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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는다는 것의 의미

손끝에 남은 사랑

by 시니어더크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순간, 말보다 깊은 위로가 전해진다.

드라마 속 할머니가 청년의 손을 더듬어 잡던 그 장면은, 단숨에 나를 아내와 함께하던 시간으로 끌어당겼다. 손끝에 스며들던 따스한 온기, 그리고 그 온기 속에 담겨 있던 모든 사랑이 다시금 가슴 깊은 곳에서 살아났다.


드라마 스타트업의 마지막 회를 보던 날이었다. 시청자의 마음을 오래 붙잡았던 이야기의 끝자락, 한 장면이 내 가슴을 깊게 건드렸다. 눈이 먼 할머니가 젊은 청년 한지평의 손을 꼭 잡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 화면 속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는 아내와 함께하던 지난날의 장면으로 순식간에 끌려갔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울컥함이 몰려왔다.


드라마는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때로는 현실보다 더 선명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할머니가 청년의 손을 더듬으며 온기를 확인하듯 잡는 그 동작은, 내겐 오래전 아내의 손길을 떠올리게 했다. 병실에서, 침대에 누워, 집안의 작은 식탁에서, 혹은 저녁 산책길에서. 나는 늘 그 손을 잡았고, 또 잡혔다. 손을 잡는다는 단순한 행위 속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위로가 있었음을, 나는 그제야 또렷이 깨달았다.


아내는 늘 말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손을 잡는 순간만큼은 말없이도 모든 것이 전해졌다. "괜찮아, 함께 있으니 절대로 두렵지 않아." "힘들어도 끝까지 같이 가줘요." 손끝에 담긴 그 언어들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드라마 속 할머니의 손길이 내 마음을 흔든 이유도, 아마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맞이한다. 나 역시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내며 삶의 반쪽이 무너져 내린 듯한 상실을 경험했다. 그 후로는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 길을 걸을 때, 식탁에서 옆에 앉을 때, 혹은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곤 했다. 그러나 그곳엔 더 이상 아내의 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며 깨달았다. 아내의 손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 속에서, 그리고 내 몸의 습관 속에서 그 손길은 지금도 존재한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그 따뜻함을 떠올린다. 손바닥에 스미는 부드러운 온기, 손가락을 가만히 감싸쥐며 슬며시 나에게로 의지하던 그 사람. 그것은 이제 현실이 아닌 기억일지라도,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손은 말보다 정직하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수많은 말을 쏟아낼 필요 없이, 그저 손을 내밀어 잡는 순간 모든 감정이 전해진다. 아내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는 그 진실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 홀로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그 교훈은 여전히 나를 붙잡아 준다.


쿠키와 산책을 하다 보면, 문득 아내와 함께 걷던 길이 겹쳐진다. 그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손을 뻗어 본다. 물론 잡히는 것은 강아지의 목 줄 뿐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분명히 아내의 손이 잡힌다. 그것만으로도 다시 살아낼 힘이 조금은 생긴다.


드라마 한 장면이 이렇게 삶의 기억을 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삶이란 본래 그렇게 이어지는 것 아닐까. 스쳐 지나가는 대사 하나, 음악 한 소절, 혹은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이 우리 내면 깊숙이 감춰둔 기억을 불러낸다. 그것이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위로가 된다.


나는 이제 아내의 손을 실제로 잡을 수는 없지만, 대신 글로써 그 손길을 다시 잡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마치 아내가 곁에 앉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그 착각 속에서 잠시나마 아내와 함께 살아 있는 듯한 따뜻함을 느낀다.


드라마가 끝나고 화면이 꺼져도, 내 삶의 드라마는 여전히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여전히 아내의 손을 잡고 있다. 손을 잡는다는 건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확인하고, 사랑을 확인하며, 삶을 함께 붙잡는 가장 깊은 방식이다.


드라마 스타트업의 마지막 회에서 눈이 먼 할머니가 청년의 손을 잡는 장면은, 내게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손길을 다시금 되찾게 한 순간이었고,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랑을 확인하게 한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 일.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속에서 아내의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아 본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나 내 마음은 실제로 아내의 손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잡아보고 싶다. 약물의 부작용으로 두툼해진 손이지만... 이 심정을 그 누가 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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