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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Jul 08. 2024

시드니에서의 3개월 1

외국인 근로자 보돌

11년에 일본에서 3.11 지진이 나고,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3.11 지진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해서,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던 지진이라고 하면 다들 “아~” 라고 하더라. 한 달 정도 한국에 있다가, 4월에 일본에 다시 들어가서 두 달 동안 회사 인수인계하고 집 정리하고 6월에 한국으로 완전 귀국을 했다. 지진이 났던 날에, 도쿄에 전철이 다 멈춰서 회사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다들 바닥에 외투를 깔고 누워서 새우잠을 잤었다. 밤새 등으로 여진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만약 이렇게 죽으면 뭐가 제일 후회될까’ 도쿄 땅이 갈라진 것도 아니고, 지진으로 죽을 일은 없었지만, 그 날의 지진은 겪어 본 사람만 공감 갈 충격이었다. ‘역시 영미권가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에 귀국해서는 할 일 없이 백수생활을 즐기다가 (이때도 엄마가 운전면허 따라고 잔소리 했는데, 따 놓을 것을. 금쪽이 같은 나.)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그 해 12월에 시드니로 떠났다. 한 일주일 정도는 더 록스 쪽의 호스텔을 예약해서 지냈다. 2-3일은 빵만 먹다가, 하루는 숙소 옆 슈퍼에서 육개장 사발면이 팔길래 사와서, 라운지에서 끓여먹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한국인은 국물이여!! 엄친 딸인 연진언니가 결혼해서 시드니에 살고 있었다. 엄친께서 엄친 따님께 미리 연락을 해 주셔서, 시내 백화점에서 만났다. 언니가 시내의 한인슈퍼도 알려주고 맛있는 점심도 사주고, 앞으로 자주 연락하라면서 등을 두드려주고 떠났다. 혼자 호스텔에서 외로웠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니 마음이 든든해 졌다. 일본도 해외였지만, 호주는 기분이 또 다르더라. 그 뒤로도 언니는 와규로 끓였다는 미역국, 소고기 고추장 등등. 반찬을 만들어 줬었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습니다.       


 국딩 시절, 연진언니가 아줌마랑 우리 집 놀러왔을 때 ‘머랭 쿠키’를 사 왔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쿠키였는데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음을 감안) 언니가 상냥하게 “이건 계란 흰자로 만든 쿠키야.” 라고 설명 해 줬다. 슈퍼에서 버터링 쿠키나 먹어봤지, 이런 공기 같이 신기한 쿠키가 다 있나. 어려서 몇 번 만난 적은 없지만, 나에게 언니는 이런 세련된 이미지. 시드니에서 봤을 때도, 언니가 당시 유행하던 지방시 판도라 백을 들고 나왔었다. 그리고, 한 4년 뒤에 도쿄에 언니가 놀러 왔을 때 이틀 동안 가이드를 했는데, 커피 마시면서 “언니는 나한테 머랭 쿠키랑, 지방시 판도라야”라고 했더니, 언니가 메고 온 에코백을 흔들면서 “보돌아. 지금 애가 둘이 되니까 이 가방이 최고다. 멋 부리는 것도 다 한때다. 멋쟁이로 봐 줬다니 고맙네.” 하면서 웃었다. 언니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건 비싼 가방도 무엇도 아닌, 상냥하고 현실에 충실한 모습이었구나.      


 하루는 아는 동생의 사촌오빠가 시드니 시내에서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서 그 집에 견학을 갔다. 그리고, 집을 보여준 동생이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혜정이. 4인 1실과 거실 한쪽을 막아 사용하는 1인실의 구조였는데, 혜정이는 1인실, 나는 4인실의 한 침대를 계약해서 지냈다. 처음 만나서부터 마음이 통한 우리는, 매일 밤, 귀가 후 거실에서 맥심 커피를 타 마시며 우정을 쌓았다. 맛과 멋을 좋아하는 우리들. 서울에서도 둘만의 미식 동호회를 운영하며 재밌게 지내고 있다. ‘와. 나도 이제 시드니에서 밥 먹을 친구 생겼다.’ 집 근처 울월스 슈퍼에 장 보러 갔다가, 글로리아 진스 가서 커피 마시던 저녁 시간들이 생각난다. 둘 다 해피 쉐프의 해물 국수랑 락사를 좋아해서 자주 먹으러 갔었지. 월드타워 지하 콜스 슈퍼 갔다가, 아시안 슈퍼 갔다가, 헝그리 잭 가서 50센트 소프트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걸어오던 길. 12월 31일 불꽃놀이를 다리 위에서 같이 보던 일. 시드니에서는 재밌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 했는데 적다보니까, 잘 놀고 다녔구나.    

