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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Jul 03. 2024

24살의 도쿄 워킹 홀리데이 3

[외국인 근로자 보돌]

 라멘집 런치타임의 에이스로 다시 태어난 나. 예전의 내가 아니야.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쇼. 주 5일 런치 타임과 주말 저녁 타임에 가끔 일을 하기는 했지만, 생활비를 넉넉하게 쓰기에는 근무 시간이 짧았다. “흠~ 오후에 5시간 정도, 주 2회만 더 일하면 좋겠는데”라고 생각이 들어, 다음의 유학생 카페에서 하라주쿠에 있는 편의점 알바를 구하게 되었다. 다시 면접 보고 전화하기 귀찮아서 편하게 가기로. 하라주쿠에서 시부야로 넘어가는 메이지도오리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이 지역은 땅값이 비싸, 편의점이 많지가 않아서, 장사가 잘 되는 지점이었다. 얼굴색이 파리한 일본인 오너 점장과 20%의 일본인, 80%의 한국인 유학생 알바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은 바쁘고 시급은 낮아서 유학생들도 평균 1개월만 일하고 다들 그만두는 곳이었다. 나도 2개월 정도만 일했다.      


 여름에 일을 했는데, 비 오는 날이면 우산 파느라고 영혼 가출. 우산을 사면, 봉지를 뜯어서, 택도 가위로 잘라서 손님한테 전해 줘야 했다. 바빠 죽겠는데 우산 사는 사람 줄줄이 서있으면 안절부절. 날이 더운 날에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기계에서 직접 아이스크림을 뽑아서 줘야 했다. 마음이 급해서, 모양을 잘못 잡으면, 밑단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망한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면 뒤에서 째려보던 점장의 눈빛에 뒤통수 뚫리는 줄.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바쁘다 바빠. 소금 장수,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야 뭐야.      


 그래도, 한국인 언니들과 맘껏 수다 떨 수 있어서 좋았다. 같은 타임에 있는 언니들과 ‘일본엔 왜 왔니?부터, 점장 뒷다마에 (메인 이벤트), 편의점 신제품 과자 뭐가 맛있는지, 이따 휴식시간에 컵라면 뭐 먹을래?’ 등등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 5시~10시 까시 시프트여서 중간에 20분 정도 휴식시간을 주면 샌드위치나, 컵라면 하나 후루룩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보다 3살 많은 연이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같이 시프트에 들어간 건, 5-6번 밖에 없었는데, 첫날부터 쿵작이 맞았던 우리들. 다른 언니까지 셋이 친해서, 다카다노바바에 있던 그 언니네 자취집 가서 떡볶이도 해 먹고 놀았다. 떡볶이에 단호박을 넣어서 해 줬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단호박과 떡볶이.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조합.      


 편의점 튀김 음식들은 몇 시간 지나면 폐기를 해야 했는데, 인기 템인 카라아게 꼬치가 남은 날은 운수 좋은 날. 연이 언니랑 한 꼬치씩 들고, JR 하라주쿠역 향해 걸어가던 기억이 아련하다. 언니랑은, 지금까지도 인연이 이어져서, 일본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딸이 고등학교 가는 것까지 보는 사이가 되었다. 도쿄 살 때는 한 달에 한번씩 만나서, 런치 타임을 즐겼는데 이제 거리가 멀어져서 아쉽다. 룸메 언니와도 아직까지 연락하고, 연이 언니도 그렇고, 주변에 좋은 언니들이 많아서 고맙다. 아는 오빠는 없지만, 아는 언니들은 많은 나. 언니 콜렉터. 언니 마니아. 언니 좋아라.      


 이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저지른 최대 실수담. 편의점에서 택배도 보낼 수 있었는데, 인수인계 해주던 분이, “최상.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야마나시현과, 야마가타현을 절대 헛갈려서는 안 돼. 짐을 잘못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야마나시, 야마가타, 오케이!! 절대 안 헛갈리겠어요. 한국으로 치면, 전라도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광주시를 착각하는 경우와 비슷하달까. 어느 날 저녁, 손님이 골프백을 골프장으로 미리 보낸다고 택배를 맡겼다. 손님은 야마나시로 보낸다고 했는데, 내가 시스템에서 야마가타로 입력을 해 버린 것. 일하는 날이 아닌데, 갑자기 점장한테서 전화가 와서 “최상!! 골프채를 야마가타로 보내면 어떻게 해!!”라고 날벼락을 맞았다. 다행히, 손님이 날짜에 여유를 두고 짐을 보냈었기에, 야마나시로 골프백을 다시 보낼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야마가타, 야마나시만 생각하면 골프백 택배사건이 생각난다. 한때는 편의점에서도 빠른 손으로 인정을 받았었지만, 이 골프백 사건 이후로 점장의 신뢰를 잃고, 명성이 추락하였다. 친했던 언니들도 유학생 카페 소문대로 1~2개월 지나니 다 그만 두기에, 나도 그만뒀다. 런치 타임 라멘 가게에서도 여러 웃픈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정이 들었는데, 이 편의점은 아쉬움이 1도 없었다. 사람을 도구로만 썼다고나 할까. 연이 언니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갔던 것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해 본다.    

  

 동네 불고기 가게에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습관적으로 뒷짐을 지고. 잠깐 홀을 걸었더니, “최상, 선생님도 아니고 뒷짐을 지고 숙제 검사하는 사람처럼 걸어서는 안 돼요.”라고 문자를 받았던 일 > 하루만 가고 안 갔다. 가부키쵸(신주쿠의 환락가)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편의점 면접을 갔다가, 계산대에 있는 직원들의 금발 머리에 놀라서 당황했던 일 > 내일부터 오랬는데, 동네도, 직원도, 손님도 무서워서 안 갔다.      


 04년 3월 29일에 시작해서 11월 8일에 끝났던 나의 첫 워킹 홀리데이. 서울에서 천방지축으로 살다가, 사회생활의 예고편을 보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 같은 집 안경군을 만나 짝사랑도 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돈벌이의 고단함도 체험했지. 05년에 4학년으로 복학해서는 학교를 매우 열심히 다녔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젊었을 때 일 년 정도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엄마가 보내준 EMS 소포를 뜯으면서, 눈물의 김치볶음밥을 먹어봐야 어른이 된다 이 말씀. 그리고, 닥치면 뭐든지 다 하게 되더라. 스물에도 해 냈는데, 마흔에는 왜 못 해. 다 할 수 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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