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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Sep 29. 2024

앙숙과 노 젓기

  보통 같은 집과는 다르게 나는 남동생이 아니라 엄마와 맨날 싸웠다. 대부분은 상대방의 날카로운 말투나 매섭고도 무심한 행동 때문이었다. 아빠와 동생은 늘 우리를 뜯어말리고 또 억지로 화해시켰다. 그리고 이 구도는 우리 집안의 가풍처럼 십몇 년 간 유지되고 있다.


  울고불고 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 아주 신기한 것이 한국에 유행을 탔다. MBTI였다. 지금이야 신빙성 있는 검사는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처음 MBTI의 인기가 시작되었을 땐 아주 체계적이고 정확한 검사라고 많이들 그랬다. 엄마와 소파에 앉아 각자 검사를 해보았다. 활동가 ENFP인 나와 수호자 ISFJ인 엄마. 스크롤을 내려보니 안 맞는 MBTI가 나왔다. 상극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원수를 우리 집 거실에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심심풀이로 해본 이 검사가 우리에게 준 의미는 컸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플랜 A가 무산될 것을 대비해 플랜 D까지 세워두는 철저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번 계획을 시작하면 완벽하게 준비가 끝나는 그날까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상대를 재촉한다. 미리미리. 빨리빨리. 혹시 모르니까. 문제는 이런 본인의 성향을 내 삶에까지 접목시킨다는 것이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조정하는 내가 따라가기에는 무척 숨 막히는 일이다.


  또 위로는 어찌나 현실적인지. 엄마는 내가 힘든 일을 이야기하면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속상해만 하는지를 이야기하느라 내가 바라는 위로는 다 까먹어버린다. 공감을 해주라고 하면 그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되지 않느냐고 하는 터에 매번 끝엔 내가 서운해서 울고 만다.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나는 엄마 문제로 밤마다 친구에게 열변을 털어놓았다.


  엄마를 향한 마음은 늘 ‘증’이 조금 더 큰 ‘애증’이었다. 매번 이해해 보려다가도 실패하고, 죽도록 미워했다가도 결국 다시 사랑해보려 하는 식이었다. 억지로든 어쩔 수 없는 사랑 때문이든, 수동적인 마음으로 엄마를 납득하려 했다.


  그런데 MBTI가 나오니 엄마와의 사이를 수용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나랑 엄마는 안 맞아. 성격도 다르고, 그래서 자주 싸워. 이제는 거기에 ‘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렇다는 사실만 받아들인다. 엄마의 위로에 내가 공감받지 못하는 건 엄마는 S, 나는 N이라서 그렇고, 엄마가 자꾸 나를 재촉하지 않고는 못 잡아먹는 이유는 엄마가 계획 없인 못 사는 J라 그렇다고.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라 ‘다른 세계 사람 1’이 된 건 그때부터다. 내 엄마니까 자식인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려놔 버렸다. 대신 아직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건 엄마가 엄마라서 그렇고 나도 나라서 그렇다는, 조금 더 관대로운 마음이 생겼다. 이 세계의 나와 저 세계의 엄마를 이어준 건 다름 아닌 우리를 ‘상극’이라고 명명한 검사지다.


  그런데 요즘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점점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꾸미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집안에서도 늘 가장 예쁜 잠옷을 입고 다녔고, 반찬은 반찬통에 있는 것을 바로 꺼내 먹는 걸 본 적이 없으며, 또 집 가구배치는 어찌나 자주 바뀌던지 내가 학교에 다녀오기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거실이 되어있었다.


  나는 엄마의 ‘번거로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밖에 없는데 매일 집의 호텔 청소부를 자처하는 이유와 굳이 설거지거리만 쌓이는 일을 왜 도맡아 하는지. 힘들여가며 그 큰 가구를 왜 이렇게 이리저리 옮겨대는지. 엄마는 그게 자기 삶이 소중해서라고 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 잘 갖춰진 사람이고 싶다고. 고상하게 사는 게 자기 목표라고 늘 그랬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해지는 건 나였다. 엄마는 예쁜 잠옷을 입곤 불편하다고 투덜댔고, 설거지할 건 왜 이렇게 많냐며 불만이었고, 가구 대이동의 날이 끝나면 어김없이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 냈으니까. 그렇게 귀찮고 불편하면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어린 시절, 내게 엄마의 일상은 늘 큰 물음표였다.


  그런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점점 ‘엄마화’가 되어가는 나를 보면 그렇게 신기하고 웃기다.

  동네라도 굳이 굳이 예쁘게 차려입고 가고 싶은 마음과 때마다 각종 그릇과 받침 천을 모아 잔뜩 늘어놓고 밥을 먹는 것. 두 평이나 될까 하는 방을 요리조리 머리 굴려가며 침대 옮기고 책상의자 옮기는 한 달 남짓의 간격. 이제는 동생이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

  -   안 피곤해?

  그럼 나에게도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다.

  -   매일 잘 가꿔줘야지, 나를.


  그러니까, 번거롭고 피곤하고 유난스러워도 더 멋들어지게 살고 싶어서 노력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엄마도, 나도. 나는 매 순간 나를 보니까, 남이 보든 보지 않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가 중요한 가치였음을 이제는 잘 안다.


  요즘엔 엄마가 밥을 하면 내가 예쁜 그릇을 꺼내고, 내가 카톡으로 맘에 드는 소품 링크를 보내면 엄마가 내 방에 어울릴지를 조언해 준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각자의 방식이 다를 뿐, 핵심은 같다는 걸 알았다. 왜, 걱정을 조곤조곤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내는 것이 걱정하는 방식인 사람도 있지 않나. 나는 부드러움을 원하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역정을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었지만, 본질은 ‘걱정’이었다. 우리의 많은 부분은 본질을 뺀 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였는데, 당신을 닮아가며 차차 마음을 읽게 되면서는 엄마의 말을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분명 저 말 안에 무언가 하고 싶은 진짜 마음이 있을 것이다, 하고 어림해 보게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엄마랑 데이트도 나가보고, 같이 영화도 보고, 솔솔 잠들 때까지 수다도 떨어보았다. 아주 조금씩, 서로가 가진 가시를 숨기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크고 작은 갈등은 비일비재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MBTI 과몰입은 오직 엄마에게만 적용된다. 비록 그게 비과학적인 검사에 기대는 것일지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끝까지 사랑하고 싶은 건 엄마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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