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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고작 15권

제1권-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바다남

2024년 1월 1일, 다짐을 했더랬다.

올 해에는 책 15권 이상 읽어보자.


다짐과 동시에 또다시 한 달 넘도록 지난번 읽어둔 얼마 안 되는 곳에서 넘어가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던

작년에 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마저 꺼내 들었다.


매일 아침 6시에 눈을 뜨고, 1시간 이상 책을 읽고 난 뒤 하루를 시작해 보기로 한 것.

3월 11일부터 시작했더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참 소설을 담백하게 써 내려가는 재주가 있다. 지난 1Q84와 같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 속에 '차원'이라는 주제를 끼워 넣어 써 내려간다.


2023년 9월에 나온 신작이지만, 사실 이 책은 출판되기 이전,

하루키가 삼십 대에 써 둔 원고란다. '나중에 다시 써야지~' 한 채 방치된 원고가 그로부터 사십 년이 훌쩍 지나버린 뒤에야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일까?

처음 시작하면 옛 일본의 모습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코 현대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심지어 책의 중반부에 다다를 때 까지도, 아주 자세히 묘사되는 첫사랑 이야기조차 예스럽다.


손 편지가 나오고, 도서관이 등장하며, 그네가 나온다.


원고가 작성될 당시를 대략 1980년대로 생각하면, 그럴 법하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주인공을 따라 현대로 넘어온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구글이 언급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현재가 된다.

시간의 경과일 뿐이지만, 책을 읽는 입장에서는 그 시간의 흐름이 차원 이동한 것처럼 재빠르다.


그러나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하루키의 책은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홀린 듯이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매력이 있다.

하루키의 글 솜씨는 늘 그렇다.


묘사력도 뛰어나 글 밖에 없음에도 충분히 한 편의 영상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다.

인물의 얼굴은 전혀 그려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어떤 인상과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일지 충분히 납득한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내 인상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달라고 해도 잘 해내지 못할 일을

하루키는 단지 종이 위의 글 만으로도 여러 인물의 인상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나는 소설책을 소설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떠한 내용적 평가를 남기지 않는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다만, 하루키의 책은 그의 뛰어난 '문장력'을 체험할 수 있어 좋다.


유행을 좇는 키워드(주제)가 다루어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시대를 관통하는 말들로 쓰여 있다.

주인공이 옛날 사람이면 시대적 생각의 차이도 있을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그 세세한 문장력은 그만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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