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기동대에 발령받고 근무한 지도 8개월이 되었습니다. 제가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25년여 동안 제대로 된 기동대 근무는 올해가 처음입니다. 주로 내근 근무를 했고 경찰청의 경우에는 기동대에 가지 않아서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근무를 나갈 때마다 새롭습니다.
경찰관 기동대에서 근무하면서 시위 현장에서는 지인을 두 명 만났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제가 경찰청 근무할 때 의무경찰로 군 생활을 했던 조금은 뺀질거리던 영복(가명)이라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군대를 전역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가끔 연락하며 좋은 관계로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사이입니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국내 카드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승진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지난 5월 노동절을 맞아 회사 동료들과 함께 시청 앞 집회에 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도 현장에 왔냐는 전화였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주변에서 잠깐 만났습니다.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 자주 보는 경찰관들의 모습입니다. 저날도 매우 평화적인 집회로 마무리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형, 너무 이상하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을 만나니까”
“왜? 뭐가 이상해? 난 내 일을 하고 넌 네 일을 한 거뿐인데. 오늘 그래도 평화적이고 질서 있게 집회를 잘해줘서 정말 고맙던데”
“나도 의경을 나와서 경찰들도 힘들다는 거 새삼 알겠더라. 근데 진짜 요즘은 아예 불법집회는 없어진 거 같더라. 사람들이 다 착해”
“그래야지. 우리나라도 이제 시위 문화가 진짜 많이 바뀌었어. 형도 기동대 오기 전에는 사실 걱정도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집회하는 사람들 심정도 이해되고 하더라”
그렇게 짧게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한참 지나 우리 집 근처에서 치맥을 한잔했었습니다. 그때도 주로 나눴던 이야기는 노동절에 시청 앞에서 만났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집회와 시위는 같은 말 일까요? 아니면 다른 걸까요?”
정답은 ‘다르다 ’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집회와 시위를 구별하지 않고 그냥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법에서 정한 내용을 보면 엄연히 다른 의미입니다.
제가 이번 글에서 법적인 것을 설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너무 머리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법적으로 깊이 있게 논할 정도의 지식도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단지 현장에서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저도 생각할 뿐입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관한 법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위’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럼 ‘집회’는 무슨 뜻일까요? ‘다수가 일정한 공동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에 일시적으로 집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다수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일정 장소에 집합한 경우는 집회일 수 없습니다.
단지 법에서 집회는 ‘옥외 집회’만을 규정합니다. ‘천정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에서 집회’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실내에서의 집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수의 콘서트, 결혼식, 장례식, 전시회, 공연, 체육행사도 모두 집회에 해당합니다. 단지 법에서 정한 ‘옥외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시위, 집회와는 다릅니다.
한 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시위’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사람들이 듣도록 하고 자신들의 뜻을 알리는 것입니다.
‘집회’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고 모인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것입니다.
집회, 시위하는 주변에서 확성기를 통해 주장하는 내용을 듣고 공감하거나 반대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 집회, 시위는 아마도 시위였을 겁니다.
경찰관은 당연히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위 현장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공감될 때가 솔직히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행사를 제외하고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시위라던가 ’성차별에 대한 문제‘ 그리고, ’근로 현장에서의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더욱이나 공감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절대 내색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한다면 큰 문제가 될 듯합니다.
그래도 한가지 양심고백을 하겠습니다.
“저는 시위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민중가요의 리듬에 맞춰 발가락을 움직여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아이코,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냐'라고, 생각하며 정신을 바짝 차린 적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사람이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시위를 왜 할까? ‘라는 막연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분명한 건 각자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못살 것 같은 절박함도 분명히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 속상함을 저한테 풀어내세요. 그리고 힘내서 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행복해지세요’라고요.
오늘도 어디에선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경찰관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안전한 가운데 집회, 시위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제 할 일을 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