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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24

페르세포네 호 - 7화

자신의 개인실에서 수면을 취한 동하는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식당에 도착하니 연우를 제외한 모든 승무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동하는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의 시계는18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앞으로 17시간만 지나면 마르스 게이트에 도착이다. 그곳의 전문가와 최첨단 장비의 힘을 빌린다면 선장의 사망에 얽힌 사건도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10분쯤 뒤, 잠에서 막 깬 듯한 초췌한 모습의 연우가 식당에 들어서며 말했다.

“자, 식사들 하자고.”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난 동하와 연우가 비닐팩과 플라스틱 통을 가져오는 동안 나머지 세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해? 안 먹어?”

연우가 묻자 나연이 되물었다.

“음식물이 들어있는 비닐팩을 뜯었다가 재포장할 수 있는 장비가 우주선 안에 있죠?”

“있지. 선장이 남은 음식물은 다시 포장해 놓을 수 있게끔 그 장비를 설치해 달라고 했었어. 진석 씨도 알고 있을 텐데.”

대답을 들은 나연이 재차 물었다.

“그럼 한 번 개봉한 플라스틱 통을 다시 원래대로 닫을 수 있는 장비도 있나요?”

“아니, 그건 없어. 그런데 그건 왜?”

연우의 물음에 진석이 대신 답했다.

“연우 씨. 우리 중 누군가 선장을 죽였다는 게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행동에 거리낌이 없으시네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알아듣게 좀 이야기를 해 봐.”

자리에 앉아 비닐팩을 뜯으며 연우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진석은 아까 전 승무원휴게실에서 태수와 나연에게 했던, 사건의 동기에 얽힌 추측을 그대로 말했다. 연우는 그의 말을 경청했고, 옆에 앉아 있던 동하 역시 그의 말에 집중했다. 다 듣고 난 연우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동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승무원들을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그래, 일리가 있는 이야기네. 그렇다 치고, 비닐팩이랑 플라스틱 통 포장 이야기는 뭐야? 그게 동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진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건의 동기가 제가 말한 대로라면, 그래서 누군가 또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재포장도 할 수 있겠다, 비닐팩에 독을 넣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평정심을 잃고 흥분한 모습으로 미리 앉아 있던 진석과 태수, 나연 세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너희들 뭐야!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작당모의라도 한 거야? 내가 오기 전에 식당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말해! 다 죽여버리기 전에!”

“진정해요. 연우 씨. 우리끼리 나눈 이야기는 이미 다 전달했어요. 그리고 만일 우리가 범인이라면 이 사실을 연우 씨에게 말했겠어요?”

진석이 침착하게 말하자 연우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안정을 조금씩 되찾았다. 그리고는 자신과 비슷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붙은 채 서 있던 동하를 노려보았다. 연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동하는 손사래를 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방금도 비닐팩을 뜯어서 음식물을 먹으려고 했잖아요! 저 세 사람이 뭔가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연우와 동하가 다시 세 사람을 바라보자 나연이 말했다.

“저도 연우 씨와 동하 씨가 식당에 들어오기 전, 진석 씨로부터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먹지 않고 있었던 거고요.”

“나 역시 나연 씨와 같아. 진석 씨가 말해줬기 때문에 먹지 않고 있었던 거야.”

나연과 태수의 말이 끝나자 연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진석을 바라보았다. 동하는 어느새 주머니에서 스패너를 꺼내 들고 여전히 겁에 질린 눈을 굴리며 다른 사람들을 바쁘게 관찰했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시라니까요. 그리고 동하 씨, 그 스패너 내려놔! 방금 전에도 말했잖아요. 제가 범인이라면 비닐팩 이야기를 꺼냈겠냐고요. 제발 두 사람 다 자리에 앉아요! 여기 <페르세포네 호>에는 총도 없고 다른 흉기로 쓸만한 마땅한 물건도 없어서 그렇게 겁먹을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여기 모든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범인 혼자 이 공간에서 뭘 할 수는 없다니까요!”

진석의 힘 있는 목소리가 순식간에 공간을 압도했다. 이미 진석의 말에 설득되어 자리에 앉아 있던 태수와 나연은 물론, 일어선 채 잔뜩 경계하고 있던 연우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던 동하 역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진석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연우가 다시 자리에 앉았고, 동하는 스패너를 쥔 채 몸을 떨고 있었지만 천천히 연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진석은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동하의 스패너를 잡았고, 동하는 움찔했지만 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패너로부터 손을 뗐다. 진석은 그 스패너를 탁자의 가장자리,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하자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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