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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Jul 10. 2024

시드니에서의 3개월 2

외국인 근로자 보돌 

외국에서 생활을 해 봤으니, 새로운 나라에서 적응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마다 궁합이라는 것이 있는지, 시드니에서는 마음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때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한창 결혼하는 준비하는 나이여서, 카톡으로 스드메, 신혼집 이야기들을 했다. ‘애들은 인생의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데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워홀 막차였기에, 내가 너무 늦게 왔나 싶었다. 비슷한 나이에 내 친구의 친구는 오자마자 쉐어 하우스에서 남친을 만나서, 결혼 한 후 지금까지 호주에 살고 있다고 한다. 역시, 나라와 궁합의 문제야. 자연 풍경보다는 서울이나 도쿄 같은 메가시티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 me. 자연은 대도시의 공원으로 충분했음을 알게 된 me.       


 아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교회라도 나가볼까 하다가, 불교 집안에서 자란 터라 크게 내키지도 않고...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우선 시드니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my multi pass 라는 교통권을 구입해서, 맨리 비치, 셸리 비치, 본다이 비치, 블루마운틴 등등을 돌아봤다. 페리를 타고 시티로 돌아올 때 서큘러키의 선착장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집에 돌아온 기분. 구시렁거리면서도 정이 들기는 들었나보지?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는 낮에 해변가 한 바퀴 돌고, 혜정이랑 내가 좋아하던 SAAP THAI에서 팟씨유를 먹으면 제법 괜찮은 하루였다.      


 이렇게 저렇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국과 일본에서 2가지 제안이 들어왔다.      

1. 친구네 회사에서 취업 제안 

2. 일본에서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복직 제안.      


 호주에서 30대 알바몬으로 살면서 회사원 시절이 그리워지고 있었기에,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어디로 갈까 고민했다. 심지어, 케이블 티비 방송국에 다니는 친구는 이번에 다이어트 프로그램 만드는데 출연하겠냐고 연락이 왔다. 무료로 몇백만원 상당 코스로 관리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했다. 얼굴 팔리는 건 잠깐이고, 어차피 케이블 방송이라 시청자도 별로 없다고. 매우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신상 공개가 쑥스러워서 포기. 도쿄의 회사에서는 내 후임으로 한국인 직원이 있는데, 일이 늘어서 혼자 커버하기 벅차한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최상이 도쿄로 돌아올 생각이 있냐고. ‘흠. 어쩌지. 일도 익숙하니까 다시 간다고 할까?’ 한국의 친구네 회사에서는 일본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필요한 포지션이 있으니, 생각 있으면 이력서를 달라고 했다.      


 결국, 먼저 일본의 회사에 돌아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전 하우스 메이트이자, 직장 선배였던 케이코를 통해서 연락이 왔었기에, 회신을 하고, 며칠을 기다렸는데, 윗선에서 인원 충원하기에는 11년 지진 후에, 한국인 수요가 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아. 뭐야 그럴 거면 나한테 왜 물어봐!! 김치국만 마셨네!! 중간에 낀 케이코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럼 도쿄는 패스. 사요나라. 바이바이. 바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이력서를 보냈다. 이틀 뒤에, 긍정적으로 검토했고, 서울에 오면 면접을 보자고 연락 받았다. 이 시점이 시드니에 온 지 3개월째였다. ‘그래, 보돌아. 너도 하고 싶은 일 다 해봤으니까, 돌아가서 직장 다니면서 조신하게 저축하다 시집이나 가자. 친구들도 지금 다 결혼하잖아!!’ 라고 적고, 지금까지 미혼인 미스 최.      


 점심시간에 뭐 먹을지를 고민하는 회사원의 삶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제일 먼저 같은 집에 사는 혜정에게 알렸다. 섭섭해 했지만, 그 동안 방황하던 내 모습을 봐 왔기에, 언니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한다고 말해줬다. 엄친 딸인 연진언니에게도 연락했다. 언니도 “그래. 새로운 경험도 해 봤고, 이제 한국에서 자리 잡고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란다.”며, 달링하버의 허리케인 그릴에 가서 마지막으로 식사를 사줬다. 이때 언니가 첫째 임신 중이었는데, 지금은 세 아이의 어머니. 세월 참 빠르고요. 로즈 베이 일식집도 귀국 열흘 전에 그만뒀다. 송별회로 친하게 지냈던 케이코와 시티의 홍콩식 딤섬집에 가서 하가우, 소룡포 등을 나눠 먹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줬다. 순박하니 참 착했는데, 잘 지내고 있을까 모르겠네. 작별 인사를 나눌 사람도 이렇게 단촐하다니, 시드니에서는 정말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구나. 한 달간 있었던 스웨덴 말뫼도 가끔 그리운데, 이상하게 시드니는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해피 쉐프의 락사는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도 말이지. 정말로 나라와도 케미가 맞아야 되나보다. 이래놓고 3년 뒤에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것 아니냐. 뭐, 인생은 알 수 없는 일.      


 한국에 귀국 전 마지막으로 멜버른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따라서 데이투어를 해 보고 싶었기 때문. 연착으로 유명한 타이거 에어를 탔지만, 무사 도착했다. 예약 해 두었던 호스텔에 짐을 풀고, 근처의 한인 여행사에 다음날 일일 투어를 예약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배고파서, 허드슨 커피에 가서 샌드위치랑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여행 왔으니까 맛있는 것 먹고 싶었는데 결정 장애로 결국 카페행. 저녁은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어서 유명 쌀국수 집 mekong에 갔다. 쌀국수야 뭐 어디든 맛있지. 첫째 날은 이렇게 밋밋하게 지나가고 둘째 날은 그레이트 오션로드 투어를 떠났다.      


