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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빈 Dec 13. 2024

나를 추앙해요,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알싸한' 코미디 하이틴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몇 년 전, 한 드라마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대사가 있었다. 


"나를 추앙해요".

이 드라마가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추앙'을 사전에서 찾아봤다고 할 정도로, 사실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이기도 하다. 살면서 추앙이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몇 번이나 되겠는가.


그렇지만 사용 빈도가 낮은 이 단어가 준 울림은 컸다. 이 드라마를 전부 보지 않은 사람도, 그 대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추앙해요.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 깊이, 누군가에게 절대적 존중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단순히 눈이 즐거운 하이틴 영화를 넘어서 어느덧 21세기의 고전(classic)으로 일컬어지는 건, 아마 이 '추앙받고 싶음'에 대한 욕망을 살벌하도록 잘 묘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퀸카 추구미, 나르시시즘이 되기까지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하이틴 영화답게 몇몇 규칙을 따라간다. 하이틴 영화라면 따르는 전형적인 법칙들이 있다. 여주인공은 평범하다고 하지만 사실 굉장히 예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학교에서 인기 있는 존재가 된다. 남주는 그녀에게 처음부터 반하지만 여주는 이를 알지 못한다. (주인공이 평범한 옷을 버리고 갑자기 트렌디한 팝송과 함께 반짝반짝한 옷을 입으며 나타나는 '여자의 변신은 무죄'같은 씬은 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전통적인 하이틴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가 전형적인 하이틴 영화의 법칙을 어느 정도 따르긴 하지만, 전형적인 틴 무비로 느껴지지 않고 곱씹어보게 되는 이유는, 위 법칙들을 모두 나르시시즘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홈스쿨링을 받아왔던 '케이디'는 처음으로 일반 고등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다. 케이디는 등교한 첫 날 학교투어를 시켜주겠다는 데미안, 제니스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는 파벌(clique)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다 케이디는 여왕벌(Queen Bee)로 군림하는 레지나 조지를 만나게 된다. 레지나의 무리와 같이 다니며 케이디는 얼떨결에 '퀸카'가 되어 있다. 그러던 와중 짝사랑을 시작하면서 케이디는 서서히 자신을 잃어간다.

 


이미 남주는 그녀에게 반해 있었음에도 케이디는 자신이 레지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레지나보다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한다.


거기다 케이디는 다른 학생들의 추앙과 우러러보는 시선에도 취하기 시작한다. 친구와 우정을 만들어가는 게 아닌, 교내의 사회적 지위와 인기를 누리는 것에 중독된 케이디. 케이디는 인기 외에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걸 잊게 된다.



점점 레지나보다 인기가 많아지고 싶은 케이디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혐오하던 레지나의 모습처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이는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이에 타인을 이용하는 것. 타인과의 관계는 자기 확인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Burn Book"이다. 전교생의 비밀과 서로 간의 뒷담화를 적어놓은 노트. 케이디에게 열이 받은 레지나가 그 Burn Book을 공개해버리며 학생들간엔 비밀이 없어지게 된다. Burn Book을 통해 알게 된 건, 사실 케이디와 레지나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서로를 시기질투해왔고 - 그 이면에는 '추앙'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추앙받고 싶어한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 속 캐릭터들은 어느 한 캐릭터도 온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영화의 영어 원제는 'Mean Girls'로, 여주를 포함해서 여주의 친구들, 여주의 친구인 척 하는 친구들(frenemy) 모두 다 사실은 서로를 속이고, 속임 당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학폭'을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추앙'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생들의 파벌싸움이라는 소재로 이를 비꼬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누구나 추앙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모든 인물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진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게 제니스라는 캐릭터다.


