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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24

페르세포네 호 - 2화

스테인리스 재질의 둥근 탁자를 중심으로 승무원들이 둘러앉았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한 채 말이 없었다. 그러자 진석이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동하 씨, 산소공급이 중단됐는데도 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데메테르에게 물어볼 수 있지?”

“네? 네... 물어볼 수 있죠. 바로 물어볼게요.”

승무원은 중앙통제실, 연구실, 동면실, 그리고 식당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 명령어를 입력해 데메테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입력창에 데메테르라고 입력한 뒤 적절한 문구를 이어서 입력하면 상단의 모니터에 데메테르의 답변이 출력되는 형식이었다. 동하는 식당의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데메테르- 동면캡슐의 산소공급이 중단되면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어?>

<산소캡슐을 강제로 개방합니다.>

<데메테르- W-1의 산소공급이 중단됐음에도 왜 조치하지 않았어?>

승무원 모두가 상단의 모니터로 시선을 향했다. 곧 빠른 속도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적절하게 조치한 것입니다.>

동하가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린 뒤 동일한 내용을 다시 입력했다. 하지만 출력되는 메시지도 여전히 동일했다.

“무슨 말이야? 뭐가 적절한 조치라는 거야?”

연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치자 여전히 표정을 찡그리고 있던 동하가 천천히 말했다.

“글쎄요, 이상한데요. 데메테르의 말이 이해가지 않는데...”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모니터를 바라보던 태수가 물었다.

“산소공급장치의 전원을 예약하여 끄는 것도 가능할까?”

진석이 답했다.

“네, 가능하죠.”

“동하는 데메테르가 제어하는 한 안전조치를 취했을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인공지능이어도 일개 프로그램인데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태수의 말이 끝나자 동하가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쓸어 올리며 답했다.

“위에 모니터 보이시죠? 데메테르에게 오류가 발생하면 저기에 바로 알람이 나타나요. 오류가 발생하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고요. 고도의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오류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임의로 숨길 수는 없어요.”

사실 동하의 말은 지구에서 출발하기 전 승무원들 모두가 들었던 내용이었다. 다만 데메테르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기에 어떤 가능성이든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나연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없어? 이를 테면 긴급한 상황이어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 예상되더라도 강제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경우 말이야. 불이 나서 연기가 퍼지기 전에 방화문을 닫아야 하는데 문이 닫히는 위치에 사람이 서 있다면, 그 사람이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닫아야 한다든가.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은데?”

나연의 말을 경청하던 동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긴급피난룰이라고 해서 사람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급박한 경우에 한해, 선배의 말처럼 사람이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업무를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긴급피난상황에 해당되지는 않죠.”

“그래서 IT엔지니어로서 동하 네가 생각하는 선장의 사망원인은 뭐야?”

연우가 날카롭게 물었다.

“정말로 선장이 산소공급이 중단돼서 죽은 게 사실이라면, 원인은 프로그램의 이상이 아니라 산소공급장치의 이상일 겁니다.”

말을 마친 동하는 숨을 고른 뒤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 승무원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식당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의구심이 섞인 이들의 눈초리를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갔지만 사건의 원인을 추적할만한 유의미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식당 상부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의 디지털시계가 대한민국 기준 시간으로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연우가 회의를 중단시키고 말했다.

“일단 뭘 좀 먹자. 먹어야 사고의 원인을 찾든가 하지.”

<페르세포네 호>에서의 식사는 우주선식으로 부르는 죽 형태의 음식물과 음료의 두 가지를 섭취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일동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한 편에 놓여있던 음식물이 포장된 비닐팩과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통을 하나씩 가져와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나연 역시 비닐팩을 뜯으며 입을 열었다.

“선장이 없어서 그런지 조용하네요. 선장이 구시렁대는 소리가 거의 식당의 배경음악이었는데.”

그 말에 동하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음식물이 맛이 없다거나, 바나나맛 음료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거나, 술이나 마시고 싶다는 등 항상 귀가 아프게 떠들어댔었죠.”

“그랬지.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어.”

태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조금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서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하려 할 때 진석이 연우에게 물었다.

“연우 씨,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죠?”

연우가 모니터의 시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디 보자… 이제 27시간쯤 남았네.”

식사를 하며 연우는 다른 승무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진석은 장치와 설비의 담당자로서 맡고 있던 본연의 업무 외에, 동면장치와 산소공급장치에 이상은 없는지 특별히 확인하기로 했다. 동하는 프로그램에 이상은 없는지 점검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가 담당하고 있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 난 뒤 모두 식당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다. 이제 막170일간의 동면을 끝낸 시점이었기에 <페르세포네 호>에서의 업무를 다시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선장인 선장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진작 시작했어야 할 일들이었다. 식사를 끝낸 뒤 자리에서 일어난 승무원들은 우주선 곳곳으로 바쁘게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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