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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튀는 사람'이라면, 영화 인크레더블

나의 초능력을 숨기는 것이 지친다면

by 채수빈


"너의 정체성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야. 그러니 이를 지켜야 해."


영화 <인크레더블>에서 엘라스티걸이 자신의 두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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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은 슈퍼히어로 가족이 초능력을 모아 함께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어벤져스>급 협공 스토리에 가족역학까지 더해진, 픽사 최고의 액션 영화다. 이 오락성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데, 역시 픽사다. 묵직한 질문 또한 함께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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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은 슈퍼히어로들을 놀랍게도 소수자의 역할에 놓으며, 나의 정체성을 어디까지 양보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안전을 너무 우선시한 나머지 은연중 자녀의 개성을 사회와 함께 억압하진 않았는지 묻고 있다.




야, 나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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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서, 파 가족은 초능력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히어로들이 세상을 구하는 과정에서 무고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하며, '네가 뭔데' 우리를 구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늘어났기 때문. 세상은 히어로를 더 이상 반기지 않는다. 특히 아빠 밥이 일하는 보험회사, 아들 대시가 다니는 학교로 대변되는 관료주의는 파 가족에게 '정상인'이 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파 가족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정확히는 자신의 가족의 안전을 위해 자기를 부정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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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인크레더블'이었던 밥은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이 곧 그의 삶의 의미였기에 이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아이들 바이올렛, 대시도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바이올렛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쓰게 된다. 초능력이 있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길 거라고 확신하고,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반대로 대시는 자신의 능력을 왜 숨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넘치는 에너지를 원하는 만큼 발산하지 못하자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남편처럼 영웅 '엘라스티걸'이었던 헬렌은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보살피는 엄마 역할을 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볼 기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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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밥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결국 비밀스럽게 영웅 활동을 이어간다. 밥이 히어로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이면서 파 가족 모두가 '원치 않게' 히어로가 되는 여정이 펼쳐진다. 사회에서 강제한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당당해지기 시작하며 파 가족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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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나를 수용해야 당당해진다



학창시절, 나는 영어 공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가장 반갑지 않은 과목이 바로 영어였다. 지문을 무작정 외우게만 하는 이상한 암기시험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제일 고역은 영어 교과서를 읽어야 할 때였다.


다른 게 아니라, 영어 발음을 굴릴 때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발음을 굴리는 순간 "오오~"하면서 아이들과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졌고, 어떤 아이들은 잘난 척한다며 귓속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콩글리쉬' 발음을 어색하게 하자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영어는 내 '초능력'이었다. 그런데 이 초능력을 스스로 약하게 만드는 기분이 무척 이상했다.


어느날부터는 내 발음에 대해 부끄러워했던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의식하는 게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마음 편하게 지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영어 시간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내가 너무 튀는 사람이었던 경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기에 그것은 나의 개성이고, 정체성이고,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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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꿈을 갖기 어려워하는 이유


그래서 <인크레더블>은 아이들의 독특함과 재능을 장려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꿈을 가지라고 하지만, 막상 자녀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면 "현실적이지 않다"며 그 꿈을 억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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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헬렌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안전을 신경쓰느라 아이들에게 초능력을 숨기는 법부터 알려준 나머지, 영화 초반에서 바이올렛은 겁을 먹고 정작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능력을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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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규율, 책임감, 성실함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둔다. 그래서 정체성을 존중하고, 개성을 지켜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에는 소홀하다.


그렇지만 정체성이란, '초능력'처럼, 우리의 힘의 원천이다.


정체성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나라는 사람을 유지하고, 지켜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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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Cinema Therapy

자기 부정에서 자기 확신을 가지기 위해 나에게 해볼 질문들


1. 내가 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어떤 면을 감추고 싶은지, 왜 그 부분을 숨기려고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

- 자기 부정은 종종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 사회적 비난, 실패,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이 실제로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기


2.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내가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기

- 다른 사람의 기대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내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기


3. 내가 나의 '초능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나의 특별한 능력, 즉 나만의 장점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기

- 그리고, 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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