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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24

페르세포네 호 - 6화

같은 시각, 승무원휴게실에는 휴게실 중앙에 놓인 테이블 앞에 진석과 태수, 나연이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로 우리 중 누군가가 선장을 해쳤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나연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나연이 묻자 오히려 진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그럼요. 그럴 수도 있죠. 태수 선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프로그램 오류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이 있고요. 또, 저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우연히 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겠죠. 명확한 근거가 없지 않아요?”

그러자 진석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희박한 가능성을 고려할 수는 없어요. 나연 씨의 말대로 누군가 해쳤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상황증거뿐이지만, 우리가 처한 고립된 우주선이라는 환경을 고려하면 상황증거뿐이라는 이유로 유력한 가설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죠.”

나연이 한숨을 푹 쉬자 이번에는 그 옆에 앉아 있던 태수가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동면에 들기 전 누군가 선장의 산소공급장치를 껐다는 것을 믿기는 어려워. 하지만 이론 상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만은 분명하니 진석 씨의 말대로 누군가 선장을 해쳤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런데 자네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아. 바로 동기 말이야. 즉, 누군가 선장을 해쳤다면 그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거지. 우리는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는 만난 적도 없는 사이고, 시간 상으로는 거의1년째 함께 붙어 있지만 대부분이 동면기간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제 겨우 두 달 정도 함께 지내고 있는 중이잖아? 그런데 이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원한이 생겨서 선장을 죽이겠느냐 이 말이야. 게다가 이 <페르세포네 호>에는 죽은 선장을 제외하면 사람이라고는5명밖에 없어. 이 적은 인원들 사이에서 의심을 받으면서까지 살인을 강행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태수 씨야말로 중요한 것을 잊고 있군요. 살인의 동기에는 꼭 원한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어떤 원한보다 흔한 동기가 존재하죠.”

진석의 말에 점차 표정이 심각해지던 태수가 이윽고 읊조리듯 말했다.

“그렇다면 설마 포상금...?”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석이 답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미리내와 계약한 조건을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목표를 온전히 달성했을 때의 포상금은100억, 일부만 달성했을 때의 포상금은50억,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포상금은30억이며 프로젝트팀 전원이 이를 똑같이 분배해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인원이 줄어들수록 남은 인원들에게 배당되는 포상금은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저희는 현재 목표를 일부 달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니까, 계산해 보면 선장의 죽음으로 인해 각자가 받게 될 포상금이 대충1억7천만 원씩 늘어난 셈이죠.”

나연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놀라 외쳤다.

“겨우 그 정도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다니, 말도 안 돼요!”

“겨우라니요. 나연 씨는 세상물정에 너무 어둡군요.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 동기가 되어 일어난 살인사건도 수두룩합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히 동기가 되고도 남습니다.”

태수와 나연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떨궜다. 진석은 그런 두 사람을 지긋이 관찰하다가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그러니 두 분 모두 현실을 직시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겁니다. 동기가 포상금이라면 범인이 또 누군가를 노릴 가능성도 상당히 높을 테니까요. 물론, 두 분 중에 범인이 없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식당에서 나온 연우는 서둘러 중앙통제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 명령어를 입력했다.

<데메테르- 김강배 선장의 방에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김강배 선장의 사망이 확인되어 다음 업무 수행권자인 이연우 조종사에게 출입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왼손엄지손가락 지문이 출입코드입니다.>

뜻밖의 메시지에 연우는 마주치는 사람은 없을지 경계하며 중앙통제실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선장의 개인실로 향했다. 그리고 문에 설치되어 있는 지문인식기에 왼손엄지손가락을 갖다 댔다.

‘3세대 인공지능프로세서가 어쩌고 하더니 확실히 일처리 한 번 빠르군.’

연우는 바로 방문을 닫은 뒤 내부를 살폈다. 선장의 개인실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듯 전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급히 뒤지던 연우가 서랍 속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연우가 그 노트를 집어든 순간 옆 개인실에서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긴장한 연우는 더 이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자 안도의 숨을 내쉬고 노트를 펼쳐 보았다. 예상대로였다. 그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노트를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는 문을 연 다음 주위를 살핀 뒤 문을 닫았다. 삑 하고 저절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실 문을 지문인식으로 열고 잽싸게 들어갔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디지털시계를 보니 현재 시간은14시10분이었다. 연우는 주머니에서 꺼낸 노트를 자신의 서랍장에 넣었다.

‘이럴 줄 알았어. 선장의 생각이야 뻔하지. 노트를 가지고 혼자서만 거액의 돈을 챙기려 하셨군? 그렇게는 안 되지. 역시 사람은 머리가 좋아야 해. 안 됐지만, 당신의 노트는 내가 접수할게. 수고했어.’

조금만 버티면 마르스 게이트에 도착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무슨 수든 써야 했다. 연우는 침대에 누운 채 골똘히 머리를 굴리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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