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가 카드열쇠를 연구실 잠금장치에 접촉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연이 그 뒤를 따랐다. 이들은 세레스로부터 가져온 암석과 얼음 시료들이 잘 보관되고 있는지 확인한 뒤 연구실 안의 의자에 각각 앉았다.
“선배님, 이 시료들을 지구로 가져가서 연구해 보면 성과를 얻을 수 있겠죠?”
“그러길 바라야지. 그리고 성과뿐 아니라… 포상금도 얻을 수 있겠지.”
말을 마치며 미소 짓는 태수를 바라보던 나연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앉은 채로 다시 연구실 내부를 둘러보던 중 태수가 말을 꺼냈다.
“선장도 참 안 됐어. 임무 중에 죽은 것도 아니고, 동면캡슐 안에서 사고로 죽다니 말이야.”
“선배님, 선장이랑 사이가 안 좋았던 것 아니었어요?”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나연을 보며 태수가 침을 한 번 삼킨 뒤 말했다.
“인간적으로 나랑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뿐,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니었어. 나연 씨도 알지 않나.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한 번도 부딪힌 적이 없다는 것 말이야. 그리고, 나연 씨도 선장을 마음에 안 들어했잖아?”
어느새 태수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챈 나연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솔직히, 선장을 좋아했던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일은 젬병이면서 자기 명령에 안 따른다고 버럭 화를 내기나 하고. 모르긴 해도, 특히 연우 씨는 속으로 선장이 잘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걸요.”
태수가 눈을 치켜뜨며 놀랍다는 듯 물었다.
“그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단 말이야?”
“그럼요, 모르셨어요? 완전 상극이에요, 상극. 그런데 웃기는 사실은, 선장이나 연우 씨나 주변사람들로부터 악당 취급받기는 마찬가지여서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지내는 것은 똑같다는 거죠.”
신명 나게 이야기하던 나연은 문득 동료에 대한 험담을 지나치게 늘어놓았다는 생각에 말을 멈춘 뒤 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뒤 화제를 전환했다.
“그건 그렇고, 산소공급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왜 데메테르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나는 동하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어. 대단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라는 건 알겠지만, 누가 뭐래도 데메테르는 프로그램일 뿐이야.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
태수가 차근차근 설명하자 나연이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다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까 동하가 말했잖아요. 오류가 발생하면 모니터를 통해 알 수 있다고요.”
“내 말은 거기에서조차도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이거야. 모니터에 출력 자체가 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지.”
조금은 강해진 어조로 태수가 다시 설명했다.
“그러니까, 선배님은 결국 데메테르가 선장을 해쳤다는 의견이신 거군요?”
나연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묻자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마치 데메테르를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데메테르는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즉, 선장의 사망은 프로그램 오류에 의한 사고라는 거야.”
이후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한 번 더 정리한 뒤 마지막으로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그다음 연구실을 나선 다음 문을 닫자 두 사람의 등 뒤로 삑 하고 문이 잠기는 전자음이 들렸다.
승무원들이 떠나고 난 뒤 동하는 중앙통제실로 이동해 설비에 설치되어 있는 프로그램들에 이상은 없는지 살폈다. 사실 동하는 이 행위가 필요하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었는데, 앞서 언급했듯 프로그램에 이상이 발생하면 이상신호가 출력되어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연우의 지시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자의 비효율적인 소행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동하는 지시에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연우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프로그램에 무지한 것은 연우뿐 아니라 다른 승무원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데메테르가 산소공급이 중단되었음에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IT엔지니어들이 들었다면 분명히 배꼽을 쥐고 웃었을 것이다. 승무원들 모두가 출발하기 전 이미 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그런 의심을 갖는다는 것이 바로 프로그램에 대한 무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동하는 마치 데메테르에게 그렇지 않냐고 동의를 구하듯 중앙통제실 상부에 매달려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프로그램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동하는 식당에 가기 전까지 중앙통제실의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여유시간을 맞이하자 다른 승무원들과 마찬가지로 동하 역시 선장의 사망사건에 의식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선장이 죽었다고 외치던 나연의 겁에 질린 표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면캡슐에 누워 있던 선장의 새하얀 얼굴을 연이어 떠올리고는 몸서리쳤다. 하지만 동하의 두려움은 단순히 죽음이라는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것일 뿐, 선장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된 것은 아니었다.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선장은 나이가 어린 데다가 승무원 경력도 전무한 동하를 노골적으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이런 자신의 태도를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동하는 선장의 태도를 자신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이자, 나아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폄하하는 것으로 느꼈기에 두 사람 사이에서는 좋은 감정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하에게 선장의 사망 자체는 전혀 슬프지 않은 사건이었다. 아니, 굳이 따지면 긍정적인 사건에 더 가까웠다. 선장이 동면캡슐에서 자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할 줄이야. 동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동하는 머릿속으로 사고의 원인을 잠시 생각해 보다가 산소공급장치의 이상이 원인일 거라 단순하게 결론지었다. 동하에게 이는 당연한 결론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