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여행들
3. 이탈리아 로마
두 번째 이야기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썼던 일기로 시작하겠다.
[오늘은 7월 9일. 로마에 온 지 이틀째. 판테온 신전 앞이다. 신전은 대충 둘러보고, 너무 배가 고파서 맥도널드의 베이컨 버거 세트를 먹었다. 진짜 배부르다. (베이컨은 달랑 두 조각뿐이었지만, 고기가 두 겹이었다.) 이제, 지올리티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광장의 분수대 앞에서는 수박을 먹어야지. (엄마, 배낭여행 가면 살이 빠져서 올 것이라고 했는데 미안해요. 다 너무 맛있어.) 어제는 일기를 못 썼다. 어제의 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로마에 도착 > 리퍼블리카에서 일행들과 헤어져서 윤정이랑 둘이서만 다님> 플래닛 피자에서 바가지를 쓰고 기분이 나빠짐 > 스페인 계단, 트레비 분수를 구경함 > 밤에 콜로세움 야경을 보러 나갔다가 4시간 동안 걸었음. 산책 도중에 샌들이 끊어져서 신발을 질질 끌면서 귀가함 > 호텔로 돌아와서 새벽 1시 30분까지 마피아 게임을 했음. 어제 너무 많은 일을 해서 피로함에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오늘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 사실 별일 없었다. 신전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일기를 쓰려니 다리가 저려온다. 이제 그만 쓰고 일어나야지. 오늘은 오후 7시까지만 구경하고, 숙소 돌아가서 샤워하고 정리 좀 해야겠다.]
일기장에 먹는 얘기만 쓴 것이 기가 차서 적어보았다. 분수대 앞에서 대체 무슨 수박을 먹었다는 것이지? 아이스크림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수박을 어떻게 먹었을까.
4. 프랑스 니스
프랑스 니스에서 일어났던 사건 중에 가장 큰 일은 나와 현진이가 익사할 뻔했던 일이다. 현진, 효신언니, 윤정, 나. 4인이 함께 손을 잡고 바다에서 둥둥 떠서 놀다가, 큰 파도가 우리를 덮쳤다. 순식간에 잡고 있던 손들이 흩어지고, 물에 뜰 수는 있어도 수영은 못하는 나는 정신없이 허우적거렸다. 땅에 발도 안 닿고, 진짜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을 때, 누가 와서 내 목 뒤를 잡아 올려줬다. 그는 부산 사나이 현우. 수영선수였던 현우가 나와 현진이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효신언니랑 윤정이는 수영을 할 수 있어서 먼저 나가서 해변에서 한숨 돌리고 있었다고. 심지어 효신언니는 선크림을 바르고 있었단다. 야... 나는 죽는 줄 알았는데. 밖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위급한 상황으로 안보였나. 웬일이니. 현우가 나를 건지러 왔을 때, 내가 막 허우적거렸더니 “누나. 가만히 있어 봐요.” 계속되는 몸부림. “가만히 있으라고 쫌!!” 물 먹은 와중에도 부산 사투리로 화내니 무서워서 가마니처럼 있었다. 그랬더니, 튜브처럼 몸이 물에 동동 떴다. 나를 건져 왼쪽 팔에 내 목을 끼고, 현진이를 건지러 갔다. 오른팔에는 그녀의 목을 걸고, 헤엄쳐 나온 우리의 부산사나이. 농담이 아니고, 그때 현우가 구해주러 오지 않았다면, 9시 뉴스에 배낭여행 갔다가 익사한 대학생으로 나올 뻔했다. 이 사건 이후로, 수영을 배우려고 했지만,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안 배우고 있다는 후일담.