  

 숙소는 해결이 되었고, 이제 일을 구해야지. 영어가 현지 가게에서 일 할 정도는 안 되었으니, 호주나라라는 한인 사이트에서 공고를 찾았다. 12년에 내가 있을 때는, 스시 가게들은 거의 한국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럴라나? 테이크아웃 스시를 판매하는 가게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첫 날은 본점에서 롤 마는 법을 배우고,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도시락을 혼자 만들어야 했는데, 캘리포니안 롤 말아둔 건 자르다가 옆구리 팡팡 터지고, 미치고 팔짝 뛰면서 마무리를 했다. 그래도, 삼일정도 지나니 익숙해 져서 군함 말이 스시에 옥수수 샐러드도 찹찹 얹고, 누드 김밥도 잘 말게 되었다. 아보카도가 안 으깨지고, 썰었을 때 연어의 단면이 예쁘게 보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재료들이 물렁물렁 해서 단단하게 말기 위해 노력했다.      


 서양인들은 김의 식감을 싫어해서 누드 김밥으로 마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김이 보이냐 마냐 차이지 맛은 같은 것 아닌가? 하기사, 밥이 먼저 씹히면 식감이 부드럽기는 하다. 스시 도시락을 사면서 에다마메(풋콩)를 샐러드처럼 많이 사가던 것도 특이했다. 일본에서는 술안주로 잘 먹었는데, 여기는 이렇게 먹는구나. 미역줄기 초절임도 많이 사갔다. 미역줄기는 참기름에 달달 볶은 것이 제 맛인데!! 키가 190은 될 것 같은 남성이 미니 스시롤 2개에 에다마메 한 팩 사가는 것을 보며, ‘양인들은 에너지 효율이 정말 좋구만.’ 라고 중얼거렸다. 저거 먹고 배 안고프나. 이 가게에서는 한 달 정도 일했다. 왜냐면, 로즈 베이라는 부촌 동네에 시급이 1.5배에 팁 까지 가져 갈 수 있는 일본 레스토랑을 찾게 되었기 때문.      


 갈 때는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가고, 가게 영업이 끝날 때는 본다이정션까지 매니저가 태워주면, 거기서 열차를 타고 왔다. 시내에서만 뱅글뱅글 돌다가, 일 하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교외로 나가니 기분 전환이 되었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테이블 서빙을 하게 되었다. 캐쥬얼 한 분위기의 일식집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가볍게 저녁 먹으러 오는 느낌이었다. 올 때 마다 팁이 후하던 중년의 부부와 (아주머니 검정 숏 헤어에 안경 끼고 계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남), 미드 여주인공 같이 생긴 20대 금발머리 단골손님이 있었다. 주문 할 때 말투도 얼마나 스윗 한지. 내가 남자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여성이었다. 아. 팁도 잘 줬다. 그래서, 좋게 기억하나봐. 희희. ‘세상엔 저렇게 예쁘게 생겨서, 시드니 부촌에서 살면서, 잘생긴 남친이랑 데이트 하는 인생도 있구나.’ 질투는 아니고,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 순수하게 부러웠던 감정. 알바 생들은 일본인이 대다수였고, 한국인들은 두 명 정도. 케이코라는 이름의 아오모리에서 온 친구랑 친해져서, 한가한 시간에 수다를 자주 떨었다. 키친에서 일하는 키이군이라고 재일교포 3세 남자애랑 셋이서 친했다. 재일교포라고 해도, 일본에서 자라서 한국어는 거의 못했지만, 그래도 정이 갔다. 케이코도, 이름이 같아서 도쿄의 우리 케이코 생각나고.      


 여기는 알바 시작 전에 식사를 주는 것이 아니고, 퇴근 할 때 도시락을 만들어서 포장 해 줬다. 키친 마감 전에 원하는 메뉴들과 밥을 테이크아웃 통에 포장 해 주면, 다음 날 점심으로 먹었다. 보통 카라아게, 돈까스 뭐 이런 것에 샐러드 종류. 포장하면서, 그날 팁 박스에 들어있는 금액을 인원수대로 나눠서 가졌다. 가게 문 닫고 10분 정도 테이블에 앉아서 수다 떨면서 팁 정리하고 오늘은 도시락 반찬 뭐냐고 키이군을 재촉하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해당 일과 인원수에 따라서 1인당 나눠가지는 팁 금액이 달라져서, 나름 스릴 있던 시간. 테이크아웃 스시 집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하루는, 파칭코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답게, 키이군과 몇몇이 시드니 ‘더 스타 카지노’에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봤다. 가면 음료수도 공짜고, 재미로 20-30달러만 하면 된다고. 카지노는 예전에 마카오에서 한 번 가본 것이 다라서, 콜콜 하고 따라 나섰다. 가게 닫고 갔으니, 밤 11시쯤 도착했나. 50달러가 130달러가 됐다가, 90달러로 내려앉았을 때 우선 스톱. 두 시간 정도 지나고, 키이군은 400달러 땄다면서 이미 현금화 완료. 로즈베이 동료 팀은 택시타고 다 같이 간다고 먼저 가버렸다. 어차피, 시티에 사는 건 나밖에 없어서, 남은 90달러로 룰렛 게임에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10분만에 다 날리고, 혼자 택시타고 집에 왔다. 택시비 15달러가 뼈아팠던 밤. 130달러 땄을 때 얌전히 현금으로 바꿀 것을 그랬다. 카지노는 한 번 경험 한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조신하게 살았다. 역시 나는 자그마한 심장을 가진 여자. 승부수는 나랑 맞지 않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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