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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안 Aug 05. 2021

내 영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팝송

나의 영어 이야기

인생의 앞만 보고 홀로 쉴 틈 없이 달려오면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써 30대가 지났다. 나한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도 이미 시작한 지도 벌써 꽤 지났다.


근래에는 친구들의 결혼 소식과 출산 소식을 자연스레 많이 접한다. 외국에 있을 때는 영상 통화로, 한국에 있을 때는 직접 만나서 밤새도록 옛날이야기를 했었는데,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만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이상하게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더 빠르고 쉽게 접한다.


아이를 갓 출산한 친구들도 이미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친구들도 내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너는 아이 낳으면 영어 교육 어떻게 시킬 거야?"



어린 시절 같이 공 차면서 놀고, 같이 떡볶이 먹으면서 공부했던 친구들이 어느새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 자랑스럽지만, 이런 친구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아직도 너무 어색하다. 오히려 처음 만난 학부모님들과 자녀 영어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잘 된다.


자녀 영어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머릿속에 어린 시절 장면 하나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은 경기도 파주에서 시작되었다. 사방은 넓은 논과 밭으로 공기도 맑고 물도 맑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당시 국민학교 4학년 때 영어가 공교육 과목으로 채택되어 처음으로 알파벳이라는 것을 배웠다. 영어가 어느 나라 언어인지도 모르고, 영어 선생님이 알려주는 챈트를 친구들과 즐겁게 따라 불렀다. 그렇게 선생님이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해주시니, 나는 그저 더 기뻐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내며 불렀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면서 CA (extraCurricular Activities) 과목이 생겼다. 영어 선생님은 나를 부르더니 영어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영어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것이 좋아서 들어갔다. 영어 동아리에서는 팝송을 듣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중에는 결국 흥미를 잃었다. 그때, 영어 선생님은 본인이 직접 녹음한 팝송 카세트테이프를 내게 건네주셨다.


마이마이 워크맨


대략 20곡 정도의 팝송이 녹음되어 있는 카세트테이프이었다. 당시 집에는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마이마이 워크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팝송을 들어 보았다. 그렇게 나는 하루 종일 모든 곡들을 듣고, 또 듣고, 따라 부르고, 다음날 또 들었다.


그중에서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팝송을 지금도 자주 듣는다.

영화 "노팅힐" OST "Ain't no sunshine by Bill Withers"


Ain't no sunshine by Bill Withers


당시 어린 나는 가사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그저 노래가 좋았다. Bill 할아버지의 소울을 조금은 따라 해보고 싶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나는 점점 팝송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부모님도 나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갈 때면 언제나 추억의 올드 팝송 테이프를 틀어주셔서 나는 가사를 보고 어눌한 영어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부모님은 배운 적이 없는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아들이 그저 신기해서 "잘한다, 잘한다!" 연이은 칭찬만 해주셨다. 나는 그저 그게 좋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어린 나는 그저 팝송이 좋았고 어른들의 관심과 칭찬이 좋았다. 그리고 팝송을 통해서 영어를 이해할 수 있었고, 원어민 발음을 따라 하고 흉내 낼 수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영어와 관련된 무엇을 더 깊고 열심히 했으면 영어를 훨씬 더 빨리 잘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나와 영어와의 관계는 딱 이 정도였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딱 팝송이 좋을 정도. 하지만, 이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녀 영어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고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와 함께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영어로 노래 부르고 책도 읽어봐, 아이와 함께 하는 매 순간마다 그저 함께 영어를 즐기고 칭찬도 많이 해주고"


그 친구들이 원하지 않는 답일 수도 있다. 뭐든지 처음에는 어색하고 두렵다. 처음 하는 것에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처음 노력하는 나를 누군가가 격려해주고 칭찬해준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 그것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어린 나에게 그 누군가는 그때 당시 영어 선생님과 부모님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영어"였다.




Sometimes, a little and tiny thing you can't see can change your who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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