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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24

페르세포네 호 - 1화

주식회사 <미리내> 소유의 우주선 <페르세포네 호>가 소행성 세레스에서의 연구를 마치고 화성 상공에 있는 우주정거장 마르스 게이트로 향한 지 지구일 기준으로 170일이 되던 날이었다. 드디어 동면 종료 예약 시간이 되어 <페르세포네 호>의 중앙통제시스템이자 3세대 인공지능 프로세서 탑재 프로그램인 데메테르가 활동을 개시했다.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 호>의 승무원 모두가 잠든 시간이면 우주선의 운항 등 <페르세포네 호>에 관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만큼 당연히 임무 수행 기간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지녔다. 최근에 개발된 3세대 인공지능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어 뛰어난 학습범위와 학습속도를 자랑한다. 게다가 승무원의 보건관리를 위해 신체정보가 입력된 모든 승무원의 생체신호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페르세포네 호>는 우주선의 자체 회전을 통해 중력을 생성하고 있는 데다가 산소발생기를 통해 우주선 내부 전체에 산소를 공급하고 있어 승무원들은 따로 우주복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데메테르는 동면실에 위치한 8개의 동면캡슐 중 6개의 문을 동시에 열어 승무원들을 깨웠다. 조종장치를 제외한 제반 장치 및 설비의 취급 담당인 기관사 진석은 가장 먼저 동면캡슐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살폈다. 이내 다른 승무원들도 동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고, 먼저 마주친 이들은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개인락커룸으로 들어가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은 진석이 동면실 상단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를 보니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출력되고 있었다. 데메테르가 승무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세레스에서의 연구 총책임자인 태수는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개인락커룸에서 나와 이미 모여 있던 인원들에게로 다가갔다.

이윽고 선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들은 서로 눈빛을 몇 번 교환하다가 IT엔지니어이자 승무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동하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자 동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선장의 동면캡슐로 향했다.

“선장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자더니 동면도 남다르네요. 아직도 혼자만 누워 있다니 말이에요.”

태수의 말이 끝나자 다른 인원들이 소리를 죽여 쿡쿡하고 웃었다. 그때였다.

“모두 이리로 좀 와보세요! 선장의 상태가 이상해요!”

동하의 다급한 목소리에 승무원들이 선장의 동면캡슐로 우르르 몰려갔다. 쪼그려 앉은 채 선장의 상태를 확인하던 동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교대하듯 진석이 선장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선장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으나 눈을 감은 채 입술을 반쯤 벌리고 있었고 얼굴색은 새하얬다.

“아무래도 나연 씨가 봐줘야 할 것 같은데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진석이 말했다. 우주 생명체 파트의 연구담당인 나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진석의 옆으로 다가가 선장을 관찰하다가 동면캡슐 옆 보관함에서 소형 플래시라이트를 꺼내 눈꺼풀을 젖혀 동공에 비춰 보았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선장의 가슴과 목에 손을 대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치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연은 그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승무원들을 향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죽었어요! 선장은 이미 죽었다고요!”

나연의 외침에 곁에 서 있던 승무원들이 몇 발자국씩 뒷걸음질 쳤다. 진석만이 선장의 몸에 여기저기 손을 대본 뒤 일어나 승무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는 나연의 말이 맞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조종사인 연우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나연을 향해 물었다.

“죽은 게 맞아? 확실한 거야?”

“직접 보세요. 제가 의사면허증은 없지만, 그래도 탐사에 필요한 기초적인 의학지식은 가지고 있다고요. 호흡도, 맥박도, 동공반사도 없어요. 생물로서의 활동이 아무것도 관찰되지 않는다니까요.”

나연이 항변하듯 말하자 진석이 거들었다.

“맞아요. 선장은 죽었습니다. 저도 의사면허증은 없지만, 승무원이 되기 전 인명구조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접해본 경험이 있어요.”

“죽은 지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있나?”

연우가 재차 묻자 진석이 가볍게 한숨을 쉰 다음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 듯한 태도로 답했다.

