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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윤석열의 계엄과 파면

-끝없는 그의 궤변을 바라보며-

by kuyper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


이 정도면 그의 ‘기개’(氣槪)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뻔뻔함이라면 그 누구에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 검찰, 그런 검찰에서 수장을 했던 자다운 기개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무려 8:0의 전원일치 파면 선고를 받은 자가 14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지귀연 부장판사가 이끄는 형사합의 25부에 의해 첫 공판을 가졌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그는 이 공판에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혼자 아무 말하기’를 42분간 시전 한 그가 검찰의 공소장이 너무 길다며 검찰에 핀잔을 주고는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몇 시간 만에 비폭력적으로 국회의 해제 요구를 즉각 수용해서 해제한 사건”을 검찰이 “내란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참 법리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의 기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_1.jpg <사진-1> 지난 4일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을 당한 윤석열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관련 첫 형사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그의 주장과 달리 과연 국제사회는 12.3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4.4 헌법재판소의 파면 인용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많은 시민들은 정치적 소용돌이 그 한가운데 있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이번 역사의 의미 가운데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국제사회의 소위 괜찮은 언론들의 관점을 빌려 이번 계엄과 파면 결정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그의 지지자들까지 경악시키다!


외신들은 지난 4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파면이 인용되자 일제히 분석 보도를 내놓았다. 먼저, 유럽 뉴스 전문채널인 Euronews는 윤석열의 계엄 선포의 불법성을 명확히 지적한다. 보도는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할 당시 한국은 계엄 요건에 해당하는 명백한 안보 위협(obvious security threat)이 없었으며, 오히려 윤석열은 야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시도를 막기 위해 수백 명의 무장 군인을 국회에 출동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윤석열은 탄핵 심판 과정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이번 계엄이 6시간짜리 평화로운 계엄이었다고 강변하지만, 유로뉴스는 이 6시간 동안 지속된 계엄으로 한국의 금융 시장은 요동쳤고(rattled) 한국의 외교 파트너들은 한국과의 외교관계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CNN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분석하며 지난 12.3 비상계엄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한다.


“윤석열의 충격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전 세계는 물론
심지어 그의 지지자들과 국민의힘 구성원들까지도 경악시켰다.”
(Yoon’s shock martial law decree had stunned the world,
even shocking his own supporters and party members.)


이 보도는 국제사회에서 명실공히 민주주의 국가로 지리매김한 한국에서 민주적 절차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무장 군인을 의회에 진입시킨 계엄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계엄으로 인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한 한국의 많은 시민들이 과거 고통스러운 기억(painful memories)을 떠올리고 있다며, 이것이 이번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의 출발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사진_2.png <사진-2> 지난 4일, 영국 BBC는 윤석열의 파면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출처: BBC)


같은 날 영국의 BBC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BBC 메켄지(J. Mackenzie) 서울 특파원은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한국의 정신과 영혼(psyche)에 변화를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습격했던 12월 3일 밤은
한국의 정신과 영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The night of 3 December, when Yoon ordered troops to storm parliament,
changed something in South Korea's psyche.


BBC의 메켄지 기자는 이번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한국의 과거 독재 정부 하에서 자행된 폭력의 망령을 다시 깨웠다고 일갈한다. 그날 이후 한국의 시민들은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군부 독재의 망령이 아직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BBC는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의 많은 시민들은 그날 밤 윤석열이 자행한 비상계엄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거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 보도가 잘못된 것인가. 윤석열은 첫 공판에서 CNN과 BBC가 목격한 12.3 비상계엄을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었고, 국회의 해제 요구를 즉각 수용해 몇 시간 만에 마무리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법부의 정치화!


프랑스의 대표 매체인 르몽드(LeMonde)는 한국 정치의 핵심을 찌른다. 르몽드는 이번 비상계엄을 윤석열의 내란 시도(an attempted insurrection)라고 밝히며, 파면된 그는 이제 법적으로 사형 선고(death penalty)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대다수의 언론들이 이번 계엄으로 한국 사회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머무르는 반면, 르몽드는 그 정치적 위기의 성격을 ‘사법부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judiciary)로 규정한다. 그야말로 한국 정치의 폐부를 찌르는 분석이다.


