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만히 쉬는 걸 못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만히 쉰다는 것은 나에겐 게으름의 의미였다. 눕기만 하면 시작되는 나태지옥의 굴레. 남들이 그렇게 행복하다 하는 집콕을 이틀도 못되어 뛰쳐나왔다. 어쩐지 늘 부끄러웠다. 제대로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 같았고, 그것은 곧 자기 삶을 잘 가꾸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처럼 해석됐다.
그러다 결국 집콕은 실패했어도 설마 호캉스는 되겠지, 하고 떠난 것이 인천이었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왜 굳이 인천을 2박 3일이나 써서 가느냐고 물을 때,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세상과의 단절을 느끼면서 방에 처박혀 있고 싶다고 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가 꿈뻑꿈뻑 졸다가 이내 깨서 영화를 보고 맛있는 걸 시켜 먹는, 깔끔한 에어비앤비에서의 호캉스를 꿈꿨다. 때문에 딱히 무언가를 챙기지 않아도 됐다. 책 몇 권에 노트만 있으면 나머지는 숙소가 알아서 해줄 터였다.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당연히 '대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때마침 인천 날씨는 선선하니 너무 좋지, 바다가 바로 근처지, 내일은 심지어 해가 뜬다지, 차이나타운 갔던 기억이 가물가물했지... 이 좋은 날씨에 이 좋은 방에 갇혀있는 게 말이 안 됐다.
책을 차라리 카페나 가서 읽을까... 네이버 길 찾기를 뒤적거리고. 마침 숙소 주변엔 예쁜 카페가 즐비하고. 저녁을 이 옆 짬뽕수제비 맛집에서 먹고 돌아오면 될 것 같고. 내일은 날도 좋은데 배 타고 섬이나 갈까? 네이버 블로그를 뒤지고. 와 여기 스쿠터도 빌릴 수 있네... 미쳤다.
이걸 하다 보니 책 한 페이지 읽고 한 시간이 지나있는 거다. 문득 '이게 내가 생각했던 '세상과의 단절'이 맞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 내 손에 잡히는 거라곤 휴대폰뿐이고 평화로운 플레이리스트, 버튼만 누르면 볼 수 있는 TV 왓챠도 안중에 없었다. 내 모든 감각이 바깥으로 나다니고 있었다. 집중이 더 안 됐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그때까지도 네이버 길 찾기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짐의 반절 이상을 빼두고 숙소를 나왔다. 결국 블랙 앤 화이트 조합의 멋쟁이 카페에서 책을 읽고, 4인용 테이블에 홀로 앉아 짬뽕수제비를 완뽕하고, 공원 근처를 걷다가 마지막 손님이라며 닭강정을 두 봉지나 받아왔다. 그제서야 숙소에서 책도 마저 읽고, 스무 번쯤은 본 것 같은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도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묵은 때를 벗겨낸 사람마냥 홀가분했다.
그래서 나머지 1박 2일은 어떻게 됐느냐면, 정체도 모르는 DVD방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차이나타운과 헌책방 거리를 둘러보다 시장 한복판에서 5천 원짜리 잔치국수를 먹고, 이문세 음악을 틀어주던 카페에서 책을 읽고, 결국은 블로그에 나오던 그 섬에서 혼자 스쿠터까지 타고 다녔다는 거다. 바다를 앞에 두고 스쿠터에 오른 내 모습을 찍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계획대로 지킨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깊은 낮잠에서 부스스 깨어났어야 하는데. 이건 뭐 인천보다 더 깊숙한 섬 한복판에 서있는 지경이니... 스쿠터로 맑게 갠 하늘을 가로지르며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문득 이제는 이런 나를 받아들일 때가 왔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태어난 걸 어찌하리... 그렇게 밖으로 나돌아 다녀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걸 뭐 어떻게 거스르리...
인천에 있는 2박 3일 동안 숙소에 있던 시간은 숙면을 제외하곤 7시간도 채 안 될 것이다. 죄다 일찍 나갔다가 늦게까지 싸돌아다닌 기억뿐이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호캉스 같은 여행 따위 계획하지 않는다. 멋진 숙소도 필요가 없게 됐다. 어차피 가서 잠만 자는데 뭐.
대신 그간 고민하던 '진짜 쉼'에 대해서도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남들이 그렇게 "쉴 거면 집에서 가만히 누워있어야 그게 쉬는 거지." 해도 그건 내 휴식과는 다르다는 기준이 생겼다. 이젠 쉬는 날에도 마음껏 걷고 구경하러 다닌다. 침대에 누워 쉬는 건 그 모든 게 끝난 다음. 그 정도의 휴식이 딱 알맞았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괴롭게 버티던 두 시간 덕에, 더 이상 '남들이 좋다는' 휴식을 따를 일이 없어졌다. 몸은 녹초가 돼도 마음은 한결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