“동면장치는 사람을 급속냉동시켰다가 깨어날 때쯤 체온을 회복시키는 장치잖아요. 냉동되어 있는 동안에는 당연히 부패도 거의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죽은 지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죠.”

장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승무원들의 표정에는 불안한 빛이 감돌았다. 오직 누워 있는 선장만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이어지던 침묵을 깬 것은 진석이었다.

“일단 연우 씨가 수습을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우주항공규칙 상, 선장이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조종사가 권한을 대행하여 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잖아요. 우리 우주선의 조종사라고는 연우 씨밖에 없고요.”

진석은 임무를 수행하던 중 만일 선장에게 사고라도 나면 미덥지 않은 연우가 과연 선장의 업무를 대행할 수 있을지 상상하며 고개를 저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이 상상이 현실이 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었다.     

“맞아, 그렇지. 이제 내가 이 <페르세포네 호>의 선장대행이야. 모두들 잘 따라주었으면 해.”

나연이 네, 하고 대답했고 다른 승무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석은 태수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태수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태수의 뒤에 몸을 숨기고 서 있던 동하가 몸을 떨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선장이 왜, 무엇 때문에 죽은 거죠?”

“그러게 말이야. 나연 씨, 선장의 사인을 알 수 있어? 죽은 원인 말이야.”

연우의 물음에 나연이 잠시 선장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질식사인 것 같아요.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은 없으니 동면캡슐 안에 있는 동안 산소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거겠죠.”

“산소공급이? 왜지?”

연우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나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건 저도 모르죠. 어쨌든 동면캡슐 안에서 질식사하는 경우는 그것뿐이니까요.”

“진석 씨, 동면하는 동안 산소공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거야?”

연우가 묻자 진석이 또박또박 말했다.

“<페르세포네 호>에는 실내에 산소를 공급하는 메인산소공급장치가 있지만, 동면캡슐은 밀폐공간이어서 전용 산소공급장치가 따로 있습니다.”

연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석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가 되겠군요.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은 없으니 선장이 깨어난 뒤 사망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있습니다. 즉, 선장은 동면에서 깨어나기 전에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동면캡슐이 열릴 때 선장은 자연스럽게 깨어났을 테니까요.”

진석의 말을 듣고 태수가 읊조렸다.

“즉, 선장이 동면하는 동안 어떤 사유로 전용 산소공급장치가 작동을 멈춰서 죽었다는 말이군.”

하지만 태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하가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돼요. 알다시피 저희가 동면하는 동안에는 활동하는 승무원이 없기 때문에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 호>의 모든 장치와 설비를 통제하잖아요. 그리고 데메테르는 저희의 생체신호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저희를 보호하고 있고요. 산소공급이 중단되었다면 데메테르가 즉시 캡슐뚜껑을 여는 등의 조치를 취했을 겁니다.”

모두가 동하를 향해 고개를 돌린 가운데 연우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데메테르의 통제 수준이 그 정도라고?”

동하가 연우의 물음에 답답하다는 말투로 답했다.

“그 정도는 기본입니다.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인공지능을 통한 안전조치 수준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에요. 어느 정도냐면, 사고가 발생하기도 전에 선제예방조치로 위험인자를 찾아내 알리거나 제거할 정도라고요. 간접적인 조치도 이 수준인데 직접적인 조치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런데 선장이 동면하는 동안 질식사했다? 어떻게요?”

동하가 말을 마치며 나연을 바라보자 나연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냥 선장이 질식사했다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어떤 연유로 질식사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선장의 모습으로 보면 질식사 외의 사인은 생각할 수 없어.”

이때 태수가 끼어들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일단 선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어떨까. 사인까지 확인했다면 더 이상 저렇게 방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식당에 모여서 사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자고.”

연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장의 시신을 시신 운송용 가방에 넣어 냉동창고로 옮기도록 승무원들에게 지시했다. 모두가 지시에 따른 뒤 다시 동면실로 돌아오자 연우는 다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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