즉, 이번 비상계엄으로 인해 지금 겪고 있는 한국 정치 위기의 본질은 사법부의 정치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르몽드는 정치화된 사법부가 스스로 개혁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이유로 한국의 사법부가 과거 권위주의의 유산(A legacy of past authoritarianism)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인으로서 너무 아프면서도 이는 적확한 지적이다. 특히 르몽드는 지난 3월 8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이 갑자기 석방된 것을 절차상의 오류(procedural error)라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검찰의 행태를 꼬집는다. 결국 사법부의 이러한 처사는 시민들로 하여금 사법부와 정치권의 공모(collusion) 의혹을 증폭시켰고, 동시에 다시 한번 검찰은 통제불능(out of control)의 기관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음 정부에 주어진 미션!


이렇듯 이번 4월 4일의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결론이라는 것이 외신들의 주된 평가다. 이런 와중에 영국의 가디언지 보도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_3.png <사진-3> 지난 4일, 영국 가디언은 윤석열의 파면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출처: Guardian)

먼저, 윤석열이 여전히 소속된 국민의힘에 대한 평가다. 가디언지는 국민의힘이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고 분석한다. 지난 12월 비상계엄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탄핵 표결은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기회(opportunity)였으나 국민의힘은 오히려 표결을 보이콧하며 윤석열을 지지하는 강경 노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이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에 대항하는 입법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정당이 아닌 내란 우두머리를 비호하는 정당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 잘못된 선택 이후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윤석열이 내놓은 근거 없는(groundless)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이 음모론은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 지지층들이 길거리에 나가 트럼프 지지자들이 들었던 슬로건(Stop the Steal)을 외치는 근거를 제공했다고 분석한다.


다음은 6월 3일 선출되는 다음 정부에게 주어진 미션을 말하는 부분이다. 불과 3년이라는 시간 만에 윤석열 행정부는 한국의 모든 분야를 망쳐놓았다. 경제, 정치, 외교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다. 이에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가디언지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이 ‘경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문화를 가진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세계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해 국제사회는 이제 한국을 다시금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_4.jpg <사진-4> 2024년 9월, 윤석열이 심우정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심우정은 검찰이 왜 개혁의 대상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출처: 민중의소리)

가디언지는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파면 결정이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외적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6월 3일 들어서는 정부에게 주어진 미션은 한국 사회의 내적인 신뢰(trust)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Whoever becomes president later this year faces the unenviable task of healing those divisions and rebuilding trust in the democratic institutions that Yoon so casually undermined.) 그러면서 가디언지는 회복해야할 신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훼손한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사용한 제도라는 표현은 ‘institution’인데, 이는 제도라는 의미와 함께 기관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가디언지가 다음 정부에게 주어진 미션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훼손한 검찰, 법원, 경찰, 경호처 등과 같은 기관들의
민주적 제도를 확립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가디언지가 지적한 ‘democratic institutions’을 민주적 제도라고 해석할 수 있으나, 제도를 복수형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충분히 기관으로 해석해도 무방해 보인다. 또한,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민주적 제도는 결국 민주적 기관들에 의해 이행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오는 6월 3일 들어설 정부가 해야할 일은 과감한 개혁이다. 그 개혁은 지난 3년간 윤석열 행정부가 망가트린 기관들을 바로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단연코 검찰개혁이며, 헌법재판소 재판 과정에서 지귀연 판사를 시작으로 보여준 사법부에 대한 개혁이 그 뒤를 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비상계엄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깊숙하게 개입한 기관들에 대한 개혁이 뒤따를 것이다. 이것이 가디언지가 지적한 다음 정부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이 미션을 따르지 않거나 완수하지 못할 경우, 그 정부는 5년 만에 다시 심판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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