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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24

페르세포네 호 - 5화

진석의 말을 끝으로 식당에는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고개만 바쁘게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승무원들은 진석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각자 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태수가 잠시 주변의 반응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중앙통제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거야?”

“제가 확인해 봤는데 오류가 발생한 적은 없어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오류가 발생하면 모니터에 알람이 뜬다니까요.”

동하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여전히 미심쩍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말했다.

“모니터에 알람이 뜨지 않는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거잖아.”

태수의 말이 끝나자 동하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소리쳤다.

“직접 한 번 보세요! 오류가 발생한 적이 있는지 프로그램에 접속해 직접 한 번 보시라고요!”

“접속하면 뭐 하나. 오류가 발생했는지 알아볼 수가 없는데. 자네만이 그걸 알아볼 수 있잖아.”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동하는 태수를 노려보고 있었고, 태수는 무표정한 채 동하의 시선을 외면했다. 연우는 이마에 손을 얹고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연이 크게 한숨을 쉬며 정적을 깬 뒤 말했다.

“진정들 하시고 일단 식사하시죠. 벌써 식사시간이 한참 지났어요. 먹으면서 대화하자고요. 평화롭게요.”

승무원들은 마지못해 비닐팩과 플라스틱 통을 하나씩 가져왔다. 하지만 아침을 먹을 때와 달리 이들은 바로 식사를 시작하지 않고 식당에 감도는 분위기와 서로의 행동을 살폈다. 연우는 불안과 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앉아 있었고, 태수는 그런 연우의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진석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날카롭게 관찰했으며, 나연은 팔짱을 끼고 불만이 있는 표정으로 천천히 사람들을 살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하였는데, 그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화를 참지 못한 듯 숨을 몰아쉬었다. 나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이러지 말자고요. 뭔가 확실하게 밝혀진 것도 아닌데 분위기가 왜 이래요. 이런 거 싫어요.”

그러자 진석이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차분히 말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군요. 여기 앉아 있는 사람 중에 선장을 해친 사람이 있다니까요.”

“확실한가요? 그게 사실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태수가 진지하게 답변하자 동하가 드러내놓고 코웃음을 쳤다. 일동 모두가 동하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이상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아무 대꾸 없이 입꼬리를 올려 조소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진석 씨, 구체적으로 어떻게 선장을 해쳤다는 거지?”

연우의 질문에 진석이 빤히 쳐다보며 답했다.

“뻔하죠. 누군가 선장의 산소공급장치를 꺼버린 겁니다. 활동하는 승무원이 있는 상황이니 데메테르가 통제권을 갖지 않아 안전조치를 취할 수도 없고, 동면 중이던 선장은 본인도 모르는 새 죽었겠죠. 또한 동면을 깰 시간이 되어 동면캡슐의 뚜껑이 저절로 열리면 산소공급장치는 어차피 꺼지게 되어 있잖아요? 즉, 언제 꺼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니 들킬 염려도 없죠.”

“하지만, 우리는 다 같이 동면에서 깨어났잖아? 그럼 선장의 산소공급장치를 끌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

연우의 의문에 진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깨어난 뒤가 아니라 깨어나기 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동면캡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장의 산소공급장치를 끈 뒤 바로 자신의 동면캡슐에 들어가면 되는 거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동면에서 깨는 시간은 동일하지만 동면에 드는 시간은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무도 승무원들이 동면캡슐에 들어간 순서를 모를 걸요. 정해진 순서 없이 그저 일정한 시간에 다 같이 동면실에 모여서 자신의 동면캡슐에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진석이 말을 마치자 식당은 조용해졌다. 식당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모두들 알아챌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터무니없는 생각이야. 그 얘기는 일단 여기까지 하고 점심이나 좀 먹자.”

연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고는 비닐팩을 뜯었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모두가 반사적으로 비닐팩을 뜯었다. 그리고 일동은 마치 로봇처럼 무미건조한 모습으로 음식물과 음료를 입 안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눈빛만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을 의심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 알아서들 일 봐. 저녁시간에 다시 여기서 보자고.”

식사를 마친 연우가 내뱉듯이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암묵적으로 한 사람씩 차례로 일어나 앞사람의 뒤를 따라 식당을 나섰다. 다른 사람과 함께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행동이었다.

동하는 지금까지 그랬듯 모두가 떠나고 난 뒤 식당에 남아 뒷정리를 했다. IT엔지니어이기 이전에 우주선의 막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는 선장이 맡긴 일이었다. 다회용 용기들 뿐이어서 정리할 게 많지는 않았지만 동하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선장의 발상에 따른 이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니, 선장도 죽은 이 마당에 이제는 각자 알아서 자신이 먹은 것을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어차피 모두가 선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었다.

정리를 마치고 나와 식당을 나선 동하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현재 시간은 14시. <페르세포네 호>의 저녁시간은 암묵적으로18시로 정해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승무원휴게실에라도 가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소소하게 보드게임을 즐겼을 시간이지만, 지금의 동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디든 좋으니 누구와도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었다. 그는 드넓은 우주 한복판에서 고독을 느끼고 있었다.

동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 문 앞에 도착해 지문인식기에 왼손엄지손가락을 갖다 댔다.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는 침대에 누워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건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진석은 누군가 동면에 들기 직전 선장의 동면캡슐에 연결된 산소공급장치를 껐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이미170여 일 전에 선장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패닉에 빠진 승무원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음험한 웃음을 짓고 있으리라. 동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와 식당에서 대화를 나눌 때의 승무원들의 반응을 기억해 냈지만, 딱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 인물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는 데메테르의 안정성에 계속 의구심을 가지던 태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멍청한 아저씨 같으니.’

혹시 태수가 범인이어서 데메테르의 오류로 인한 사고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충분히 말이 되는 설명이다. 동하는 앞으로 그에게서 수상한 낌새가 포착되면 놓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만일 그와 단 둘이서 마주치게 된다면? 그가 흉기를 숨기고 있다가 기습한다면?

갑자기 동하는 <페르세포네 호>를 이루고 있는 장치도, 설비도, 이 공간의 분위기도 무서워졌다. 동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 문이 잠겨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누웠다. 하지만 잠겨 있는 문 따위는 공포에 짓눌린 동하에게 별다른 안도감을 주지 못했다.

동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호신용 무기가 될만한 물건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서랍에서 작은 스패너를 발견해 입고 있는 작업복의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크기는 작지만 유사시에는 제법 괜찮은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하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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