5.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있던 일. 부산 사나이 현우가 아침에는 지하철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를 당하고, 저녁에는 KFC에서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KFC에서는 우리가 잘못했던 것이, 한국에서처럼 습관적으로 백팩을 가방 뒤로 걸어놨던 것이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이미 현우의 가방은 통째로 사라졌던 것. 한 사람에게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바르셀로나 치안의 무서움. 다음 날 저녁에는 열 명이 넘게 모여서 분수 쇼를 보러 갔다. 지하철을 함께 타고 가는데, 일행 반은 차에 탔고, 나머지 반은 플랫폼에 서있을 때 열차 문이 스르륵 닫히는 것이었다. 만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눈앞에서 스르륵. 6.25 때 이랬으면 이산가족 될 뻔했다. 이때는 해외에서 스마트 폰을 쓸 수도 없던 시절이라, 반반 나뉘어서 갔는데 분수대 앞에 가니까 어느새 다 모여 있었다. 잠깐 헤어졌던 것뿐인데 얼마나 반갑던지.
이때는 ‘론리 플래닛’ 나라별로 분철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다른 나라 넘어갈 때 버리는 것이 국룰이었다. 심지어 윤정이랑 나는 분철 한 책도 무겁다고 안 들고, 관광센터에서 주는 지도 한 장만 들고 도시를 누비고는 했다. 구글 맵 없던 시절에 하던 여행이 더 낭만적인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구엘 공원도 가고, 분수 쇼도 보고, 투우 경기도 보고 배낭 여행자다운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티브이에서 여행프로를 보는데,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진심으로 바르셀로나에서 해변이 있는 줄 몰랐다. 아. 맞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못 가봤지. 이 도시는 꼭 한 번 다시 가봐야겠다고 다짐하고, 14년에 다녀왔다. 소매치기만 아니면 참 매력적인 도시였다.
6. 프랑스 파리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열차를 타고 가던 우리들. 갑자기 열차가 정차를 하더니, 역장 같은 아저씨가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빨리 내리라고 난리부르스. 내리고 보니, 이미 역에는 몇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같은 여행사 팀 다른 일행들을 역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가 많이 와서 터널이 무너졌다고 한다. 철도회사에서 수배해 준 버스를 타고, 프랑스 몽펠리어역에 내렸다. 이때가 자정 12시. 이 역에서 파리 리옹역으로 가는 TGV는 첫차가 오전 5시 30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노숙 타임. 물에 빠져 죽을 뻔도 하다가, 소매치기도 당하고, 이제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로 간다 했더니, 터널이 무너지고 난리다. 역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서 시간을 때우는데, 현우가 전원일기 주제가를 부르기 시작해서, 다들 그 구슬픈 가락에 눈물을 흘리면서, 서울 가면 제일 먼저 뭐 먹을지 이야기했다. 난 회냉면이 제일 먹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노숙을 하면서 파리에 도착해서 곧바로 베르사유 궁전으로 갈 멤버들,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에서 유래한 ‘장미부대’를 결성했다. 향기로운 이름과는 달리 장미부대는 샤워도 못하고 꼬질한 모습 그대로 진격했다. 심지어,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려고 줄 서있는데 비까지 내리는 것 아닌가. 다들 가방에서 주섬주섬 비닐봉지를 꺼내서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어느 나라 땅거지들이 놀러 온 건지 원. 궁전에서는 오스칼, 앙드레, 마리 앙뜨와네트, 만화책 이야기를 나누던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관광을 하고, 파리 리옹역으로 컴백. 숙소에 들리지 않고, 궁전으로 바로 가느라고 역 코인라커에 가방들을 넣어뒀는데 그 위치가 기억이 안 나는 거라. 8명 중에 어쩜 한 명도 기억을 못 하는지. 30분 동안 헤매다가, 짐을 찾고 숙소에 돌아오니 오후 9시였다. (강릉 집에서 유럽여행 일기장을 찾아온 덕분에 자세히 기록) 전날 역에서 노숙에, 베르사유 관광까지 하드 한 스케줄이었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사 먹고는 샤워하고 바로 뻗었다. 유럽 여행 중 제일 많이 먹은 것은 맥도널드 햄버거.
