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탐사에서 동면장치와 산소공급장치는 승무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장치이다. 그래서 진석은 이들 장치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라는 연우의 지시를 듣는 순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퍽 난감했다. 장치에 이상이 있다면 그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장치 담당인 자신이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아무 이상 없을 거야. 선장을 제외하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산소공급은 제대로 이루어졌잖아?
그렇지만 동하는 산소공급이 중단되었다면 데메테르가 어떻게든 조치를 취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진석 역시 이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어떻게든 동하의 이야기를 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데메테르가 조치를 취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산소공급장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와 동일했기 때문이다.
진석이 동면실로 돌아와 선장이 동면을 취했던 동면캡슐W-1 앞에 서서 개방 버튼을 누르자 투명한 캡슐뚜껑이 열렸다. 방금 전까지 시신이 누워 있던 곳이라는 생각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진석은 먼저 동면장치의 이상유무를 확인했는데, 예상대로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쉰 다음 산소공급장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산소공급장치는 단순한 구조였는데, 동면실 벽에 설치되어 있는 산소생성기로부터 배관을 통해 동면캡슐 상단의 산소탱크로, 또 산소탱크로부터 감압기와 밸브 등의 장치가 포함된 배관을 통해 동면캡슐로 연결되어 있었다. 배관과 탱크 사이의 연결부 등에서 산소가 새어나가면 바로 경보가 울리게끔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진석이 장치를 살피던 중 동면실의 문이 열리고 연우가 들어왔다.
“어때? 이상이 있어?”
가까이 다가온 연우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잘 모릅니다. 이제 막 확인하기 시작해서요.”
“아니, 뭐 하다가 이제야 확인하는 거야?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
연우의 고압적인 태도에 진석은 또 시작이로군, 하고 생각했다. 웃는 낯을 하고 있다가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180도 태도를 바꾸는 것이 연우의 주특기였다.
“금방 확인할 수 있어요. 확인한 다음 식당에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연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몇 마디 툴툴거리더니 이내 동면실을 빠져나갔다. 진석은 그런 연우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산소공급장치를 구성하는 산소발생기, 배관, 산소탱크, 감압기, 밸브를 차례로 살폈다. 그다음 진석은 동면캡슐 뚜껑을 연 채 산소공급장치를 작동시켰다. 위잉 하는 산소발생기의 작동소리와 함께 동면캡슐의 배관을 통해 산소가 바람이 되어 흘러나왔다. 예상대로 산소공급장치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연우가 식당에 들어서자 거기에는 이미 태수와 나연이 함께 앉아 있었다. 연우는 이들과 서로 잠시 눈을 마주쳤으나 아무 말 없이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상단에 매달려 있는 모니터의 시계는12시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분 뒤 동하가 도착해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고, 또 몇 분 뒤 마지막으로 진석이 도착하자 연우는 그가 미처 앉기도 전에 질문했다.
“어때? 산소공급장치의 이상이 맞아?”
모두의 시선이 진석에게 쏠렸다. 그는 모든 승무원을 앉아 있는 순서대로 쓱 한 번 바라보았다.
“아뇨. 산소공급장치에는 이상이 없어요. 동면장치도 정상이고요.”
진석이 담담한 표정과 말투로 답하며 자리에 앉자 연우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서로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이내 연우가 입을 열었다.
“이상이 없다니, 그게 말이 돼? 그럼, 선장은 왜 죽은 건데?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죽은 거라고 하지 않았었어? 그럼, 사인을 잘못 추정했다는 거야?”
말이 끝날 때쯤 연우가 무슨 영문이냐는듯한 표정으로 나연을 바라보자 나연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산소공급장치에 이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질식사했으니 산소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거라고 말한 것뿐이죠.”
나연의 설명이 끝나자 연우가 쏘아붙였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산소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결국 산소공급장치에 이상이 있다는 말이잖아!”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잠자코 듣고 있던 진석이 나섰다.
“산소공급장치의 이상 외에도 질식사하는 경우가 하나 더 있지요.”
“그게 뭔데? 답답하게 굴지 말고 빨리 말해 봐!”
연우가 연거푸 외치자 진석이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나지막이 말했다.
“누군가 산소공급장치를 끈 경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