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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안 Sep 04. 2021

내 영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책

나의 영어 이야기

나른한 일요일 오후 3 12,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작은 동네 카페에서 혼자 따뜻한 커피  잔과   권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항상 친구들과 어울리고 시끌벅적한 자리가 좋았는데, 이제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너무 사랑한다.


차보다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언제나 책 한 권을 가지고 다닌다. 덜컹덜컹 움직이는 곳에서 책을 읽으면 약간의 멀미는 나지만, 책을 읽는 그 몇 분 동안은 온전히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에 일상의 모든 일이 빠르게 지나간다. 가끔은 이렇게 오프라인에서 아날로그식으로 일상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점에 가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외국 도서 섹션을 들린다. 대부분의 외국 책은 국내 책 보다 훨씬 가볍고, 색이 누렇고, 특유의 종이 냄새가 난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들고 다니기 편하고, 커피를 흘려도 티가 많이 안 나고, 점점 이 종이 냄새에 중독된다. 많은 사람들이 항상 물어본다.


"크리스님, 좋아하시는 외국 작가나 영어 원서 책 있으면 하나 추천해 주실래요?"



사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책을 추천하는 것도 추천받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우연하게 같은 책을 읽었거나 또는 좋아하는 주제, 작가, 작품 등의 공통 관심사 때문에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괜히 나의 생각과 기호를 다른 사람에게 잠재적으로 강요하고 싶지 않다.


영어 통번역 프로젝트를 했을 때 여러 명의 통번역 하는 분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세계 문학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이 풍부했다. 좋아하는 작가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들은 자신 있게 자신들의 최애 작가와 작품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Ernest Hemingway "old man and the sea"

Mark Twain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Charles Dickens "A Tale of Two Cities"

F. Scott Fitzgerald "The Great Gatsby"

William Shakespeare "Macbeth"

C. S. Lewis "The Abolition of Man"


침이 튀기고 땀이 흐르면서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최애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들이 말한 작가와 작품들은 세계 최고이고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조용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던 내게는 조금 달랐다. 물론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에 모두 경험해 보았지만,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작가가 책을 통해서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크리스님, 크리스님이 좋아하는 책은 어떤 거예요?"


생각이 많아지고, 말문이 막혔다. 사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미 그분들은 수많은 세계 문학에 대해서 장황하게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터라 쉽사리 끼어들기도 쉽지 않았다. 한 평생 수학, 과학, 공학을 읽고, 보고, 공부한 내게 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지금은 다양한 서양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소설, 수필, 자서전도 골고루 읽는다. 하지만, 내 영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책은 바로 전공 영어 원서이다. 공학 원서는 이상하게 너무 두껍고 비싸다. 두께는 베개보다 훨씬 두껍고 무겁고, 책 한 권의 가격이 핸드폰 요금 한 달 치보다 더 비싸다. 물론 중고책으로 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었지만, 괜한 고집과 열심히 해보겠다는 순수한 열정 때문에 책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전공이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했고 잘해야만 했다. 한국말로 이론 수업을 듣고 한국어 번역책을 보아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영어 원서를 보면서 이해해야만 했다. 모르는 영어 단어도 많고, 영어로 쓰인 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조차 영어로 쓰였기 때문에 개념도 수식도 모두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영어 원서 독해를 교수님께 물어보기도 애매했다. 그저 혼자서 단어 찾고, 해석하고, 이해하고를 무한 반복해야만 했었다.


가장 친했던 대학 동기 - 전공 영어 원서

 

새벽 1시까지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무거운 전공 영어 원서 서너 권을 가방에 짊어지고, 기숙사에 와서 새벽 4시까지 또 공부를 했다. 허리가 아파서 기숙사에서는 청바지를 입은 채로 침대 위에서 공부를 하다가 지쳐 쓰러지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침대 한켠은 이미 소중한 전공책들이 차지했기 때문에 결국 침대 모퉁이에서 쭈그려 쪽잠을 청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포기하지 않고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았지만, 그냥 계속하다 보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너무 어렵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지만, 영어 원서를 읽고 전공을 공부하는 방법은 이후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했을 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원에서는 한국어 번역본이라는 옵션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본에 의지했던 다른 한국 유학생들은 영어 원서를 보는 매 순간마다 굉장히 버거워했다.


"크리스, 내가 여기는 이렇게 해석했는데, 이것을 이렇게 이해하는 게 맞는 걸까?"


영어를 해석하고, 이해하고, 번역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같은 학과 다른 연구실에 있었던 한국 유학생들은 종종 내게 찾아와서 전공책을 내밀며 물어보았다. 영어 원서를 읽고 이해하는 훈련을 이미 수년 동안 했던 나는 어느 순간 영어 원서를 읽는 것이 한 권의 수필 책을 읽는 것과 같았다.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큰 개념을 이해하고, 앞 뒤의 문장으로 작은 개념들까지 모두 이해하면, 마침내 연습 문제를 풀 수 있는 준비가 모두 되었다. 연습 문제를 풀고, 답을 확인하고, 해설지를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질문을 통해서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대답을 통해서 원서를 쓴 교수님의 궁극적인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전공 영어 원서를 열심히 공부했던 흔적


비록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은 딱히 없지만, 전공 영어 원서를 공부한 경험이 내 영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분명하다. 이를 통해서 영어 논문 쓰기 실력과 영어 프레젠테이션 말하기 실력도 훨씬 좋아졌다. 공학의 특성상 보다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말해야 하기 때문에 약간은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또 따뜻한 문학으로 보충할 수 있다.


원하는 결과를 빠르게 얻기 위해서 간혹 지름길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힘들고 어려운 길이 보일 때마다 종종 지름길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결국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더라. 너무 어렵고 너무 힘들지만,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가 결국에는 가장 값진 결과이다. 그 결과는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지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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