 작은 봉고차에 8명쯤 탔다. 연인이나 가족 팀이 대부분이었다. 혼자 온 여성분이 계셔서 둘이서 사진 품앗이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혼 전에 마지막으로 혼자 여행을 왔다고.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내가 좋아했던 영화 ‘폭풍속으로’의 촬영지 ‘bells  beach’. 날이 흐렸는데도 몸 좋은 서퍼들이 수영을 하고 있어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의 키아누 오빠가 그립군요. ‘그레이트 오션로드’라는 이름의 유래는 세계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과 전쟁으로 인한 실업자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도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난 great하게 멋진 도로라는 뜻인지 알았지 뭐야. 그게 아니고 The great war에서 파생한 뜻이라고 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니 점점 날씨가 좋아졌다. 이름 모를 경치 좋은 해변 테이블에 앉아서, 여행사에서 준비 해 준 김밥 한 줄을 먹었다. 이 날 7시간 정도 차를 탔는데, 먹은 것은 김밥 한 줄이 전부여서 시내에 돌아왔을 때 배고파서 죽을 뻔 했다. 다음에 데이투어 가면 간식을 바리바리 챙기리라 다짐했던 날. 차타고 가다가, 예쁜 해변이 보이면 내리라고 하셔서, 사진 찍고, 또 차타고 가다가, 내려서 사진 찍고의 반복. 바다들이 예뻐서 어딘지는 몰라도 만족스러웠다. 호주가 심심하긴 해도, 자연경관 하나는 인정한다. 나의 인정을 호주인 아무도 안 바란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달리고 달려서, 12사도 바위가 늘어서 있는 관광 스팟에 도착. 여기서 헬기 투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내가 또 여기 언제 오겠냐 싶어서, 100달러를 투척. 고소공포증도 있어서 헬기 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하늘 위에서 바라 본 세상은 “와. 우와!!” 이 말 밖에 안 나왔다. 역시 경험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법. 10분 정도 되는 비행시간이었지만 100달러의 가치가 충분했다. 이번 멜버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헬기 투어였던 듯하다. 인터넷 검색 해 보니까, 지금은 헬기투어 140달러구나. 그 다음 코스는 영국의 이민선이 좌초 할 만큼 거센 파도와 지형으로 유명한 로카드 협곡. 배가 난파가 되었을 때 유일한 생존자였던 청년 톰이 바다에서 에바 양을 구출 해 냈다기에. 우리는 둘이 나중에 결혼이라도 했나. 오오. 이러고 있었는데, 톰은 호주에 정착해서 잘 살았고, 에바는 부모님을 다 잃은 충격에 영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에이구, 짠한 것.’      


 이렇게 투어는 마무리 되고, 멜버른 시내로 돌아오는 봉고차에서는 다들 기절해서 잠만 잤다. 뒤에서 차타는 것만 해도 힘든데, 기사님과 가이드님들은 매일 이렇게 다니신다니 존경스럽다. 오후 8시쯤 도착해서는 어제 갔던 mekong 옆의 가게에 가서, 또 쌀국수를 먹었다. 쌀국수 먹으러 멜버른 왔냐 싶었네. 뜨끈한 것 생각하면 국수만 떠올랐다. 이럴 때 순두부찌개에 밥 비벼 먹어야 제 맛인데요. 밥 먹고는 피곤해서 숙소 가서 씻고 골아 떨어졌다.      


 다음 날은 미술관도 갔다가, 커피도 마시고, 맛있기로 유명한 피시 앤 칩스 가게에 가서 퓨어 블론드 맥주와 점심을 먹었다. 멜버른에서 먹은 모든 것 중에 여기가 제일 맛있었다. 따뜻한 생선 튀김에 시원한 맥주. 짭짤하고 포슬포슬한 감자튀김까지. 너 수미감자니? 바다가 보이던 테라스 석에 앉아서 밥 먹던 이 순간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헬기 투어랑 피시 앤 칩스가 나의 멜버른 여행기 베스트 2에 등극했다. 좋은 곳이네 멜버른. 시드니로 돌아와서는 3-4일 동안 혜정이와 동네 맛 집 한 바퀴 돌고 귀국길에 올랐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 줄을 서려고 하는데, 양쪽으로 나뉘어져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줄 끝에 있던 갈색머리 외국인이 아는 사람처럼 손을 흔들며 부르기에 얼결에 따라서 섰다. 


“안녕. 중국 사람이니?” 

“아니. 한국인인데!!” 

“아 미안. 나는 콜롬비아에서 출장 왔어. 커피회사 다녀서, 한국 맥심 커피도 알고 있어.” 

“아 진짜? 외국인이랑 맥심 얘기하니 너무 웃긴다. (하나도 안 웃김)” 

“넌 어디 가는 거야?” 

“난 한국에 귀국해.” 

“시드니는 어땠어?”

 “아름답긴 한데, 한국에 비하면 심심했어.”


정도 이야기 하다가 보니, 보안 검색대에서 줄이 갈라져서 얼떨결에 헤어졌다. 내가 시드니에서 외국인이랑 영어로 제일 길게 말해 본 것이 총각이었네. 건강하게 잘 지내시게나.  

     

 막연한 영미권 국가에 대한 호기심에 떠났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나라와 사람 간에도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귀국했지만, 도전 해 본 것으로 만족한다. 안 가봤으면 계속 궁금했을 것 아니야. 지금까지 베프인 혜정이랑 만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언젠가는 해피 쉐프 누들 먹으러 한번 놀러갈게, 시드니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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