얼핏 보면 제니스는 전형적인 'mean girl'은 아니다. 애초에 제니스는 영화 초반에서 케이디에게 레지나 조지와 '퀸카들'을 'mean girls'로 묘사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제니스 또한 'mean girl'로 간주되는 이유는 제니스 역시 레지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제니스는 파벌에서도, 외모와 태도에서도 레지나와는 확연히 다르다. 제니스는 내심 이에 대한 불만과 자격지심이 있고 파벌싸움에서 상위에 있는 레지나 무리를 속으로는 부러워한다. 

그래서 제니스는 케이디가 레지나 무리와 점차 가까워지자 케이디에게 '스파이'가 되어 레지나를 골탕먹이라고 제안한다. 이 역시 결국 타인을 조종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행위이지만, 우리가 제니스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감정을 한 번쯤 느껴봤기 때문이다. 





인생은 나와 맞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이다


내가 질투하고 있는 대상을 보면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사실 제니스가 레지나를 미워한 이유는 단순히 레지나가 'bitch'여서가 아니라 내심 선망하고 있는 그녀와 친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추앙하고 싶은 욕망을 본인에게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수많은 밈이 탄생했다. 가장 유명한 밈은 레지나가 하는 것마다, 아주 사소하고 이상한 것조차 전부 따라하는 아이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람에게는 추앙받는 욕망과 함께 추앙하고 싶은 욕망 또한 있는 것이다. 레지나의 승인, 레지나가 던지는 칭찬 하나에 내 하루가 환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그리고 아이들이 따라하는 교내 아이돌은 곧 케이디가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에 속하고 싶어한다. 이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승인해주면, 그 사람이나 그룹이 나를 받아들였다는 신호로 느껴져 소속감을 얻는다. 누군가가 나를 승인해주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긍정적이라는 표시다. 이는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에게 승인받는 것이 주는 '안정감'은 자기계발 시장을 탄생시켰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이며 달콤하다. 수많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류의 자기계발 서적, 유튜브 채널들이 그 증거다. 내가 좋은 삶을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좋은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은 나를 더없이 조급하게 한다.




거울 자아 이론 (Looking-Glass Self)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한다. 누군가가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승인하면, 나도 스스로를 더 긍정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과 함께해야 할 때, 나를 언제든지 '퀸카'로 봐주는 사람과 함께할 때 진정으로 빛난다.




나를 추앙해줘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낄 때 자존감(자기 존중감, self-esteem)을 확립하게 된다. 이는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


이를 획득하기 위해, 사람은 본인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는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욕망이 생긴다. 그래서 '높이 받들어지는 것'은, 추앙받는 것은 꿈같은 순간일 수 있다.


자존감을 획득하기 위함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나의 자존감을 결국 타인에게 맡기는 행위이다. 추앙으로 만들어진 자존감은 타인이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마음을 순순히 스스로에게 먼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이기도 하다. 타인과 나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자존심은 타인이 채워주지 않을 때 위태롭지만, 스스로와의 관계가 - 내가 나와 친밀하다면 자존감은 무너질 일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타인에게 취약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불완전함과 외로움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내면의 약점을 드러내고, 그것을 자기 수용(self-acceptance)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진정한 내면의 강함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타인의 취약성 또한 존중할 수 있다. 단순히 타인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취약성을 드러내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선 하이틴 영화의 법칙처럼, 주인공은 모두와 화해하고 각자의 해피엔딩을 맞는다. 레지나는 공격적인 에너지를 운동하는 것에 쏟아 교내 운동선수가 되고, 케이디는 좋아하는 수학에 몰두해 '너드들'과 함께 수학경시대회에 나가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수학 동아리 잠바를 입고 남주와 키스하는 케이디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남는 법은 고등학교에서 살아남는 것과 같다. 


1. 이미 존재하는 무리 중 나를 환영하는 무리에 들어간다.

2. 없다면 내가 직접 나와 맞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무리를 만든다. 



나는 누구를 질투하고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추앙받고픈 욕망이 지나쳐 나르시시즘으로 변모하진 않았는가? 


솔직해도 된다. 오히려 나의 못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인생은, 내가 뭘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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