다음 날에는 효신언니, 윤정과 오르세 미술관에 갔다. 백 팩을 메고 줄을 서 있는데, 내 가방 옆 지퍼가 스르륵 열리는 것 아닌가. 엥? 하고 뒤를 돌아보니 그 손이 다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를 떠났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었군. 백 팩을 앞으로 고쳐 맸다. 미술관에 들어가서는 보고 싶은 작품들이 달라서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언제 어디서 다시 모이자는 약속도 없이. 난 1층을 살짝 둘러보고, 뮤지업샵에 구경을 갔다. 굿즈들을 보고 다시 미술관으로 들어오려는데, 티켓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다. 뮤지엄샵은 입장 티켓을 안 산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으니까, 확인을 하는 것. 그런데 귀신이 곡할 노릇인 것이, 아무리 가방을 뒤져봐도 티켓이 안 보이는 것이다. 언니랑 윤정이랑 다시 만날 약속도 안 했는데, 나는 내부로는 다시 들어갈 수가 없고 난감하네. 그녀들이 구경하고 나오려면 한 시간 이상은 걸릴 것 같아서 근처 카페에 갔다. 비까지 내려서 춥고 서럽고. 유명 작품들은 구경도 못하고 엉엉. 입장하는데 한 시간 걸렸는데, 십분 만에 아웃이라니 엉엉.
항상 다른 일행들을 따라다니거나 윤정이랑 다녀서 혼자 떨어져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영국이면 영어라도 하지, 프랑스어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지도도 여행책자도 하나도 없는데 어쩌지.’라고 걱정하면서 주문한 플랑과 커피를 마셨다. 플랑이라는 디저트는 이때 처음 먹어봤는데, 커스터드 필링이 향기롭고 부드러워서 나중에도 생각이 났었다. 30분가량 카페에서 일기도 쓰고 계획도 세우고 나왔다. ‘미술관 출구에서 20분쯤 기다리다가, 못 만나면 오늘은 나 혼자 파리를 탐험해 보자.’라고 정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기다린 지 10분 만에 일행들을 만났다. 그녀들도 내부에서 나를 찾아 한참을 돌다가, ‘못 만나면 숙소에서 봐야겠다.’라며 나왔는데, 출구에서 내가 우산을 쓰고 서 있었다고 했다. 아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낭만이여. 셋이서 다시 만난 것이 신나서 방방 뛰다가 점심 먹으러 갔다. 이 일 뒤로는 항상 뮤지엄 샵은 관람을 마치고 맨 마지막에 가게 되었다.
파리 일정 마지막 날 밤. 한 달여간의 배낭여행이 마무리되는 날이다. 이 날 만은 옷도 제대로 입고,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밥 한 번 먹자고 뭉쳤다. 사진작가인 영선언니가 대포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줬다. 메뉴판을 보니 beef라고 적혀 있기에 시킨 메뉴가, 받고 보니 ‘비프 타르타르’였다. 육회 같은 메뉴를 받고 망연자실하던 우리들. 지금이라면 없어서 못 먹을 메뉴지만, 20대 초반에게는 생소한 맛이어서 거의 남겼다. 식전 빵에 버터 발라먹는 것이 제일 맛있었던 마지막 날 저녁식사였다.
유럽 배낭여행 같이 갔던 친구들끼리 도중에 싸워서, 돌아오는 비행기는 따로 앉아서 온다는 얘기들도 많았는데, 나와 윤정은 다행히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로 남아있다. 신발끈 여행사에서 만났던 같은 팀 언니, 동생들도 몇 년간은 연락을 하며 재밌게 지냈는데, 이제는 연락이 안 돼서 아쉽다. 이것이 시절인연인가 보다. 즐거웠던 인연이라는 것에 위안을 가져본다. 지금 같이 인터넷이 발전하기 전에 다녀온 여행이라 사건 사고도 많고, 추억도 많았던 나의 첫 유럽 배낭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