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으로 만들어지는 진정한 관계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나는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한 마디만 해줄 수 있다면, “네 자신을 많이 사랑해줘”라고 하고 싶다. 아, 하나를 덧붙이겠다. “네 자신을 ‘지금’ 많이 사랑해줘.”
고등학생 시절은 자신이 ’미생’임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는 때 같다. 유일한 사회처럼 보이는 학교를 드디어 졸업할 시점이 가까워져 온다. 그런데 앞으로의 선택을 잘 할 수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공부도, 인간관계도 너무나 빠르게만 느껴진다.
이 느낌을 잘 담은 것이 영화의 제목인 ‘월플라워’다. 속어로 ‘파티에서 벽에만 붙어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주인공 찰리가 바로 이 월플라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신입생 찰리. 파티장에서 그의 앞에 (ENFP가 분명한) 졸업반 학생 패트릭과 그의 이복동생 샘이 나타난다. 왠지 자신을 잘 받아줄 것 같은 패트릭에게 찰리는 용기를 내어 겨우겨우 다가간다. 그러자 패트릭과 샘은 환호하며 함께 빙글빙글 춤을 춘다. 찰리는 처음으로 안전함을 느끼고, 소속감을 느낀다.
그러나 인생 선배 같았던 그들도 각자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공허함 속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샘, 유쾌하지만 내면의 아픔을 숨기는 패트릭, 마찬가지로 허세로 슬픔을 감추려는 메리 엘리자베스. 찰리가 그들을 필요로 했던 것만큼이나 그들 역시 찰리를 필요로 했다.
특히 찰리는 샘에게 첫눈에 반한 때부터 내내 그녀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샘이 만나는 남자들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는 사람과 만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찰리는 선생님에게 묻는다.
“Why do people pick the wrong people to date?”
"선생님, 왜 괜찮은 사람들이 못난 사람과 사귀는 걸까요?"
“We accept the love we think we deserve.”
"사람은 자기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만큼 사랑받기 마련이란다."
샘은 끊임없이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과거의 상처 때문이었음이 점차 드러난다. 샘도 이것을 안다.
샘은 찰리에게 말한다.
Sam: Well, what did you want?
샘: 그래서, 넌 뭘 원하는데?
Charlie: I just want you to be happy.
찰리: 난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Sam: Don't you get it, Charlie? I can't feel that. It's really sweet and everything, but you can't just sit there and put everybody's lives ahead of yours and think that counts as love. I don't want to be somebody's crush. I want people to like the real me.
샘: 찰리, 아직도 모르겠어? 난 그걸 느낄 수가 없어. 네 말은 정말 다정하고 멋지지만, 그냥 거기 앉아서 모든 사람들의 삶을 네 것보다 먼저 두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난 누군가의 짝사랑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이 진짜 나를 좋아해주길 원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뿐만 아니라, 그만큼 나 자신을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자존감만큼 우리에게 사랑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취약성은 우리의 약점이 아닌, 진정한 연결과 사랑의 본질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오히려 취약성이 증명해준다.
찰리의 트라우마 역시 샘과 마찬가지로,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찰리는 친한 친구의 자살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찰리는 잠재웠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다시 큰 고통을 겪지만, 처음으로 찰리는 그 고통을 자신에게 인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긍정하며, 무사히 또 하나의 터널을 지나간다.
관계에서 얻는 상처는 너무나 아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는데 거절당하는 아픔, 혹은 믿었는데 나를 이용하는 아픔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심지어 트라우마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나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다가가야 한다. 파티에서 용기내어 춤을 청한 찰리처럼. 그러다 보면, 나의 무리를 만날 수 있다.
찰리에게, 그리고 처음으로 불완전의 진통을 겪는 나에게 보내는 말.
“네 자신을 지금 많이 사랑해줘.”
: 사랑에는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나 자신을 내가 친구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보자. 나의 취약성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