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승일 Sep 20. 2024

시위 현장에서 나는 왜 욕먹는 걸까?

“폭력 경찰! 물러나라. 폭력! 경찰! 물러나라!”

   

“이 멍청한 경찰들이 뭘 몰라요. 뭐가 중요한지를….”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경찰이 이러고 있습니다. 그럼 세금 낼 필요 없겠죠?”


도심 한복판 높은 빌딩 숲 사이를 타고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말들이 제 귀에 들어옵니다. 옛날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올해 시위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말들입니다. 물론 저도 잘 압니다. 저를 향한 직접적인 말들이 아니라는 것을요. 하지만 가끔은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전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물론 백 퍼센트 제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을요.


제가 처음에 경찰관 기동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나서 어떤 분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쉽지 않은 주제인데 응원합니다”(사십대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만이 아니라 제 주변에 많은 선,후배들은 어려운 주제라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인지 몰라도 더욱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청개구리가 분명합니다.


“형님 기동대 하면 뭔가 일반 사람들의 시각에선 선입견이 있어요. 그리고 시위가 많았던 2000년도 이전 시위를 막던 경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요. 미디어를 통해 비친 경찰의 모습이 워낙 부정적이었으니까요”


기동대에서 꽤 오랜 기간 근무했던 후배 경찰관은 제게 여러 차례 같은 조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집회, 시위에 참여하는 참가자들도 변했고 경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나 잘한 선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현실은 냉혹하다.’


올해 2월, 경찰관 기동대로 발령이 나고 시위 현장을 처음으로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여의도 공원에서 있었던 대규모 시위였고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대규모의 시위가 있으면 일반 시민들의 통행에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때도 있고 아예 통행 못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기동대 경찰관들이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배치됩니다.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비도 오는 중에 많은 사람이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한다는 경찰관들이 안내하면 ‘왜 그래야 하지’라고,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끔은 경찰관들과 시비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현장에서 팀장급이 나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고 양해를 구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리고 근무 교대를 하고 경찰 버스로 돌아옵니다. 진짜 그 순간만큼은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더욱이 처음 근무해 보는 기동대라는 낯선 환경에서 찾아온 그 시간은 정말 달콤했습니다. 그렇게 경찰 버스와는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유화를 취미를 그리고 있습니다. 경찰 버스에서 쉬고 있는 후배 경찰관을 그린 그림입니다.


얼마 전 경찰 후배가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특정’ 장소에 ‘경찰’과 ‘집회 참가자’가 아닌     
‘이곳’에 ‘사람’만 있을 뿐인데
왜 서로 편 가르고 서로 다른 것처럼
마주할까, 하고요.


제게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성했습니다. 집회 참가자와 나는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근무한 건 아닌지 저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그러면서 1인 시위자부터 대규모 시위 현장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산업재해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외침은 지금도 너무 생생합니다.


이제는 제가 억울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어도, 제가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았어도 그리고, 제가 매우 성실한 납세의무를 다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경찰관 기동대에서 근무 1년을 끝내고 내년 2월이면 부서 이동이 있습니다. 벌써 올해 반 이상을 근무했습니다. 저는 그때 다시 일선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 순간순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오늘도 경찰 버스는 제게 잠깐의 쉼과 여유를 선물해 줍니다. 그 경찰 버스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위 현장으로 출동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귀 기울이려 합니다. 우린 같이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