그리고 평소보다 많은 러너들이 가을을 실감 나게 만들었다. 역시나 가을은 달리기의 계절인가 보다. 새벽 시간에 달리는 러너들이 부쩍 늘었다.
일산호수공원 곳곳에 핀 꽃들이 가을을 알리고 있다.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오랜만에 내 페이스대로 호수공원을 달렸다. 그리고 내가 설정해 놓은 기본 거리도 제대로 달렸다. 확실히 날이 선선해지니 체력 보존이 더 수월해졌다. 여름 내내 가슴속에 막힌 체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체력이 걱정하던 만큼 망가지지는 않았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달리기에 대한 의욕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제 가을이다. 여름보다 달리기 좋은 계절이다. 이번 가을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 아닌 하늘은 높고 달리기 좋은 계절이 될 것 같다. 다시 달리는 것이 즐거워졌다.
그래서 이번 가을은 유난히 반갑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