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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Aug 30. 2024

기동대 경찰관, ‘경찰버스’는 ‘집’이다

오늘도 이른 아침 어김없이 알은 울려댑니다. 오전 5시 30분 정각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기동대는 평균적으로 6시 30분 전후로 출근해야 합니다. 그나마 저는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무실에서 멀리 살고 있는 직원들은 저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사무실까지 거리가 가까운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몇 년 전까지는 보통 출근 시간만 한 시간 이상 거리에서 출퇴근했습니다. 서대문 쪽에 있는 경찰청과 경복궁 옆 서울경찰청을 10년 넘게 출퇴근할 때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나 싶습니다. 그때는 기상 시간도 지금보다 훨씬 빨랐고 불규칙한 출근 시간 때문에 더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기동대 근무하는 경찰관들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체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거나 전체가 모여 훈련할 때가 아니면 모두 현장에서 근무합니다. 정확히는 길바닥이 주 근무지입니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 기동대 경찰관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 번쯤 광화문 광장과 서울시청광장 주변에서 유난히 경찰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시위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기동대 경찰관들의 주된 업무는 집회, 시위의 안전한 관리와 보호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업무 중 한 가지는 중요시설 보호입니다. 특히 주요 국가들의 대사관들이 그렇습니다.


비엔나 협약이라는 전 세계가 속한 외교 조약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비엔나)은 과거부터 외교의 중심지였는데 그곳에서 협약이 이뤄지면서 불리고 있습니다. 비엔나 협약 제22조를 보면 ‘공관의 불가침’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관 지역은 불가침이다. 접수국 관헌은 공관장의 동의 없이 공관 내로 진입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대부분 국가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등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국제 정세나 이슈가 있는 경우 특정 대사관을 보호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도 자주 바뀌게 됩니다. 제가 근무를 해본 대사관도 10여 곳은 족히 넘습니다.


대사관 보호와 관련된 근무는 ‘참, 쉬운 듯 어렵습니다’ 업무의 보안성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경찰관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근무 주기를 일주일 단위로 보면 일근을 계속하고 야간 당직을 하루 한 뒤에 이틀을 쉬게 됩니다. 매주 그렇게 반복됩니다. 물론 대규모 시위가 있거나 주요 국가적 행사가 있으면 휴무 때도 근무하곤 합니다. 가끔은 일근 때도 어쩔 수 없이 야간 당직까지 계속해서 근무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때가 가장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찰관이 근무하는 많은 부서 가운데 기동대의 근무 여건 중 가장 큰 단점입니다. 저도 벌써 몇 번이나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했는지 모릅니다. 주변 지인들도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몇 차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아예 불러주지도 않습니다.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오전 6시 30분경 출동을 하면 최소 13시간은 무조건 밖에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매일 바뀌는 현장과 버스에서 있습니다. 버스에서 지내는 시간은 출동하는 장소까지 왕복 시간까지 합하면 14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버스에서 생활합니다. 그래서 기동대 근무하는 경찰관들이 집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버스에서 지내는 이유입니다.


물론 현장에 나와서는 길바닥에서 주로 근무합니다. 근무하지 않는 시간에는 버스에서 대기하면서 쉬게 됩니다. 말이 쉬는 거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무전을 들어야 하고 현장 상황에 따라 추가 근무가 갑자기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버스에서 멀리 가지 못합니다. 대부분 버스 주변에서 빙빙 돕니다.


과거에는 식사도 버스에서 도시락으로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버스를 주차한 주변 식당에서 주로 매식합니다. 기동대 경찰관들의 경우 일주일에 10번 정도를 밖에서 식사하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발령받고 3개월 정도는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매일 서울 곳곳으로 출동하면서 주변 맛집을 탐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딱 3개월이었습니다. 이제 6개월이 넘어가다 보니 매일 같이 ‘오늘은 뭘 먹지?’하고 고민합니다. 그 자체가 힘듭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경찰관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팀별로 그날 메뉴를 정하는 당번이 있을 정도입니다.




경찰버스 내부는 일반 시외버스보다는 좌석이 편하고 고속 리무진 버스보다는 불편한 듯합니다. 딱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생각됩니다. 각자가 선호하는 자리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경찰관들은 순번을 정해 한두 달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겨서 생활합니다. 마치 초등학교 다닐 때 짝꿍을 바꾸고 자리를 돌아가며 앉는 것과 비슷합니다.


경찰버스 내부 제 자리 개인 사물함에 들어있는 내용물(속옷,치약, 영양제, 선크림 등)입니다.

개인 의자 밑이나 옆에는 사물함이 있습니다. 저는 기본 사물함이 부족해 별도의 개인 사물함을 추가로 구매해서 쓰고 있습니다. 우선 그 안에는 양말과 속옷이 있습니다. 가끔 비가 오거나 한여름 더울 때면 버스 안에서 상의 속옷을 갈아입고 양말도 바꿔 신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치약과 칫솔은 기본이고 구강 정화제(가그린)도 필수품입니다. 거기에 각종 영양제와 홍삼도 있습니다. 여름에는 선크림과 토시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 도로 위나 인도에서 근무하다 보니 햇빛에 바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중요합니다. 그 외에도 저는 책 몇 권과 마스크, 이어플러그, 수첩, 볼펜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기동대 경찰관은 현장에서 입는 근무복의 종류도 많습니다. 먼저 의외로 사복을 입고 근무하는 때도 종종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비노출 근무 때문입니다. 근무복은 계절별로 두 가지 정도 복장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다른 복장을 갈아입는 때도 있습니다. 거기에 경찰 조끼와 외근 점퍼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옷만 해도 보통 서너 가지를 매일 가지고 다닙니다. 창 쪽에 걸어두기도 하고 개인 사물함에 별도로 보관하기도 합니다.

 

의자에는 개인의 취향별로 방석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차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필수 아이템입니다. 특히나 치질을 예방할 수 있다는 방석은 인기가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등받이와 목 받침대도 각자가 다르게 사용합니다. 저는 세 가지를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야간 당직을 할 때도 차에서 자야 하므로 숙면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쯤 되면 버스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도 그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힘내자. 아자아자 파이팅’이라고 큰소리 외칩니다.



[덧붙이는 말] 오늘은 다른때보다 훨씬 일찍 출근했습니다. 어제 오후 글을 썼는데 그 이후에야 오늘 출근시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만큼 불규칙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오랫만에 별들을 많이 봤으니까요. 그리고 이른 시간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힘차게 시작하는 모습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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